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의 대체복무, "적응해보겠다"는 말이 안 나오는 이유

승준 2024. 12. 2.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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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복무 표류기] 대체복무제는 소수자에게 안전한가

2020년 10월 26일, 양심과 신념에 따라 군 복무를 거부한 이들 60여 명이 역사상 처음으로 대체복무요원으로 소집됐습니다. 그 이후로 4년이 지난 현재까지 1500명이 넘는 인원이 3년 동안 교정시설에서 합숙복무를 하고 있습니다. 병역거부를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과거와 달리 대체복무제도 시행 이후에는 오히려 많은 이들의 관심 밖으로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에 대체복무제도를 직접 경험한 이들이 현장에서 길어 올린 생생한 경험을 전하는 기획 〈대체복무 표류기〉를 준비했습니다. 심사와 복무 전반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살펴보고 이에 대한 해법을 모색합니다. <기자말>

[승준]

 2017년 7월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성소수자 군인 처벌 중단을 촉구하는 성소수자들이 군복을 입고 감옥에 갇힌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내게 지난 몇 년간은 대체역 심사를 앞두고 정신없었던 시기로 남아있다. 어떤 자료를 준비해야 하는지, 심사위원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심사를 통과할 수는 있는지 걱정하며 불안한 나날을 보냈다. 병역거부를 고민하던 2017년 당시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이 지시했다는 의혹이 있는, 육군이 동성애자 군인을 색출해서 군형법 위반으로 기소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나는 고민 끝에 대체복무를 결심한 이유에 해당 사건이 영향을 미쳤음을 밝혔다.

그러자 어떤 심사위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체복무 하면서 성소수자로 사는 것도 군대에서 성소수자로 지내는 것만큼 쉽지 않을 텐데, 신청인은 괜찮으세요?" 내색은 안 했지만 다소 당황스러운 질문이었다. 걱정일까, 각오를 시험하는 걸까, 못 지내겠다고 하면 떨어뜨릴까, 그런데 이걸 왜 나한테 묻지, 이게 나 혼자 힘내서 적응해야 할 문제인가."

어차피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이었기에 복잡한 머릿속과 달리 대답은 금세 나왔다. "네, 이미 이성애 중심적인 사회에서도 잘 살아왔기 때문에 대체복무도 잘 적응하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딱히 잘 살아왔던 것도 아니었고, 잘 적응할 자신도 없었다. 개인 공간과 지지 집단이 있던 사회와 단체 생활을 하는 교정시설은 비교할 수조차 없었지만,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증인 속의 이방인

대체복무 생활은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가지 특별한 점이 있다면 함께 대체복무를 하는 이들이 모두 여호와의증인(아래 증인)이었다는 것, 그리고 이들이 "동성애 행위를 정죄"하는 교리를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번은 다른 대체복무요원으로부터 동성애에 관해 어떤 입장인지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 그는 '여호와께서 동성 간의 성적 관계를 싫어한다고 배우기 때문에 증인들은 이를 멀리한다'면서 '그렇다고 동성애자를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증인 조직이 동성애를 제명까지 가능한 심각한 죄악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비난하지는 않는다는 말은 얄궂은 변명처럼 들렸다.

더욱이 이를 증인 내부에서 통용되는 생각이라고 넘기기는 쉽지 않았다. 아니, 불가능에 가까웠다. 성소수자를 가리키며 "더럽다" "정신질환이다" "죽어야 한다"는 혐오 발언을 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이들, "동성애자를 포용하는 타락한 주류 기독교와는 달리 성경 원칙에 따라 동성애를 엄격히 금하는 증인이야말로 참종교"임을 자부하는 이들이 내가 매일 마주치는 동료다. 증인이 아닌 이들을 부르는 '이방인'이라는 말이 이보다 생생하게 다가올 수 있을까. 성소수자에 대한 희화화, 경멸, 원색적인 비난에 노출되는 일상 가운데 이를 제지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나는 증인 조직 안에도 동성에 대한 성적 끌림을 느끼는 이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정된 성별과의 불편감을 느끼고 다른 성별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는 이들에 대한 소식도 접했다. 내 코가 석 자이기는 했지만 이른바 여호와를 기쁘게 한다는 이유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억누르는 성소수자 증인이 염려됐다. 그 압박과 불안감을 견딜 수 있을까. 내가 짐짓 답했던 것처럼 그들도 '잘 적응해 보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

증인은 가족 단위로 종교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고 지역마다 정해진 회중이 있어서 신자 간의 네트워크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증인 대원들은 자신이 어느 지역의 어느 회중에 있었다는 이야기만 나누어도 공통으로 아는 사람을 금세 찾아냈다. 더욱이 전국에서 증인으로 살던 청년 남성이 대체복무를 하기 위해 한데 모였으니 소문은 날개라도 돋친 듯 빠르게 퍼져 나갔다. 이런 상황에서 성소수자임이 아웃팅되는 경우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득해졌다.

미비한 규정, 형해화된 보호 조치
 2020년 6월 30일 종교적 신념 등 양심의 자유에 따른 대체복무 제도가 본격 시행된 영등포구 서울지방병무청에 대체역 편입 신청서 접수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 연합뉴스
어쩌면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가 겪는 문제는 어디를 가든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다. 어차피 몇 명한테나 중요한 문제, 해결하기도 어렵고 굳이 해결해야 하는지 알 수도 없는 문제, 그래서 혼자 짊어져야 하는 문제쯤으로 치부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체복무는 조금 다르다. 대체복무제도는 개인의 존엄을 결코 침해할 수 없다는 전제 위에 만들어진 것으로서 대체복무 현장은 (적어도 이상적인 차원에서는) 모두가 동등한 존재라는 원칙이 실현되는 장소여야 한다. 게다가 합숙복무라는 특성상, 차별과 편견, 따돌림과 괴롭힘이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보호 장치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관련 규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대체역 복무관리규칙 제3조는 "기관장과 기관 구성원은 대원의 인권을 최대한 존중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한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다. 대원의 인권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인권을 어떻게 존중할 것인지, 인권 증진의 책임을 지는 이들은 누구인지, 인권 침해를 예방하는 조치는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하는지 등 구체적인 내용이 전무하다. 더욱이 이 조항은 대원이 다른 대원에게 하는 혐오 발언을 제재하기에 충분한 규정이 아니다.

대체복무제도에 인권 보호에 관한 조치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크게 인권교육, 인권진단, 고충심사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먼저 인권교육에 해당하는 내용으로는 기초교육과정에서 진행하는 성인지 감수성 교육이 있다. 그러나 대체복무 소집 이후 3주간 이루어지는 기초교육과정 중 2시간가량 진행되는 일회성 강의로는 부족한 면이 있다. 인권교육은 정기적으로 실시해야 하는 의무교육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기초교육과정 이후에는 소집해제까지 단 한 차례도 시행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인권교육은 다른 실무 교육과 다르게 평가 항목에 해당하지 않아서 신규 대원의 수업 참여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때로는 인권교육 내용이 교리에 어긋난다며 증인 대원이 항의하는 일도 있다. 성소수자와 문화적 다양성을 다루었다는 이유에서 증인 교리에 반하는 내용을 가르치고 더 나아가 박해한다는 민원을 제기하는 이들이 예외라고 믿고 싶다. 자신 역시 소수자임에도 다른 이들을 동료 시민으로 맞이하지 않는 모습을 볼 때, 과연 인권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 고민이 든다.

일회성 강의에 머무르는 인권교육에 비해 인권진단은 복무기관에서 매월 실시하도록 정해져 있다. 인권진단 조사지에는 직원, 복무관리관, 수용자, 동료 대원 등에게서 부당한 대우나 인권침해를 겪었는지 확인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일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인권침해의 종류와 사례가 충분히 고지되어 있지 않고, 서식의 항목도 세분화되어 있지 않아서 구체성이 떨어진다.

더욱이 서면 제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곳이 대부분이어서 작성자를 유추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가 된다. 종종 인권진단을 쓰고 나면 복무관리관이 이번 달은 조금 길게 적었다면서 '농담'을 건넬 때도 있다. 정작 지적한 문제에 대한 답변이나 후속 조치는 전달받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심지어 대원을 교육실에 집합시켜서 1분 동안 적어내라고 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인권진단이 형식적인 절차로 남는 경우도 많다. 어떤 복무관리관은 인권진단이 행정력을 낭비하는 불필요한 제도라며 반기별로, 최소한 분기별로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몇몇 대원들은 조사지를 받자마자 백지상태로 제출하고 나 몰라라 하기도 한다. 부당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인권진단을 통해 드러나는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인권진단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서 부당한 일을 고발할 의지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진심을 담아서 인권진단을 작성하려고 한다면 아니 될 말이다. 복무관리관이 대원의 문제 제기를 납득하지 못할 때는 보복 조치가 뒤따를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평소에는 넘어가던 사소한 규정 위반을 지적하면서 벌점 세례를 주는 일이 대표적이다.

대원들이 마음을 모아 단체로 인권진단을 제출한 어떤 기관에서는 "이번 집단행동을 교정본부에서 주시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전보 신청 등에서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라며 경고하기도 했다. 오죽하면 인권 침해가 발생했다고 응답한 조사지를 생활실장이나 대표대원이 없애버리는 일도 벌어질 지경이다.

마지막으로는 고충 심사 제도가 있다. 대체역의 편입 및 복무 등에 관한 법령 시행령(대체역 시행령) 제34조에는 대원이 대체복무기관의 장에게 상담이나 고충의 심사를 청구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고충 심사가 접수되면 담당자가 사실을 확인하고 최장 60일 안에 처분 결과를 당사자에게 알려야 한다. 필요에 따라 대체역 복무관리규칙 제50조에 규정된 '대체복무 운영위원회'가 소집되기도 한다.

대체역 시행령 같은 조에는 고충 심사를 청구했다는 이유로 부당한 처분이나 대우를 받지 않는다는 보호 규정이 갖춰져 있다. 하지만 규정 하나에 기대기에는 대체복무 현장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고충 심사 제도의 가장 큰 한계는 교정시설 내부에서 벌어진 문제를 교정시설 내부 관계자가 살펴본다는 데 있다.

남성 교도관이 서로 형님과 동생으로 부르며 가깝게 지내는 곳에서, 수용자가 교도관을 괴롭히기 위해 쓸데없는 민원을 자주 제기한다(일명 '코를 건다')는 인식이 파다한 곳에서 조사관이 공정하고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권리를 주장할 자격
 2020년 10월 26일 종교나 비폭력·평화주의 신념 등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가 처음 시행된 대전교도소 내 대체복무 교육센터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 63명의 입교식이 열린 가운데 입교생들이 입교식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이 모든 상황은 교정시설에 흐르는 특유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교정시설은 이동의 자유를 비롯한 개인의 기본권이 제약되는 곳이다. 다시 말하면 제약의 범위, 절차, 정당성에 대해 다툼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부당한 대우에 항의하는 측이 대체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다 보니 교도관은 일단 의심하고 보는 경향이 있다.

종종 근거 없는 문제 제기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역시 '도둑놈들'은 이래서 안 된다며 자신의 편견이 맞았음을 주장한다. 이와 반대로 잘못된 처우를 했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소위 수용자 편을 드는 이들(주로 국가인권위원회, 교정본부, 법무부 등이 언급되지만 그때그때 달라진다)에 대한 분노를 토해낸다. 나는 "수용자 인권을 보장하자는 말은 교도관의 권한, 피해자의 권리, 유가족의 인권을 침해하겠다는 뜻"이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고는 했다.

특히 문제를 제기하는 수용자가 소수자인 경우는 더욱 신랄한 조롱과 비하를 받는다. HIV 감염인, 정신질환자, 외국인, 홈리스, 하층계급, 노인, 성소수자 등 수용자가 특정한 속성을 지니거나 위치에 머무를 때, 이들의 존재는 범죄적인 것이면서 병리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교정시설에는 말로만 4부제 근무를 이야기하고 정작 인력 충원은 뒷전인 정부를 비판하기보다, 이른바 손이 많이 가는 수용자를 비난하는 이들을 찾기 쉽다. 자격 없는 이들을 공짜로 재워주고 먹여주는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불만부터, 이들을 상대하느라 고생하지만 아무런 인정도 받지 못한다는 자조 섞인 탄식에 이르기까지 넘쳐나는 감정의 향연 속에 인권의 자리는 찾기 어렵다.

열악한 노동 조건이나 부정적인 사회적 이미지처럼 교도관이 겪는 고충도 크겠으나 문제는 이와 같은 교정시설의 분위기가 대체복무요원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데 있다. 대원은 수용자에게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자신의 책무임에도 '죄를 짓고 온 주제에 바라는 것이 너무 많다'며 짐짓 교도관 흉내를 내고는 한다. 여전히 병역거부로 수감생활을 하는 이들이 있고 그중에는 증인도 있지만, '우리'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니며 수용자와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순진한 믿음이 반짝인다. 다수를 차지한 이들과 매끄럽게 동일시하는 동료 대원을 볼 때마다 소수자성을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정치적인 문제임을 새삼 깨닫는다.

죄를 지은 이들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자격조차 없다는 주장은 단지 동의할 수 없는 의견을 넘어 소수자인 나의 존재를 위협하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국가가 범죄자로 판단하든, 종교가 죄인으로 단정하든, 죄를 지은 이들은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일까. 그게 정말 정의롭고 공정하고 올바른 것일까. 대체복무를 통해 사회적 약자에게 적절한 돌봄을 제공하고 싶었던 나로서는 소수자에 적대적인 환경에 놓이는 일 자체가 커다란 고통이기도 하다.

대원이 교도관의 업무를 지원하는 일이 점점 늘어날수록 교도관과 대원이 수용자 혐오와 소수자 비하를 매개로 끈끈한 남성 유대를 맺는 일 또한 점차 빈번해질 것이다. 어쩌면 이처럼 친근한 모습이 대체복무제도의 성공적인 안착처럼 비추어질지도 모른다. 결국 처음의 질문이 내게 다시 돌아온다. 나는 과연 적응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내가 여기에 있어도 되는 것일까.

답을 찾지 못한 질문

대체복무와 관련된 규정이 전면 개정되어 모든 대원의 권리를 보호하고 증진하는 실질적 조치가 마련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법과 제도가 닿지 않는 지점, 이를테면 농담처럼 던지는 말,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전제, 소수자를 밀어내는 힘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대체복무요원은 수용자에게 그래도 되는 걸까. 교도관과 그런 말을 주고받아도 괜찮은 것일까. 더 근본적으로 대체복무요원이란 어떤 존재이고 사회에 어떻게 기여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이곳에서 꽤 많은 나날을 보냈음에도 여전히 성소수자로서 어떤 대체복무요원이 되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대체역 심사 당시 받았던 질문처럼 복잡한 머릿속과 달리 정답은 이미 알고 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적응해 보겠다, 애써 답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와 달리 "기꺼이 그리하겠다"는 대답이 쉬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적응하고 나면, 그래서 문제가 더 이상 문제로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괜찮은 것일까. 이러한 대체복무가 내 양심과 신념을 지키는 방법이 될 수 있을까. 성소수자로서 나는 적응 이상의 무엇을 나의 대체복무에 담아낼 수 있을까. 답을 찾지 못한 질문이 오늘도 대체복무 현장을 떠돌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쟁없는세상 블로그에도 실립니다.승준(가명)님은 병역거부자로 현재 대체복무를 하고 있습니다. 안전상의 이유로 가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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