'지라시', 재계 6위도 흔들다…유튜브 풍문에 6000억 날린 롯데 [기업 뒤흔드는 지라시]
유튜브발 지라시(사설 정보지)가 대기업까지 흔들고 있다. ‘위기’‘긴급’ 등의 자극적인 문구로 특정 기업의 미래를 진단하고, 총수의 개인사를 폭로하는 듯한 내용의 동영상이 끊임없이 생산되면서다. 이런 동영상들은 문자 형태의 지라시로 재구성되는 과정에서 미확인 의혹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모바일 메신저로 유통되고 있다. 유튜브발 지라시 정보 때문에 상장 기업의 주가가 요동치고 주주들이 피해를 보는 사례가 반복되지만, 유튜브는 방관하고 처벌 수위도 약해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라시 유포자 처벌"…수사의뢰한 롯데
2일 법조계에 따르면 롯데지주는 최근 롯데그룹의 모라토리엄(지급유예)설 지라시 작성ㆍ유포자를 처벌해달라고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롯데지주는 법률 자문을 거쳐 유동성 위기설 지라시가 계열사의 주가를 흔들고 금융ㆍ증권 시장에 막대한 손해를 끼쳤다고 보고 수사 의뢰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 관련 지라시가 유포된 다음날인 지난달 18일 롯데지주와 롯데케미칼의 주가는 각각 6.6%, 10.2% 급락했다.
지라시의 내용은 사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12월 초에 롯데그룹이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예정 ▶롯데건설 미분양으로 계열사 간 연대보증이 치명타 ▶그룹 소유 부동산 매각해도 빚 정리 어려움 ▶전체 직원 50% 이상 감원 예상 등의 내용이다. 롯데케미컬과 면세점 등 일부 사업의 수익성 악화를 침소봉대하면서 그룹 전체의 위기로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롯데는 18일 “유동성 위기 루머는 사실무근”이라고 공시하면서 대응책 마련을 고심해왔다.
루머의 발원지는 유튜브였다.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두 곳에서 ‘롯데그룹 공중분해 위기’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게시했다. 자극적인 제목과 달리 해당 영상의 내용은 싱거웠다. 롯데그룹의 모라토리엄을 단정하는 내용은 없었고, 차입금이 많아서 롯데그룹이 위기라는 내용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튿날 관련 내용이 지라시 형태로 카카오톡 등을 통해 퍼지면서 재계 서열 6위 롯데그룹은 하루 아침에 존폐의 기로에 선 기업이 돼버렸다. 허무맹랑한 시나리오에 익명의 관객들은 열광했고 지라시 유포 속도는 더 빨라졌다.
롯데그룹은 지난달 21일 총자산 규모(139조원), 보유 주식 가치(37조 5000억원), 그룹 전체 부동산 가치(56조원), 즉시 활용 가능한 가용 예금(15조 4000억원) 등을 일일히 열거하며 설명자료를 배포했지만, 18일 하루에만 주가 하락으로 계열사 시총 6000억원 가량이 날아간 후였다. 재계 관계자는 “롯데 내부에서 처음에는 ‘대응할 가치가 없는 허위정보’라며 무시했지만 지라시가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발본색원하자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고 말했다.
거짓정보, 삼성전자ㆍ현대차도 표적됐다
유튜브발 거짓정보가 기업을 흔든 사례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 6월에는 유튜브를 중심으로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의 사망설이 유포되면서 주식시장이 출렁였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의 핵심인 현대모비스는 장중 한때 14% 넘게 폭등하기도 했다. 현대모비스가 공시를 통해 “상기 풍문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정 명예회장의 건강이상설은 2020년 7월에도 퍼진 적이 있다. 당시에도 현대차 주가가 8% 이상 올랐다.
이처럼 유튜브에는 기업과 총수 관련 정보들은 대부분 확인되지 않았거나 일부의 사실을 침소봉대하는 ‘아님말고’ 식의 콘텐트들이 넘쳐난다. 전문적인 식견과 분석을 토대로 한 양질의 콘텐트도 있지만 자극적인 허위정보로 구독을 유도하고 광고 수익을 챙기는 채널이 많다. 실제로 ○○회장 재혼설, ○○○회장 구속수사, ○○○대표 해외도피설 등의 영상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주주들까지 피해" 우려…처벌 강화해야
기업에 대한 유튜브발 가짜 뉴스는 기업의 이미지와 주가에 영향을 주고, 기업은 물론 주주들까지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과거에도 투자자를 위한 정보성 채널은 있었지만, 유튜브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정보나 주장의 확산 속도가 확실히 빨라졌다”면서 “자칫 시세조종 같은 불공정 거래에 이용될 수 있고, 위기 국면에서는 시장 충격을 촉발할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은 뜬눈으로 유튜브를 수시로 모니터링 하지만, 명백한 허위사실 유포가 아닌 경우에는 다소 악의적이라도 제재할 방법이 마땅찮다. 플랫폼(유튜브)이 자율규제로 사전에 부적절한 영상을 걸러내도록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지만, 해외 기업인 유튜브가 아닌 국내 포털이 주요 타깃이다. 현실적으로 허위정보 채널이 너무 많아 자율규제로 다 걸러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론도 나온다.
롯데 역시 수사의뢰한 대상은 유튜브 영상 게시자가 아닌, 지라시를 작성ㆍ유포한 자다. 해당 유튜버는 영상 게시 후 구독자수가 4만명 이상 증가해 노렸던 ‘떡상(구독자수 급상승)’효과를 달성했다. 현재 이 영상은 비공개로 전환됐다. 재계 관계자는 “유포자를 처벌하더라도 이미 피해가 발생했다면 의미가 없다”면서 “롯데가 수사의뢰한 것도 유포자를 처벌하겠다는 의지도 있지만, 후속 지라시를 차단하겠다는 의도가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지라시 작성·유포자는 형법상 신용훼손 또는 명예훼손 등의 혐의가 적용된다.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거나 기타 위계로 ‘신용’을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인 정우정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는 “지라시로 인해 특정 기업에 대한 대규모의 투자금이 순식간에 빠져나가고 기업이 휘청거리는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상장 기업들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역할에 비해 기업에 대한 허위정보를 지라시로 유포하는 범죄에 양형이 약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장주영ㆍ이수정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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