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승욱의 시시각각] 청개구리와 작별해야 할 대통령
# 2주 전쯤 연말 모임을 위해 시내 호텔을 찾았다. 손님들이 오가는 개방된 라운지의 소파에 얼굴만 봐도 알 만한 정부 인사가 앉아 있었다. 아니, 앉아 있었다기보다 누워 있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다리를 쩍 벌리고 몸을 뒤로 완전히 젖힌 상태였는데, 옆자리 동석자 역시 비슷한 포즈였다. '파격적인' 모습에 사람들이 수군댔지만, 당사자들은 주변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다.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20% 안팎에 불과한 현실과 소파 위에 퍼져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묘하게 오버랩됐다.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한다'는 인사 태풍의 계절에 마주한 역설적이고 기괴한 장면. 윤석열 대통령이 숙고 중이라는 인적 쇄신은 무기력증에 빠진 국정의 반전 카드가 될 수 있을까.
# "윤 대통령이 청개구리 본성이 있는데 희한하게 명태균 사장이 이야기하면 잘 들었다. (대선후보 시절) 이준석(당시 당 대표)이나 김종인(당시 선대위원장)이 이야기하면 반사적으로 안 한다고 그러는데 명 사장이 이야기하면 말을 들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최근 밝힌 '윤석열-명태균 스토리'의 한 대목이다. 윤 대통령의 청개구리 본성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기자들에게도 꽤 알려진 얘기다. 참모들이 아무리 옳은 소리를 하더라도 자존심 강하고 고집이 센 윤 대통령은 일단 반대로 가고 싶어 한다는 뜻이었다. 이런 대통령의 성향을 간파한 용산 대통령실 간부들에게서 "맞는 내용이라도 중앙일보가 쓰면 반대로 갈 거 같은데…"라는 우려를 들은 적도 꽤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4월 총선 직전의 의대 증원 관련 대국민 담화 아닐까." (의대 정원 확대 규모) 2000명은 그냥 나온 숫자가 아니다"로 대표되는 그 유명한 '51분, 1만4000자 담화' 말이다. 총선을 앞두고 마음이 급했던 여당 지도부와 대통령실 핵심 참모들이 "유연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그의 선택은 끝내 정반대 방향이었다. 그리고 열흘 뒤 받아든 총선 성적표는 보나마나 안 봐도 비디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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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대통령이 구상 중인 인적쇄신
국정 운영의 동력으로 만들려면
국민 기대와 맞서는 고집 버려야
」
임기 전반기를 돌아볼 때 윤 대통령의 청개구리 성향이 가장 극단적으로 표출된 분야가 바로 인사였다. 참모들뿐 아니라 대다수 국민의 기대와 반대쪽으로 가는 경우가 수두룩했다. 검사 출신들의 요직 발탁이 이어졌던 집권 초창기의 레퍼토리를 제외하고, 기억 속에 뚜렷하게 각인된 최근 사례들만 해도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공정한 방송행정에 적임자인지 국민적 의문을 몰고 온 '보수 여전사' 방송통신위원장, "차별금지법 시행은 공산주의 혁명으로 가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등 소수자 인권 보호와는 거리가 있는 소신을 표출해 온 공안검사 출신 인권위원장, 뉴라이트 논란 속에 굳이 “친일 인명사전에 오류가 있다. 억울하게 매도되는 분이 있어선 안 된다”고 말하는 독립기념관장, 윤 대통령과의 대담에서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이른바 파우치, 외국 회사 뭐 쪼만한 백" 발언으로 국민적 유명세를 치렀던 KBS 사장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6주 동안 20-19-17-20-20-19(한국갤럽 기준)로 이어진 참담한 수준의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 평가 비율엔 민심과 동떨어졌던 윤석열식 인사가 큰 영향을 미쳤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의 개각과 대통령실 개편 구상은 아직 좀처럼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고 있다. 언론 보도와 인사파일을 직접 챙겨보며 머릿속으로 인선의 큰 그림을 그리는 단계로 봐야 할 것 같다. 국회 예산과 미국 트럼프 정부 출범 얘기가 핑계처럼 나오는 걸 보면 인적 쇄신의 시기는 좀 늦어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어떻게 해야 윤 대통령의 바람대로 이번 인적 쇄신이 국정 운영의 새 동력이 될 수 있을까. 마지막 기회이긴 하지만, 길이 완전히 막힌 것 같지는 않다. 합리적 국민들의 기대에 정면으로 맞섰던 청개구리 본성만 포기해도 성공 확률이 꽤 커지지 않을까 싶다.
서승욱 정치국제외교안보디렉터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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