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 장기화에 뇌졸중 치료 ‘빨간불’…“내년 대규모 인력 이탈 우려”

신대현 2024. 11. 30.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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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뇌졸중학회, ‘급성 뇌졸중 인증의 제도’ 정책세션 개최
전국 뇌졸중 전문의 436명…IV tPA 가능 병원 195개
“뇌졸중 인증의 제도 유지 방안 고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 안으로 의료진이 들어가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의정갈등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골든타임’을 요구하는 뇌졸중 치료 현장이 전문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얼마 없는 인력으로 버티고 있지만 내년 지방 의사들의 대규모 이탈이 예상돼 지역의료 현장의 위기감이 고조된다.

대한뇌졸중학회는 29일 서울 용산구 드래곤시티호텔에서 국제학술대회를 열고 ‘급성 뇌졸중 인증의 제도’를 주제로 정책세션을 개최했다.

‘급성 뇌졸중 인증의’란 뇌졸중학회와 신경과학회가 급성기 뇌졸중 치료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과 수련을 받고, 최근 10년간 뇌졸중 환자를 응급실이나 입원 병실에서 100건 이상 진료한 의사를 대상으로 심사해 선정한 뇌졸중 치료 전문가를 일컫는다. 뇌졸중학회에 따르면 지난 6월 도입돼 517명의 의사가 심사를 받아 최종 505명이 인증 자격을 얻었다.

혈관이 막히거나(뇌경색) 터지면서(뇌출혈) 뇌손상을 일으키는 질환인 뇌졸중은 골든타임이 있는 대표적인 중증 질환이다. 혈액과 산소를 공급받지 못해 뇌세포가 괴사하면 살릴 방법이 없어 최대한 빠르게 치료하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골든타임 안에 병원을 찾지 못하는 환자가 적지 않다.

학회가 발간한 ‘뇌졸중 팩트시트 2024’에 따르면 국내 성인 60명 중 1명은 뇌졸중 환자이며 매년 10만5000명의 새로운 환자가 생길 만큼 흔한 질환이지만, 2022년 기준 허혈성 뇌졸중 환자 중 발병 후 3.5시간 이내에 병원을 방문한 사람은 26.2%에 불과했다. 골든타임 내 재개통 치료를 받은 환자는 전체의 16.3%에 그쳤다. 재개통 치료란 혈관에 얇고 유연한 관인 카테터를 넣어 혈전을 제거하는 시술법이다. 정맥에 혈전용해제를 투여해 혈전을 녹여내는 주사 치료(IV tPA)도 시행된다.

과중한 업무 부담과 저조한 보상체계 등으로 인해 뇌졸중을 포함한 신경계 중증 질환 전문의는 부족한 실정이다. 급성기 뇌졸중 치료는 신경과 의사들 사이에서도 기피 의료행위로 꼽힌다. 2023년 6월 기준 국내 뇌졸중 전문의는 436명으로 서울이 90명으로 제일 많고, 부산·울산·경남 80명, 대구·경북 61명, 대전·충청 59명, 경기 57명 순이다. 인천과 강원, 제주는 각각 17명, 13명, 9명 뿐이다. IV tPA가 가능한 병원은 전체 195개로 인천과 강원이 각각 6개, 9개로 전국에서 가장 적다. 신경중재치료(혈관 내 시술)가 가능한 신경과 전문의·병원 수는 극소수다. 전체 56명·41곳 중 서울과 경기에 각각 18명·13곳, 16명·11곳이 있다. 대부분 수도권에 쏠려 있는 셈이다. 지난해 뇌졸중 전임의(펠로우) 수는 전국 단 6개 병원에 있는 12명이 전부다.

허성혁 경희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29일 서울 용산구 드래곤시티호텔에서 개최된 대한뇌졸중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 “의정갈등이 어느 정도 해결돼야 뇌졸중 인증의 제도나 진료 시스템이 유지될 텐데 좋지 않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어 이를 어떻게 유지해나갈지 고민이 든다”고 말했다. 사진=신대현 기자

정부 의료개혁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을 이탈하면서 뇌졸중 전문의 확보는 더 어렵게 됐다. 김경문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내년에 전문의가 얼마나 나올지 모르겠다”며 “올해 서류 제출 미비자나 신청하지 않고 그냥 넘어간 사람까지 포함하면 신규 급성 뇌졸중 인증의는 30~40명 안팎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전망했다.

병원에 남아 있던 기존 인력들도 이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허성혁 경희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지난주 지방에 있는 모 대학병원 교수님의 연락을 받았는데 내년 2월에 신경과뿐만 아니라 다른 과 교수님들이 대거 그만두고 서울이나 경기권으로 올라온다고 한다”면서 “의정갈등이 어느 정도 해결돼야 뇌졸중 인증의 제도나 진료 시스템이 유지될 텐데 좋지 않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어 이를 어떻게 유지해나갈지 고민이 든다”고 토로했다.

김영서 한양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신경과 전공의들이 치매, 파킨슨병 등 노인성 질환 쪽으로 몰려가는 분위기다”라며 “뇌졸중 의사는 늦은 시간까지 오래 일하고 위급상황에선 급하게 나와야 하며 밤마다 응급콜을 받기 위해 기다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보니 뇌졸중 진료를 하려는 전공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 병원에 뇌졸중 의사가 2명 있으면 1년에 180일씩 나눠서 당직을 서고, 3명이 있으면 120일씩 당직을 서는데 한 명이 힘들어서 그만두면 혼자 365일 매일 당직을 서야 한다”면서 “과연 그런 상황이 생겼을 때 그 자리를 계속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지방 의사들은 돈을 덜 벌더라도 사람 많은 곳에서 편하게 일하는 게 더 나은 삶이라고 생각해서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것 같다”며 “올해도 많이 올라왔지만 내년 3월에는 더 많은 이동이 있을 것으로 보여 우려가 크다”고 덧붙였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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