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태형의 음악회 가는 길] 동시대 음악의 산실, 일신홀
클래식 음악은 시대를 반영한다. 바로크 음악은 절대왕정에서 계몽주의로 이행하던 17~18세기의 질서를 떠올리게 한다. 고전주의 음악을 들으면 18~19세기의 보편적이고 자연스러운 흐름이 감지된다. 낭만주의 음악은 자아의 확대와 개성이 두드러진다. 20세기 음악에는 기존의 규칙에 도전하는 실험과 다양성이 있다.
동시대 음악은 그래서 중요하다. 고전음악도 당대의 현대음악이었다. 나온 지 얼마 안 돼 검증된 음악이 아니기 때문에 그 무대는 외면당하기 일쑤다. ‘경력사원 같은 신입사원’이 존재하기 힘든 것과 같은 이유다.
이런 현대음악이 우리 곁에 가까이 온 계기가 있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2006년 시작한 서울시향과 상임작곡가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 시리즈다. 매 시즌 20세기와 21세기 음악들로 이뤄진 프로그램을 공연하고, 작곡 전공학생들을 대상으로 상임작곡가가 1대1로 지도하는 마스터클래스를 10년 동안 이어갔다.
공간으로서 기억되는 곳은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일신홀이다. 숱한 실험적인 공연을 과감히 올려 동시대 음악을 소개하는 현대음악의 산실로 자리매김했다. 2009년 개관 당시부터 일신홀은 ‘미래의 클래식’이 될 동시대 음악에 집중했다.
일신홀 로비로 들어서면 현대 설치작품이 청중을 맞이한다. 예술적인 분위기 속에서 붉은색이 감도는 홀의 객석에 앉으면 또 다른 우주로 여행하는 느낌이다.
일신홀을 운영하는 일신문화재단은 형남장학회를 모태로 1988년 일신방직 김영호 회장이 설립한 공익법인이다. 우수한 문화예술단체에 직접적인 후원을 하는 한편, 2011년 일신작곡상을 제정해 18명의 수상 작곡가에게 신작을 위촉해 초연했다. 2017년 시작한 일신프리즘콘서트 시리즈는 현재 국내 유일의 근현대 클래식음악 공연시리즈로 자리잡았다. 공모를 통해 연주자와 작곡가를 선정하고, 우수 현대작품의 초연 무대를 마련한다. 지금까지 세계 초연 17개 작품, 아시아 초연 6개 작품, 한국 초연 31개 작품을 선보였다. 무료공연인 데다 마니아들이 있어 객석은 늘 만석이다.
동시대 음악을 보급해온 일신문화재단이 사단법인 한국공연예술경영협회(회장 이창주)가 수여하는 공연예술경영대상에서 올해 15회 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일신문화재단 임수연 본부장은 “김영호 회장님이 동시대 작곡가를 중시하셨고, 비주류인 현대음악을 수호한다는 소명의식으로 일했는데 알아주셔서 감사한다”며 “동시대 음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같은 클래식인데 늦게 작곡된 곡들이다. 작곡과 연주에 옥석이 있고, 잘 된 작품과 연주는 감동을 준다”고 말했다. 기존과 다른, 음악 감상의 새로움을 찾는다면 일신홀에 들러보면 어떨까. 공연예술경영대상 시상식은 이달 12일 오후 5시 서울 서초동 코스모스아트홀에서 열린다.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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