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120시간 잔업했는데 사장은 “하란 적 없다” 과로사 방지법 시행 10년간 제도 강화됐지만 ‘과로→자살’ 산재신청만 그사이 전국 1954명
일본에서 과로사와 ‘과로 자살’ 없는 사회를 목표로 하는 과로사 등 방지 대책 추진법이 시행된 지 올해 11월로 10년을 맞았지만 관련 사례는 지금도 끊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로가 자살로 이어졌다”고 접수된 산업재해 신청만 지난 10년간 2000건에 달했다. 정신질환 관련 산재 신청은 최근 급증해 지난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일본 지역매체 주고쿠신문은 2일 “이 기간(지난 10년간) 노동시간 규제 강화나 직장 내 괴롭힘 방지 대책 의무화 등 법적 제도는 진전됐지만 과로로 인한 정신질환이나 뇌·심혈관 질환 관련 산재 신청은 증가 추세”라고 전했다.
신문은 2009년 시마네현 이즈모시에서 과로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슈퍼마켓 직원 다카기 노리오씨 사례를 조명했다. 1996년 야마구치현 도쿠야마대(현 슈난공립대)를 졸업한 다카기씨는 “가까운 곳에서 일했으면 좋겠다”는 부모의 바람을 받아들여 이즈모시의 슈퍼마켓에 취직했다.
2001년 바이어로 승진한 뒤 업무 부담이 점차 늘었고 2008년부터는 사장이 직속 상사가 되면서 잦은 질책과 새벽까지 이어지는 장시간 노동이 일상이 됐다고 한다. 취미였던 낚시를 더 이상 가지 않게 됐고 술을 마시는 양도 늘었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다카기씨는 이상함을 느끼고 걱정하는 부모에게 “시끄러워!”라고 화를 낸 직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숨진 채 발견된 9월 18일은 자신의 36번째 생일이었다.
그렇게 일했는데 근무기록은 남아 있지 않았다
부모는 2014년 산업재해 보상을 일본 정부에 청구했지만 인정받지 못했다. 2017년에는 그 결정을 취소해 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아들의 직속 상사였던 슈퍼마켓 사장이 법정에 출석한 건 2019년 연말이었다. 아들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 뒤였다.
법정에서 원고 측이 사용자 책임을 묻자 사장은 “잔업은 지시한 적 없다” “다카기군이 스스로 한 행동이다”라고 답했다.
지금 78세인 어머니 에이코씨는 주고쿠신문에 “우리 아들이 정말 이런 회사에서 일했단 말인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억지로라도 일을 그만두게 해야 했는데…” “유턴(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을 권하지 않았다면…”이라며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유족은 재판 과정에서 증거 부족으로 고통받았다. 회사에는 타임카드(근무기록표)가 없었고 업무용 컴퓨터 사용 기록도 삭제된 상태였다. 장시간 노동을 입증하려면 객관적 증거가 필요했다. 경비업체 기록을 요청해 직장 문을 잠근 시간까지 조사했다.
다카기씨 부모는 과중한 업무 실태를 증언해줄 사람을 찾기 위해 아들의 전현직 동료들을 찾아다녔다. 여러 차례 거절당했고 회사 측 방해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전 직원 2명이 법정에서 다카기씨의 근무 모습과 근로 환경에 대해 증언했다.
12년 만에 인정받은 과로사… “엄마는 열심히 했어”
2021년 5월 1심 재판부는 장시간 노동과 다카기씨 사망 간 인과관계를 인정하며 유족 측 전면 승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에서 인정된 다카기씨의 시간외 근로는 월 120시간이 넘었다. 이 판결은 일본 정부가 항소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에이코씨는 “각지의 과로사 유족과 지지자들이 방청석을 가득 메워줬다”며 “전 동료들의 용기 있는 증언도 있었고, ‘과로사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모두의 의지가 판사에게 전달됐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산인(山陰) 지역 과로사 근로자 유족 모임 대표를 맡고 있다.
에이코씨 자택에 놓인 영정 사진 속에서 다카기씨는 슈퍼마켓 앞치마를 입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었다고 주고쿠신문은 설명했다. 그 사진 옆에는 에이코씨의 남편이자 다카기씨 아버지인 이사오씨의 영정이 나란히 놓여 있다. 아내를 도와 소송을 함께해온 이사오씨는 올해 3월 81세로 세상을 떠났다.
에이코씨는 “포기하지 않고 증언을 계속 모을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남편은) 천국에서 노리오에게 ‘엄마는 열심히 했어’라고 말해주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로로 인한 정신질환, 지난해 3575건 ‘사상 최대’
과로로 인한 근로자 자살 사례로 일본 노동 당국에 접수된 산재 신청은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1954건이었다. 매년 100건대 후반에서 200건대 초반으로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우울증 등 정신질환으로 산업재해를 신청하는 사례도 빠르게 늘고 있다. 전국적으로 2019년 처음 2000건을 넘어선 이 사례는 지난해 3575건으로 사상 최다를 기록했다. 업종별로 사회보험·사회복지·간병업(494건), 의료업(390건), 도로화물운송업(152건)이 상위 3위를 차지했다.
에이코씨는 판결 확정 1년 반 뒤인 2022년 말 지지자들과 함께 소송 기록을 정리한 책자를 냈다. 이 책에서 이사오씨는 “앞으로의 노동 사회가 과로사와 과로 자살이 없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란다”고 적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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