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가스터빈 갖춘 시설 ‘에너지 자립’ 고동친다

이의재 2024. 12. 3.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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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현장을 가다] 서부발전 김포열병합발전소 르포
지난달 26일 한국서부발전 직원이 김포열병합발전소 내부 컨테이너를 가리키고 있다. 이 컨테이너 안에는 ‘국산 1호’ 가스터빈이 설치돼 운영 중이다. 한국서부발전 제공


‘한국산 가스터빈’을 찾아가는 길은 조금 소란스러웠다. 지난달 26일 방문한 한국서부발전 김포열병합발전소 내부는 비행장을 연상시키는 소음으로 가득했다. 터빈으로 다가갈수록 소리는 더 커졌다. 터빈을 둘러싼 컨테이너 앞에 이르자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는 바로 옆에 선 사람과 얘기를 나누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서부발전 직원은 “지금은 발전소가 유휴 상태여서 저속으로 운전하고 있어 그나마 소리가 덜한 편”이라고 말했다.

컨테이너 안으로 걸음을 옮기자 빼곡하게 들어선 배관 사이로 터빈이 모습을 드러냈다. 터빈은 사방이 단열재로 덮여 있어 내부 구조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다만 너비 10m 안팎에 불과한 작은 크기가 눈길을 끌었다. 수십만 세대의 전력 수급을 책임지는 장치라고는 믿기지 않는 아담한 규모였다. 발전소가 쉬는 와중에도 터빈은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완전히 멈추면 터빈이 휘는 등 변형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휴식 중인 인간의 느릿한 심장 박동을 떠올리게 했다.

이 터빈은 최초의 국산 발전용 가스터빈이다. 가스터빈은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의 발전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장치다. 압축한 공기와 가스를 터빈에 주입하면 두 기체가 만나면서 연소반응을 일으키는데, 이때 발생하는 고온·고압의 연소가스를 활용해 터빈을 회전시키고 전력을 생산하는 것이 LNG 발전의 기본 원리다. 열병합발전소는 여기에 스팀터빈 설비까지 추가해 에너지 생산 효율을 극대화한다. 가스터빈을 가동하고 남은 열로 증기를 만들고, 이 증기로 다시 스팀터빈을 돌려 전력을 생산하는 구조다. 김포열병합발전소의 경우 391메가와트(㎿) 설비용량 중 263㎿가 가스터빈, 128㎿가 스팀터빈 몫이다.

이전까지 국내 LNG 발전은 외국산 가스터빈에 전적으로 의존해왔다. 국내 발전소에 가스터빈 약 160기가 설치됐지만 전부 외국산이었다. 자력 생산에 필요한 기술 수준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발전용 가스터빈은 가동 시 발생하는 1500도 이상의 고온과 고압, 분당 3600회 수준의 회전수를 모두 버텨낼 내구성을 갖춰야 한다.

이 난제를 해결한 국가는 세계적으로도 드물었다. 전 세계에서 한국보다 먼저 가스터빈 기술을 확보한 나라는 미국·일본·독일·이탈리아 4개국뿐이다. 가스터빈을 생산하는 업체도 제너럴일렉트릭(미국)·미쓰비시파워(일본)·지멘스(독일) 등 5곳이 전부다. 김종성 서부발전 김포발전본부장은 “(가스터빈은) ‘기계공학의 꽃’으로 불릴 만큼 전 분야에 걸친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발전 분야의 핵심 설비”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의제가 등장하면서 LNG 발전의 중요성이 덩달아 커졌다는 점이다. 탄소중립의 궁극적 목표는 석탄화력발전을 종식하고 이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것이지만, 그 사이의 이행 과정에서는 오히려 ‘가교’ 격인 LNG의 역할이 강조된다. LNG 발전 가스터빈을 외산에 의존했던 국내에서 이는 막대한 국부 유출로 이어졌다. 그동안 국내 발전사들이 주요 외국 업체에 가스터빈 구매 대금과 유지·보수 비용으로 지급한 금액은 12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스터빈 기술 국산화’라는 구상이 힘을 얻기 시작한 이유다.

이 꿈이 결실을 맺기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서부발전은 2013년 ‘발전용 고효율 대형 가스터빈 개발’ 국책과제에 참여하면서 국산화 프로젝트의 한 축을 맡았다. 같은 해 민간에서는 두산에너빌리티가 기술 개발에 착수해 6년 후인 2019년 마침내 해당 기술을 확보했다. 이에 서부발전은 2020년 말 착공한 김포열병합발전소를 ‘K-가스터빈’의 상용화 무대로 제공했다. 두산이 개발한 S1 가스터빈 제품을 김포에 설치해 지난해 7월 본격적인 상업운전에 나선 것이다.

현장에서는 8000시간 넘게 진행된 S1 모델의 실증 운전에 대해 ‘합격 판정’을 내렸다. 첫 제품임에도 해당 기간 차질 없이 전력 수요를 충당하면서 순조로운 데뷔전을 치렀다는 평가다. 시장의 ‘새 얼굴’로 안착한 한국산 가스터빈에 대한 업계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그동안 국내 발전공기업은 물론 미국·카자흐스탄·태국·필리핀 등 해외의 관련 업체들도 김포 현장을 견학했다는 것이 서부발전의 설명이다.

아직 보완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김포에서 운용 중인 S1 모델의 효율은 39.77%로 주요 외산 제품보다 낮은 수준이다. 업계 선두권과의 성능 격차를 완전히 좁히지 못한 것이다. 다만 격차 해소는 이미 가시권에 들어와 있다는 설명이다. 김포열병합발전소는 설비용량(357㎿)과 효율(41.84%)이 모두 향상된 두산의 S1U 모델을 내년 3월 교체 설치할 예정이다. 향후 전남 여수천연가스발전소에 설치하는 후속작 S2 모델부터는 외산의 효율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관측이다.

김포열병합발전소 전경. 한국서부발전 제공


서부발전은 오는 4일 김포열병합발전소에서 준공식을 열고 이번 가스터빈 국산화 프로젝트의 성공을 정식으로 축하할 예정이다. 앞으로도 국산화 정책에 적극 동참해 ‘에너지 자립’ 실현에 앞장서겠다는 것이 서부발전의 포부다. 김 본부장은 “향후 성능 개선을 통해 더욱 향상된 한국형 가스터빈의 성능을 입증하고, 발전용 가스터빈의 성공적인 국산화와 국내 기술의 해외 진출 기반을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포=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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