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온도 99도' 당근 초고수는 역시 달랐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권진현 기자]
"당근마켓에서 좌식자전거 한번 알아봐라."
형에게서 카톡이 왔다.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가 추운 겨울 집에서 운동을 할 수 있는 좌식자전거를 찾아보라는 것이었다. 끝이 없을 것 같던 무더위도 지나가고 어느새 바람이 매섭다. 이왕 사려고 마음먹은 거 바로 검색에 들어갔다.
새 물건을 사면 클릭 몇 번이면 끝이 나겠지만 중고거래 특성상 여러 물건을 비교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뭐든 대충 하는 나와는 달리 꼼꼼한 형의 오더는 무척 디테일하고 까다로웠다.
- 좌식 실내자전거일 것
- 깔끔하고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을 것
- 가격은 10만 원 이하일 것
- 비용은 본인이 낼 테니, 구매랑 배달은 내가 할 것
- 물건을 구매하기 전 직접 가서 상태를 확인할 것
아니 내가 무슨 백수도 아니고, 깨어 있는 내내 일하는 사람한테 이런 요청이라니. 번거롭다 못해 살짝 짜증이 일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열심히 운동을 해서 건강해질 모습을 상상하며 마음을 차분히 한 채 자전거를 하나 둘 클릭했다.
'좌식 자전거'로 검색을 하니 6개가 나왔다. 형이 말한 조건에 부합하는 물건이 하나 있었다. 딱 보니 상태도 괜찮았다. 판매 옵션에 '직배송' 옵션도 있었다. 결정적으로 판매자의 매너온도는 무려 99도였다! 그런데 볼 것도 없이 구매를 하면 될 거라 생각한 나와는 달리 형은 좀처럼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직접 확인해 봤나?"
|
|
| ▲ 매너온도 99도와 거래라니. 이 정도 온도면 믿고 거래할 수 있지 않을까. |
| ⓒ 권진현 |
어머니에게 현관과 방문 너비를 재어달라 했다. 약 75cm라 했다. 사이즈를 확인 후 판매자에게 자전거의 가로 세로 길이를 물어보며 혹시나 못 넣지는 않을지 우려가 되어 물어본다고 톡을 남겼다. 잠시 후 75cm 정도의 너비라면 충분히 자전거를 넣고도 남는다는 답장이 왔다.
대화를 하다 보니 판매자가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님인 것을 알게 되었다. 치열한 대한민국 땅에서 본인 이름이 명시되어 있는 사업자등록증을 걸고 장사를 하는 분이라면 적어도 물건 하나 가지고 장난을 치거나 남을 속이지는 않을 것 같았다. 직접 가서 보지 않더라도 괜찮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자전거라는 특성상 배송을 오더라도 같이 들고 집 안까지 날라야 할 것이었다. 판매자는 금요일은 불가하고 토요일 영업 이후 7시 반쯤 물건을 배송해 준다고 했다. 다른 때보다 신경이 많이 쓰이는 당근거래였지만 일정을 잡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 물건만 수령하면 될 것이었다.
'매너온도 99도' 고수의 품격
거래 당일 저녁 본가에서 일찌감치 대기 중이었다. 혹시나 몰라 핸드폰 연락처도 남겨드렸다. 그런데 약속시간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혹시 판매자가 약속을 잊었나? 아니면 사기를 당한 건가? 그게 아니면 오다가 사고라도 난 것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한 마음이 조금씩 더해져 갔다
40분쯤 지났을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집이 어디에 있어요? 아니, 4바퀴째 돌고 있는데 도저히 못 찾겠네!"
본가는 아파트가 아닌 단독 주택이다. 대로변이 아닌 좁은 골목길에 위치해 있어 네비를 찍고 오더라도 찾기가 힘든 곳이다. 혹시나 해서 폰번호를 남겨 드렸는데 아니다 다를까, 판매자는 집 주위를 수차례 헤매는 중이었다. 그분은 핸드폰 네비를 보고 운전을 하느라 내가 남긴 톡을 미처 보지 못했다. 계속 집을 찾다가 도저히 안 되어 전화를 한 것이었다.
|
|
| ▲ 당근마켓에서 구매한 자전거. 사진에서 보던 것처럼 상태가 좋았다. |
| ⓒ 권진현 |
"처음에는 (강도를) 1로 해서 타세요. 절대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5분이라도 매일 꾸준히 하세요. 계속하다 보면 다리에 근력이 조금씩 생길 겁니다."
의자 세팅에 이어 사용 방법과 주의사항까지 자세히 알려준 다음, 그분은 주머니에서 뭔가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장판이 상하면 안 되니까 이건 서비스!"
|
|
| ▲ 장판이 손상되지 않도록 자전거 밑에 받칠 깔개를 직접 제작해오셨다. |
| ⓒ 권진현 |
판매자는 단순히 매너온도만 높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무척 따뜻한 분이셨다. 모처럼 효자분을 뵙게 되어 정말 좋았다며 항상 건강하길 바라며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바란다는 후기를 남겨 주셨다. 집을 나서며 아버지를 향해 열심히 운동하시라고, 건강하라는 인사말도 잊지 않으셨다.
또한 연세가 많아 보였지만 꽤나 건강해 보였다. 직접 물건을 배송해 가며 자주 당근 거래를 하는 것 같았는데, 자세히 보니 뒷좌석에 자전거가 하나 보였다. 본가 근처에서 추가 거래가 있다고 하시며 얼른 가야 한다고,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을 달라고 했다.
단 한 번의 거래로 이 정도의 신뢰를 주는 분이라니, 필요 없던 물건도 갑자기 튀어나올 정도로 믿음이 가는 순간이었다. 평소 당근 거래보다 조금 더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좋은 물건을 저렴히 구매할 수 있었고, 부모님 또한 만족해하시니 참 감사했다.덕분에 갑작스러운 한파에도 마음만은 따뜻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