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 눈먼 은행 재벌이 50년간 벌인 기막힌 일 [ 단칼에 끝내는 곤충기]

이상헌 2024. 11. 3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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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살에 개인 박물관 만들 정도로 남달랐던 로스차일드 남작 이야기

[이상헌 기자]

"엄마, 아빠, 나는 박물관을 만들거야..."

겨우 7살 먹은 로스차일드 남작의 말이다. 시오니즘 지도자로서 '밸푸어 선언'을 이끌어 낸 정치인의 진심이었다. 1917년 영국의 외무장관 아더 밸푸어(Arthur J. Balfour)는 라이오넬 월터 로스차일드(Lionel Walter Rothschild)에게 서한을 보낸다. 밸푸어 선언이라 칭하는 이 편지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 건설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하겠다'는 내용이다.

월터의 친구이자 초대 이스라엘 대통령이 되는 하임 바이츠만(Chaim Azriel Weizmann)이 함께 노력을 기울인 결과였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막대한 물자가 필요했기에 유대인 사회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야 했다. 밸푸어의 서신은 이스라엘 건국의 초석이었으나 근현대사를 거치며 중동 문제의 시발점이 된다.

로스차일드 남작은 당시 유럽 금융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자연사에 헌신한 인물이다. 라이오넬은 어린 시절 부터 곤충 채집에 빠져들어 나비를 비롯한 여러 동물을 수집했다. 10살에는 개인 박물관을 만들 정도로 남달랐다. 21번 째 생일에는 트링(Tring) 자연사 박물관을 열었고 삼년 후에 일반에게 공개한다. 개인이 모은 자연사 컬렉션으로서는 단연 최고이자 최대의 박물관이다.
▲ 거북이를 탄 월터 로스차일드. 런던자연사박물관 홈페이지를 장식한 라이오넬 월터 로스차일드.
ⓒ Natural History Museum
라이오넬은 기이한 행동으로도 대중에게 알려져 있으니 거대한 거북이를 타고 사진을 찍었다. 버킹엄 궁전에 초대받았을 때는 얼룩말이 끄는 마차를 몰고 갔다. 상식과는 달리 얼룩말을 길들일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곤충에 탐닉했던 로스차일드 가문의 세 인물에 대해서는 <관련기사: 역사에 남은 과학자의 남다른 제2의 관심사>에서 살펴봤다. 뒷날 조카인 미리엄 로스차일드는 큰아버지 월터에 대한 전기(Walter Rothschild: The Man, the Museum and the Menagerie)를 펴낸다.

각 분야의 전문가와 손잡고 세계를 누비다

라이오넬은 불혹의 나이에 일선에서 물러난다. 그는 40대에 만든 동물원과 20대에 설립한 박물관을 통해 전 세계로의 탐험을 시작한다. 이 기나긴 여정에는 그동안 모아 놓은 3만여 권의 조류학 서적을 갖춘 도서관이 함께 했다.

로스차일드 남작은 각 분야의 여러 전문가(탐험가, 수집가, 곤충학자, 박제사, 사서 등)를 고용하여 방대한 컬렉션을 구축한다. 평생에 걸쳐 약 400명의 수집가와 손잡고 48개국 이상에서 표본을 모았다. 그는 자연과학에 헌신하며 약 800개에 달하는 출판물을 펼쳐낸다.

1894년에는 트링 박물관의 동물학 저널(Novitates Zoologicae)을 창간하여 55년에 걸쳐서 42권으로 출간했다. 두 명의 편집자와 함께 했으니 조류를 담당한 언스트 하터트(Ernst Hartert)와 곤충을 맡은 칼 조던(Karl Jordan)이다.
▲ 노비타테스 조올로기카이(Novitates Zoologicae)의 박각시 삽화. 로스차일드가 세운 트링 박물관에서 55년 동안 출간한 동물학 저널.
ⓒ Natural History Museum
이 기간 동안 그들은 1700권이 넘는 과학 서적과 논문을 출판했다. 아울러 5000여 종의 새로운 동물 종을 기술했다. 로스차일드 컬렉션에서 나비목 곤충은 225만 마리였고 딱정벌레는 3만여 종이다. 새 가죽은 30만 장을 모았고 새 알은 20만 개를 넘는다. 이 밖에도 각종 포유류와 파충류, 어류 표본 수천개가 있었다. 이 수집물은 로스차일드 사후에 대영박물관에 기증된다.

새는 하터트가 맡고 곤충은 조던이 책임지다

독일 함부르크 태생인 하터트는 1892~1929년 까지 박물관장이자 조류학 큐레이터로 활약했다. 로스차일드를 대신하여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박물관을 과학 교류의 중심지로 만드는데 힘을 다했다.

조던은 분류학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 독일-영국의 곤충학자다. 국제곤충학회를 창립하여 나비, 딱정벌레, 벼룩의 분류에 많은 공을 세웠다. 1930년 부터 박물관장을 맡아 400편 이상의 논문을 냈고 3천여 종의 곤충을 동정했다. 아울러 월터, 동생인 찰스 로스차일드와 협력하여 850여 종을 추가로 기술했다.
▲ 지구상에서 가장 큰 나비 패거리에 속하는 비단제비나비 표본. 날개편 길이가 30cm 정도로 커서 '새날개(Birdwings)'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 이상헌
분류학자들이 로스차일드 남작의 공로를 기억하며 250여 종의 동물에 그의 이름을 명명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나비 종에 속하는 '비단제비나비(Ornithoptera rothschildi)'가 그 중 하나다. 조던은 도마뱀(Karusasaurus jordani) 학명으로 기념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나비목학자들의모임(Lepidopterists' Society)' 에서는 조던을 기리기 위해 매년 '칼 조던 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의 사진은 글쓴이의 초접사 사진집 <로봇 아닙니다. 곤충입니다>의 일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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