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회숙의 음악으로 읽는 세상] 들라크루아가 그린 쇼팽과 상드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는 쇼팽과 친한 사이였다. 화가인 그는 당연히 친구의 얼굴을 그림으로 그렸다. 그런데 들라크루아가 그린 쇼팽의 초상화는 본래 그의 연인 조르주 상드를 한 캔버스에 넣어서 그린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그 후 수집가에 의해 그림이 둘로 갈라져 지금은 쇼팽을 그린 부분과 조르주 상드를 그린 부분이 각각 다른 곳에 소장돼 있다.
이 중 쇼팽의 얼굴은 실루엣이 살짝 무너진 채 전체적으로 브라운 계통의 색면에 흰색을 사용해 거칠게 표현했다. 열정이 흘러넘치는 열혈 청년의 얼굴이다. 반면에 조르주 상드의 얼굴은 정서적으로 지친 모습이다. 전 남편과 싸워 아이들을 쟁취하고, 끊임없이 글쓰기에 몰두하고, 틈틈이 남성들과 염문을 뿌리고, 병약한 쇼팽을 돌보는 등 일인다역을 억척스럽게 소화해 내는 에너지가 흘러넘치는 상드의 모습이 아니다. 들라크루아는 상드가 지쳐가고 있다는 것을 간파했던 것일까. 아니면 현실 속에선 과도하게 흘러넘치는 상드의 기(氣)를 그림 속에서나마 누그러뜨리고 싶었던 것일까. 현실에선 쇼팽이 여성, 상드가 남성의 역할을 했지만 들라크루아의 그림에서는 두 사람이 각자의 성적(性的) 정체성에 충실한 모습을 하고 있다.
끝내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두 사람의 운명처럼 들라크루아의 그림 역시 둘로 갈라져 각각 다른 곳으로 갔다. 이 걸작을 둘로 나눈 것은 물론 누군가의 욕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림 속 두 사람이 진정한 합일(合一)을 이루고 있었다면, 한쪽이 없으면 도저히 그림이 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구도 속에 들어 있었다면 아무리 그림에 문외한이라도 그것을 둘로 나누는 무식한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들라크루아는 두 사람을 서로 분리해도 무방하도록 그렸다.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심리적·정서적 거리를 포착한 화가의 감각이 놀라울 따름이다.
진회숙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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