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막벨라 굴을 떠올리며 걷습니다” 기도의 섬, 주문도
인천 강화도 서남쪽 선수선착장에서 하루 세 번 주문도를 향해 배가 떠난다. 12월 걷기 묵상 행선지는 기도의 섬, 주문도다. 면적 4.626㎢ 해안선 길이 12.6㎞의 주문도는 나귀 턱뼈 모양의 섬으로 하루를 온전히 들여야 만날 수 있다. 새벽에 들어가 일몰 직전에 나온다. 차를 배에 실을 수 있지만, 둘레길을 걸으며 기도하기 위해 선착장에 차를 두고 몸만 들어간다.
강화도 선수선착장을 떠난 배는 30여분 만에 주문도 남쪽 살곶이 선착장에 도착한다. 곧바로 섬의 서쪽 뒷장술 해수욕장 해변으로 걸어간다. 드넓은 수평선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며 조선 숙종 때 강화부사와 호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지낸 이민서가 1667년 이 섬에서 쓴 시를 생각한다. 이덕주 감리교신학대 명예교수가 저술한 ‘주문도 한옥 예배당 100년 이야기’(신앙과지성사)에 수록돼 있다.
“배에서 내려 작은 섬 찾아드니(捨舟尋小島)/ 울퉁불퉁 개암나무 길을 지나(榛逕歷高低)/ 황량한 산 밑에 옛 우물이 있고(古井荒山下)/ 큰 나무 서편에 띳집 있구나(茅茨喬木西)/ 밭은 비옥하고 좋은 토질 자랑하나(畝種誇上美)/ 땅은 외져 은거지 같고(地僻類巖棲)/ 저녁 잠자리에 뜻은 마루대에 오르나(宿昔乘桴志)/ 바람 불어 생각 또한 구슬프구나(臨風意更悽).”
주문도는 구한말까지 뱃사람들의 굿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술집만 10곳이 넘었고 만선의 흥청거림 속에 파시(波市)가 대단했다. 하지만 1893년 영국 성공회 선교사 워너와 안내인 윤정일이 환등기를 이용해 ‘예수의 일생’을 전하고 9년 후 감리교 전도인으로 변신한 윤정일이 나루터에서 “회개하라”고 전한 말씀에 김근영이 응하여 개종하면서 변화가 시작된다. 마을 수호신을 섬기던 신당을 훼파하는 것은 물론 마태복음 18장 속 예수님의 빚진 자 비유처럼 박두병 박순병 형제와 종순일 목사의 빚 탕감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집단 개종의 역사가 일어난다. 한때 섬 주민의 75%가 기독교인이었다. 지금도 섬에는 술집 다방 노래방이 없고, 대신 교회와 학교와 해변이 있다.
뒷장술 해수욕장과 대빈창 해수욕장 사이에 작은 해안 동굴이 있다. 앞서 기자와 함께 이곳을 걸은 이 교수는 이 동굴이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막벨라 굴같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아무런 소음도 들리지 않는 가운데 오직 찬란한 햇빛을 느끼면서 기도를 드린다. 침묵 속에서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마음을 모은다.
섬의 중앙에 서도중앙교회(박형복 목사)가 있다. 교회는 1923년 8월 건축된 한옥 기와집 예배당으로 유명하다. 한때 500명 넘는 성도들이 예배를 드릴 넓은 성전이 필요했고, 교인들은 소득뿐만 아니라 재산의 십일조를 내어 50칸 규모의 웅장한 한옥 예배당을 건축했다. 강화 본도의 강화읍 성당과 온수리 성당보다 아름답고 무엇보다 지금도 새벽예배를 드리는 현역 건물이다. 나이든 원로 권사님들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이들은 지금도 예배를 목숨같이 여기며 100년 넘은 한옥 예배당을 지키고 있다. 주일예배 저녁예배 수요기도회 새벽기도회 참석 인원이 동일하다. 박형복 서도중앙교회 목사는 영성 깊은 기도를 통해 이곳을 기도의 섬으로 가꿔 나가려 한다.
교회 동쪽으로 나오면 또다시 해변이 펼쳐진다. 멀리 석모도와 강화도가 보이는 앞장술 해변이다. 1950년 7월 미군 B29 폭격기가 북한 야크기에 격추돼 앞장술 해변과 뒷장술 해변에 낙하산으로 탈출한 미군 병사들이 발견됐다. 이들을 구조해 영국 해군 함정에까지 인도한 교인 4명이 인민군에 피랍되는 등 아픔의 역사도 있다. 해변을 걸어 살곶이 선착장에 도착해 강화도로 돌아가는 배에 오른다. 장엄한 일몰이 기도의 여정을 함께하며 한 해의 마무리를 돕는다.
주문도(인천 강화) 글·사진=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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