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주 사고 후 남겨진 강아지” 게시글이 만든 기적 [개st하우스]
“이웃집 아저씨가 교통사고로 의식불명에 빠졌는데 치매를 앓는 70대 어머니는 요양원으로 가고 반려견 구슬이는 집에 방치된 상태예요. 곧 시보호소로 가면 안락사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네요. 사료를 챙겨주고 있는데 너무 가엾습니다. 우리 구슬이 꼭 도와주세요.”
지난 8월 동물구조단체 팅커벨프로젝트의 온라인 게시판에 절절한 사연이 올라왔습니다. 견주가 교통사고로 중태에 빠져 치매 어머니와 반려견이 방치됐다는 안타까운 내용이었죠. 다행히 어르신은 보호 시설로 옮겨졌으나 문제는 남겨진 반려견 구슬이였어요. 동네 주민들이 사료와 물은 챙겨주고 있지만 그런 식으로 유지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때 나선 게 이웃 주민 정순이(57)씨였습니다. 평소 구슬이와 견주를 알고 있던 그는 동물단체 회원들에게 긴급 구조요청을 띄웠습니다. 구슬이는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멀리 경남에서 타전된 순이씨의 구조 요청에 곧바로 전국의 회원들이 움직였습니다.
경남 김해에 사는 구슬이 견주인 김성근(40대·가명)씨는 부지런하고 성실한 효자였습니다. 건설 노동자였던 김씨는 눈을 뜨기도 버거운 이른 새벽에 일터로 떠나면서도 두 가지는 절대 잊지 않았다고 해요. 치매를 앓는 70대 어머니의 식사와 반려견 구슬이의 산책이었죠. 본인은 해진 외투를 걸치면서도 노모와 구슬이에게는 두터운 새 패딩을 살뜰하게 챙겼습니다. 매일 새벽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는 김씨와 쪼르르 다가와 손을 핥아주는 구슬이를 만나는 건 동네 주민들에게 작은 즐거움이었습니다.
행복한 일상은 지난 8월 김씨가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무너졌습니다. 머리를 심하게 다친 김씨는 급히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의식불명에 빠졌고, 보호자를 잃은 치매 노모는 요양원으로 가야했습니다. 그리고 반려견 구슬이는 텅 빈 집에 홀로 남겨졌습니다.
독거인(무연고자) 신변에 이상이 생기면 남은 반려동물은 통상 시보호소로 이송 조치됩니다. 대부분은 10일의 공고기간을 거친 뒤 안락사 절차를 밟게 됩니다. 세 집 중 한 집이 1인가구이고, 그들이 키우는 반려동물이 62만 마리나 되는 시대. 사고로, 질병으로 보호자가 떠난 뒤 방치되는 동물의 숫자는 계속 늘어납니다. 결과는 안락사 폭증일 수밖에 없죠.
위기의 구슬이를 돕기 위해 나선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웃 주민 정순이(57)씨입니다. 사회복지사였던 정씨는 구슬이를 돕기 위한 방법을 고민했고, 평소 정기후원하던 팅커벨의 온라인 게시판에 구슬이의 사연글을 올렸습니다.
온라인상에는 안타까운 유기동물 사연이 셀 수 없이 많이 떠돌아 다닙니다. 하지만 댓글이 수백 개씩 달려도 정작 구조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죠. 생명을 구하는 건 말이 아니라 시간과 정성, 비용이 드는 ‘노동’이거든요. 동물단체에 구조요청을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동물단체들도 쏟아지는 구조 요청에 모두 응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구슬이는 달랐습니다. 말보다 책임을 앞세운 팅커벨의 ‘구조 책임분담 투표’ 덕분이었어요. 팅커벨에 구조를 요청한 사람은 책임비 30만원을 기탁하면 단체 회원들에게 구조 동의 여부를 묻는 투표를 열 수 있습니다. 회원들이 구조에 찬성하려면 최소 1만원의 ‘구조 분담금’을 내야 하죠. 이렇게 50표가 모이면 구조가 이뤄지게 됩니다. 기탁비까지 포함해 최소 80만원의 비용으로 보호 및 치료에 드는 비용을 감당하는 구조인 겁니다.
팅커벨 황동열 대표는 “구조를 말로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비의 일부라도 함께하겠다는 것이 책임분담 투표의 취지”라며 “이를 통해 회원들 간에 ‘모두가 함께 구한 동물’이라는 깊은 공감대와 자부심이 형성된다”고 설명합니다.
3일간의 투표 결과는 어땠을까요? 구슬이 사연에 총 90인이 찬성하고 207만원의 분담금이 모였습니다. 팅커벨 황 대표는 직접 구조차량을 몰고 경남 김해로 향했고, 왕복 800㎞를 오간 끝에 구슬이는 지난 8월 8일 서울 화곡동의 팅커벨 입양센터에 입소할 수 있었습니다.
하루아침에 보호자를 잃고 낯선 곳에 끌려온 이 상황이 혼란스러웠던 걸까요. 구슬이는 입소 후 며칠 동안은 사료에 입도 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모습이 딱했던 황 대표는 녀석을 집으로 데려가 재우고 먹이며 2주간 돌봤는데요. 그제야 구슬이는 사람의 손길을 받아들였고, 이후에는 입양센터 생활에 적응했다고 합니다.
지난 25일 개st하우스는 팅커벨 입양센터에서 구슬이를 만났습니다. 이날 현장에는 구슬이의 입양 적합도를 평가하기 위해 14년차 행동전문가 미애쌤이 동행했습니다.
보호자와 걸음을 맞추며 얌전히 산책하던 구슬이. 낯선 개가 3m 앞으로 다가오자 으르렁대며 경계심을 보이더군요. 전 견주와 산책할 때는 온순했다는데 갑작스런 환경 변화가 경계심을 키운 모양입니다.
미애쌤은 해법으로 ‘바운더리(영역) 교육’을 제시했습니다. 우선 구슬이가 경계심을 드러내는 거리를 파악해 흙바닥에 큰 원을 그렸습니다. 다른 개가 그 공간을 침범하면 ‘잠시만요’라며 제지한 뒤 인솔자가 구슬이 이름을 부릅니다. 이 때 구슬이가 침착하게 인솔자와 교감하면 간식을 제공했습니다. 문제 상황에서 보호자와 긍정적인 교감을 이어가는 거죠. 이를 1시간 남짓 반복하자 구슬이가 경계하는 영역은 3m에서 2m 내외로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미애쌤은 “반복된 연습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보호자 품에 정착하면 경계행동은 대부분 자연스럽게 누그러진다”며 “좋은 가족을 찾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진단했습니다.
아픈 과거를 딛고 새 출발을 준비하는 구슬이의 가족을 모집합니다. 희망하는 분은 기사 하단의 입양신청서를 작성해주세요.
-4살, 6kg, 중성화 암컷 (배변패드 잘 사용함)
-사람을 좋아하고 간식을 즐김.
-품에 안기는 걸 좋아함. 앉아, 손 가능
-익숙지 않은 동물에겐 다소 경계심이 있음
■입양을 희망하는 분은 아래 이메일을 보내주세요.
tinkerbell0102@hanmail.net
■구슬이는 개st하우스에 출연한 147번째 견공입니다 (106마리 입양 완료)
-입양자에게는 반려동물 사료 브랜드 로얄캐닌이 동물의 나이, 크기, 생활습관에 맞는 '영양 맞춤사료' 1년치(12포)를 후원합니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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