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개척한 여성 27명의 위로와 응원, '다시 만난 여성들' 출간

최호경 2024. 12. 2.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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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다르크에서 김지영까지 다채로운 목소리 담아
새 삶 꿈꾸게 했고, 다른 삶 열게 한 여성들

자신의 삶을 개척한 27명의 여성이 전하는 위로와 응원을 담은 에세이 '다시 만난 여성들'이 출간됐다. 시대적 제약에도 꺾이지 않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간 여성들의 다채로운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려주는 책이다.

저자 성지연은 예술가에서 사회·자연과학자까지, 정치가에서 소설 주인공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여성들의 저서와 평전 그리고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문학 작품 등을 다시 꺼내 읽었다. 그리고 이들의 치열했던 삶을 이 책에서 차분하게 되새겨낸다.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꿈꾸게 했고, 또 다른 삶을 열게 했던 여성들을 만나 그들의 삶과 사유가 주는 공감과 감동을 고스란히 담았다.

책은 크게 세 갈래로 구성된다. 잔 다르크에서 이태영까지의 '시대와 맞선 여성들(제1부)', 마리 퀴리에서 박래현까지의 '정신을 빛낸 여성들(제2부)', 제인 에어에서 김지영까지의 '삶을 사랑한 여성들(제3부)'이다.

제1부 '시대와 맞선 여성들'에서 저자는 베티 프리단, 수전 팔루디, 리베카 솔닛 같은 미국의 페미니스트들을 다시 만남으로써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의미를 돌아본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미투 운동 이후 '백래시'와 '갈라치기'가 두드러져 왔다. 여러 통계 자료는 우리나라의 성평등 현실이 아랍권 국가인 튀르키예에도 미치지 못하는 세계 최하위권 수준임을 보여준다. 저자는 리베카 솔닛이 강조하듯 페미니즘이 남성들의 권리를 빼앗는 제로섬 게임이 아님을 힘주어 말한다.

페미니즘을 앞세운 건 아니지만,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헤쳐나간 여성들 또한 저자는 눈여겨본다. 프랑스 국민 영웅 잔 다르크, 미국 가수 존 바에즈, 독일 정치가 앙겔라 메르켈이다. 그속에는 우리나라 여성들도 있다. 식민사관으로 망국의 책임을 떠안게 된 명성황후와 가부장제가 강고했던 일제강점기의 화가 나혜석을 재평가하고, 광복 후 1970년대까지 대한민국의 유일한 여성 변호사였던 이태영의 삶을 들여다봤다.

제2부에서는 '정신을 빛낸 여성들'과의 만남이 이어진다. 먼저 저자는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분야에서 뚜렷한 업적을 이뤄낸 여성들의 삶을 조명한다. 마리 퀴리는 여성이란 이유로 적잖은 차별을 받았지만, 노벨상을 두 번 받으며 20세기 최고의 자연과학자로 우뚝 섰다. 아프리카 현장 연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생물학에서 세계적인 성과를 일군 제인 구달도 빠지지 않는다.

특히 오스트리아 간호사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소록도에서 보여준 헌신은 이 책의 보석과도 같은 부분이다. 우리나라 남해안에 위치한 소록도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한센병 환자들을 성심성의껏 돌본 두 사람은 우리 인간 가슴 속에 존재하는 선의를 증명한 인물들이다. 이들이 평생을 걸쳐 실천한 종교적 사랑은 흐트러질 수 있는 삶의 중심을 다잡게 해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다시 만난 여성들 [사진제공=북인더갭]

제3부 '삶을 사랑한 여성들'에서는 실존 인물인 안네 프랑크와 소설 속 여성 8명과의 만남을 다룬다. 저자가 쉰을 넘겨 다시 만나는 주인공들은 젊은 시절 첫 만남의 순간과는 사뭇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제인 에어, 안나 카레니나, 빨간 머리 앤은 자기의 삶을 적극적으로 개척해가는 여성이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실제 인물인 안네 프랑크를 통해 저자는 인간은 누구든 역경을 딛고 자신만의 의미를 추구할 수 있는 존재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저자가 고른 우리 소설의 두 주인공은 박완서의 소설 '엄마의 말뚝'에서의 기숙과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에서의 김지영이다. 기숙의 삶에 대한 성찰을 통해 모성에 지워진 짐을 넘어선 남녀평등이 실현된 사회를 꿈꾼다. 출산과 육아를 거치며 우리 사회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김지영의 삶'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자신이 원하는 일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지속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에 더해 여성들의 응원뿐 아니라 남성들의 응원 또한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저자 성지연은 1970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부산으로 이사해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에 들어가 인간과 사회를 배웠고,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김수영의 시 연구로 석사 학위를, 최인훈의 소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연세대학교에서 시간강사로 잠시 일했다. 지은 책으로는 '어른의 인생 수업(2022)'이 있다.

최호경 기자 hocan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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