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끄다 만 소방수, 절반의 성공에 그친 김판곤호

이준목 2024. 12. 1.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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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HD, 코리안컵 결승서 포항에 패배... 유종의 미 거두는 데 실패

[이준목 기자]

 11월 30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4 하나은행 코리아컵 포항 스틸러스와 울산HD의 결승전. 종료 직전 포항 강현제가 팀의 세번째 골을 성공시키고 있다.
ⓒ 연합뉴스
김판곤 감독이 이끄는 울산 HD가 또 하나의 트로피를 눈앞에서 놓쳤다.

울산은 지난 11월 30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4 하나은행 코리아컵' 결승전에서 '동해안 라이벌' 포항 스틸러스와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1-3으로 패했다. 최근 K리그1를 3연패했던 울산은 코리아컵까지 더블(2관왕)을 노렸으나 대회 통산 4번째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울산은 K리그1 우승 확정 이후 다른 대회에서는 부진을 거듭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2024~2025시즌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 리그스테이지에서는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5연패 수렁에 빠졌다. 리그스테이지는 12개팀이 경쟁해 8위까지 토너먼트에 진출한다. 현재로서 울산은 예선탈락이 유력하다.

그리고 ACLE의 부진은 코리아컵 결승까지도 그대로 이어졌다. 울산은 전반 38분 주민규의 선제골로 앞섰으나 후반 24분 정재희에게 동점골을 내주며 결국 연장전으로 접어들었고 연장 후반 7분 김인성의 결승골에 이어 추가시간 강현제에게 쐐기골을 얻어맞고 무릎을 꿇었다.

유종의 미 기대했지만...

김 감독은 지난 7월 28일 전임 홍명보 감독이 국가대표팀으로 갑자기 떠나버리며 공석이 된 울산의 '소방수'로 등장했다. 한국축구의 '풍운아'로 꼽히던 김 감독은 프로 선수에서 행정가까지 다채로운 경력을 쌓았지만, 한국축구계에서는 중심보다는 주로 변방을 전전했던 비주류의 이미지가 강하다.

특이하게도 김판곤 감독은 오랜 지도자 경력에 비해 모국인 한국에서 프로 1군 정식 감독을 맡은 것은 울산이 처음이었다. 그나마 부산과 경남에서 수석코치와 감독대행 등을 맡아본 적은 있지만 단기간이었다. 울산은 김 감독이 부임할 당시 선두에 승점 4점 차이로 뒤진 리그 4위에 그치며 우승을 장담할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김 감독은 부임한 지 4개월만에 흔들리던 팀을 빠르게 정비해 우승으로 이끌었다. K리그1에서 김판곤 감독이 거둔 성적은 9승 3무 1패로 승점 30점을 쓸어담으며 극강의 모습을 보였다. 김 감독 개인에게도 사령탑으로서 K리그 첫 우승이었기에 의미가 컸다.

그러나 아시아 국제무대와 코리아컵 결승에서 보여준 충격적인 경기력은, 진화되던 불씨에 도로 불을 붙인 꼴이 됐다. K리그1을 3연패했던 그 팀과 정말 동일한 팀이 맞는지 고개를 갸웃하게 할 정도로 딴판이었다. ACLE에서는 5연패를 당하는 동안 고작 1골을 넣고 13실점을 내줄만큼 동네북으로 전락했다. 코리아컵 결승도 선제골을 넣을 때까지만 좋았을 뿐, 포항의 페이스에 내내 끌려간 경기에 가까웠다. 울산의 전력이 상대팀들에게 크게 뒤질 것이 없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충격적인 결과다.
 11월 30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4 하나은행 코리아컵 포항 스틸러스와 울산HD의 결승전. 울산 김판곤 감독이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여러 대회를 병행해야 했던 울산의 체력적 부담을 원인으로 거론한다. 울산은 올시즌 국내리그와 ACLE에 이어 코리아컵까지 결승에 진출하며 무려 3개 대회를 병행해야 했다. 울산과 같은 조건이었던 포항은 상위스플릿 진출을 확정지은 이후로는 코리아컵에 더 집중했다. 광주는 코리아컵을 준결승에서 마감했고 리그에서는 9위로 하위스플릿에 그쳤지만 강등권까지는 거리가 있었기에 자연히 리그 일정에 여유가 생겼고 ACLE에 더 주력할 수 있었던 것이 선전의 비결로 이어졌다.

반면 울산은 막판까지 아슬아슬한 리그 우승 경쟁을 펼치느라 상대적으로 ACLE까지 신경쓸 여력이 부족했다는 평가다. 어렵게 리그 우승을 확정짓고 나서는 선수들의 집중력이 크게 느슨해진 감이 없지 않았다.

아직 ACLE과 코리아컵 결승이 남아있던 상황에서도 울산은 최종전에서 이미 전력외 선수의 은퇴 경기를 챙겨주는 이벤트를 벌이는 등, 팀의 문제점을 점검하고 다음 대회를 준비한다기보다는 마치 시즌이 벌써 끝난 것 같이 해이해진 축제 분위기를 드러냈다. 이미 K리그1 우승에 안주한 울산 선수들에게 ACLE과 코리아컵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절실함'이 보이지 않았다.

'전방압박' 김판곤 전술, 선수 특성과 엇박자?

팀 전력의 정체와 고령화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울산은 최근 몇 년 간 리그 우승을 독차지하며 즉시전력감 선수들을 끌어모으는 데 집중했고 세대교체에 소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민규, 김영권, 조현우, 정우영, 이청용 등은 모두 30대를 훌쩍 넘긴 선수들이다. 몇몇 선수들은 이미 올시즌 에이징 커브 조짐을 드러냈다. 풀백 설영우, 미드필더 박용우 등 핵심 선수들이 해외무대로 이적한 이후 마땅한 대체자를 구하지 못했다는 것도 고민이다.

전방압박을 강조하는 김판곤 감독의 전술상 당연히 선수들의 왕성한 체력과 활동량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현재 울산의 선수구성은 김판곤 감독의 색깔과 어울리지 않는다. 올시즌 울산이 전반보다 후반에 경기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모습을 자주 보였던 것도 이런 구조적인 원인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김판곤 감독은 코리아컵 패배 직후 "결과를 가져오지 못해서, 응원 와주신 팬들에게 송구스럽다. 선수들은 경기를 잘 시작했다. 후반에 여러 사고가 있었다. 잘 대처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은 끝까지 애썼다. 아쉬운 부분은 내년 코리아컵에서 만회하겠다"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올시즌 리그 우승에도 불구하고 ACLE와 코리아컵의 부진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는 데 실패했다. 팬들은 김 감독이 올시즌 보여준 성적표에 반신반의하며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결국 김판곤 감독의 지도력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내년의 울산이 얼마나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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