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걱정없이 뛰놀고 책읽고… 4층까지 뻥 뚫린 아이들 천국
“여기 때문에 이사 안 갔어요. 무엇보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어 좋아요.”
경기도 시흥시 배곧신도시에 위치한 학교복합시설 배곧너나들이 센터(이하 센터)에서 만난 강은혜(36·여)씨는 이렇게 말했다. 강씨는 초등학생 두 명과 미취학아동 한 명을 키우고 있다. 막내와 센터 1층 쉼터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왔다고 했다. 그는 경기도 부천시로 이사할 계획이었지만 결국 이 동네에서 더 살기로 했다. 그는 “이사 가려던 동네엔 센터를 대체할 곳이 없었어요. 거기 가면 사교육으로 아이들을 돌려야 할 듯했는데 (학원 이동 간) 안전 문제 등도 무시할 수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특히 첫째 아이가 집에 혼자 있는 걸 싫어하는데 책을 좋아해 센터 2층의 도서관을 즐겨 찾는다고 했다.
학교복합시설은 지방자치단체, 교육청, 학교가 협업해 만드는 공간이다. 예컨대 지자체와 교육 당국이 각각 50억원을 투자해 도서관 2개를 짓지 말고 100억원을 들여 크고 좋은 도서관을 만들어 공유하는 개념이다. 수영장, 공연장, 보육 시설 등 다양한 시설에 적용할 수 있다. 인구와 학생이 줄어드는 농어촌·구도심에선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인구가 증가하는 신도시에서는 학교 공간과 주민들의 문화 시설 부족 문제를 해소하는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학교복합시설 확대의 걸림돌 중 하나는 학생 안전이다. 학생이 공부하는 공간에 외부인이 드나드는 것에 대한 우려다. 이를 고려해 학교복합시설에는 범죄예방 건축설계기법인 ‘셉티드’(CPTED·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 설계가 적용되고 있다. 센터는 설계 단계부터 셉티드가 적용된 시설이다. 지난 7일 오후 학교와 센터를 찾아가봤다.
센터는 배곧누리초등학교와 2·3층이 다리로 연결돼 있고, 오솔길을 사이에 두고 숲속향기공원과 마주보고 있다. 학교 정규수업이 종료되자 한 무리의 아이들은 공원으로 다른 무리는 센터로 뛰어 들어갔다. 학교와 센터, 공원의 출입구의 접점에 있는 공터에는 저학년 학부모들이 자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생과 주민이 가장 빈번하게 만나는 공간은 센터의 1층 로비였다. 센터 관계자의 설명을 듣기 전까지 범죄예방 설계가 어디에 적용됐는지 인식하기 어려웠다. 핵심은 ‘개방감’이라고 했다. 장벽이나 장애물이 오히려 안전을 위협한다는 설계 철학이 녹아 있었다. 탁 트인 구조로 사각지대를 없애 ‘모두가 모두를 지키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셉티드 설계에선 이를 ‘자연적 감시’라고 부른다.
1층은 출입 공간과 카페 공간, 센터 사무실, 너나들이 쉼터(이하 쉼터)로 구분된다. 카페는 주민들이 바리스타 수업을 듣는 곳이다. 옆에 있는 사무실에는 관리 인력이 상주한다. 사무실과 출입 공간은 마주보고 있다. 센터 관계자는 “자주 오는 분의 얼굴은 거의 안다. 낮선 사람 오면 ‘어떻게 오셨어요’라며 확인한다. (방과 후에는) 유일한 출입구여서 무단 침입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학교와 센터를 잇는 다리는 정규 수업시간 교사가 학생을 인솔해 학교에서 센터 공간으로 넘어올 때만 열린다. 그 외 시간은 통제된다.
셉티드 설계가 가장 짙게 녹아있는 곳은 아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쉼터다. 방처럼 신발을 벗고 들어가 보드게임을 하거나 뒹굴뒹굴할 수 있다. 한 4학년 아이는 “‘너나들이에서 봐’ 하면 여기로 와요. 오늘은 방과 후 수업과 영어 학원을 가는데 1시간 정도 비어 여기서 친구들과 놀아요”라며 말했다.
쉼터는 천장이 4층까지 뚫려 있다. 2~4층 복도에서 내려 볼 수 있다. 통유리로 된 엘리베이터에서도 보인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잘 놀고 있는지 사방에서 확인 가능한 구조였다. 천장이 뚫려 있어 소리 통로 역할도 한다. 센터 관계자는 “사무실에서 다른 층에서 아이들이 울거나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CCTV는 37대 있는데 자연적 감시의 보완 역할을 한다”고 했다.
도서관도 사각지대가 최소화돼 있었다. 외부인이 도서관을 이용하려면 1층 로비를 거쳐 CCTV를 지나 2층으로 가야 한다. 다른 출입 경로는 없다. 도서관 내부로 들어서면 사서 직원 너머로 책이 꽂힌 서가(書架)가 눈에 들어온다. 서가 높이는 초등학생 키 정도다. 학생 눈높이를 고려하면서 동시에 사각지대를 없애려는 의도라고 했다. 사서 직원이 앉아서 도서관 내부에서 이용자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센터 관계자는 “보는 눈이 많아질수록 공간은 더 안전하다는 걸 체감 중”이라고 말했다.
센터는 학교복합시설의 장점인 ‘지역 사회와 학교의 접점’ 기능을 살려가고 있었다. 주민에게는 필라테스, 라인댄스, 고전인문학, 우쿨렐레 등 지역맞춤 프로그램과 주민 동아리 활동을 펼 수 있는 복합 문화공간이다. 지역 사회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강사들에겐 지역 주민과 학생을 만나는 공간이다. 학교의 공간 부족 문제도 덜어주고 있다. 아파트에 둘러싸인 배곧누리초는 학생 수가 많아 늘 공간이 부족하다. 방과후학교 과정 13개 중 10개가 센터에서 이뤄진다. 일부 학교 동아리 활동과 저학년을 위한 늘봄학교도 센터 공간이 활용되고 있었다.
시흥=글·사진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하철 피바다 만든다”…자리 양보 부탁에 승객 폭행한 20대男
- “김건희에 돈 받아 갚겠다” 명태균 업체가 쓴 각서 공개돼
- “아들에 상속” 정우성…이정재와 공동매입 건물 ‘500억’
- 동덕여대 총학 “학교가 사과하면 본관 점거 해제 재고”
- “임영웅 국민적 인기 이유는…” 학계 분석까지 나왔다
- [작은영웅] “할머니 보이스피싱 같아요” 두 남고생의 반전 결말 (영상)
- “여자 속이고 이용” 美국방장관 지명자 母 분노 이메일
- 86억에 산 바나나 ‘꿀꺽’…中 코인부자 충격 퍼포먼스
- 정우성 혼외자 논란에…나경원 “등록동거혼 도입할 때”
- 고속도로 사고 운전자, 이틀 만에 탈진한 채 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