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으면 힘 세지는 조끼 만든 현대차그룹, 웨어러블 로봇에 재도전 왜
외골격(인체 외부에서 근육 지지) 웨어러블 로봇 ‘엑스블 숄더’ 조끼를 입고 팔을 살짝 들어 올리자, 팔이 발사되듯 쑤욱 뽑혀나갔다. 한쪽 팔로 5㎏ 아령을 들어 올렸더니, 팔과 어깨에 전혀 하중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 조끼를 입고 있다면 ‘토르의 망치’도 한손으로 들어 올릴 수 있겠다는 자신감마저 들었다. 조끼가 꽉 끼어 숨쉬기가 다소 불편하긴 했지만, 팔을 올리고 내리는 데는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현대차그룹이 엑스블 숄더를 앞세워 웨어러블 로봇 시장에 다시 도전장을 낸다. 지난 27일 경기 고양시 현대모터스튜디오고양에서 ‘웨어러블 로봇 테크데이’를 개최하고 새 웨어러블 로봇 브랜드인 ‘엑스블’(X-ble)을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엑스블 숄더는 배터리 없이 작동하는 무동력 기기로, 팔을 머리 위로 올리는 ‘윗보기 작업’에 활용하면 어깨·팔꿈치 등 상완의 근력을 보조해 근골격계 부담을 줄여주는 게 특징이다.
윤주영 현대차·기아 로보틱스랩 관절로보틱스팀장은 “완성차 제조공장의 의장 공정에는 차량 하부에서 (위를 올려다 보고) 부품을 체결하는 경우가 많아, 하루 3000~5000회 팔을 들어 올리는 동작을 연 200일 이상 반복하면 관절이 손상될 수 있다”라며 “엑스블 숄더를 착용하면 어깨 관절에 걸리는 반발력이 최대 60% 경감된다”고 말했다. 로보틱스랩은 28일 엑스블 숄더 구매 상담을 시작하고, 내년부터 판매할 계획이다. 또 무거운 짐을 들 때 허리를 보조하는 ‘엑스블 웨이스트’, 보행 약자의 재활을 돕는 ‘엑스블 멕스’ 등도 개발에 나선다.
2019년엔 “착용감 나쁘다” 고배
엑스블 숄더는 현대차그룹의 웨어러블 로봇 재도전 작품이다. 2018년 산업용 착용 로봇 연구에 착수한 뒤, 이듬해 무동력 근력 보조 착용 로봇 ‘벡스’를 공개했지만 직원들의 반응이 썩 좋지 않아 실패했다. 벡스도 상향 작업 보조 무동력 웨어러블 로봇이었는데, 당시 현대차 정비직 등 직원 대상 테스트에서 “착용감이 좋지 않고 정비작업에 적합하지 않다”는 불만이 나오자 도입이 무산됐다.
현동진 현대차·기아 로보틱스랩장(상무)는 “벡스의 바이프로덕트(부산물)가 엑스블 숄더다. 1만명 넘는 직원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제품을 개선했다”며 “(양팔이 한 세트인) 전작과 달리 한쪽 팔씩 사용할 수 있게 했고, 위생을 생각해 조끼를 세탁할 수 있게 했다. 제품이 더 가벼워지고 착용감을 높인 것도 특징이다. 다양한 산업 현장에 맞게 최적화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업고령화…근골격계 질환 리스크 커져
현대차그룹이 웨어러블 로봇 개발을 계속 하는 건 제조업 특성상 ‘산업 고령화’로 인한 리스크가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국내 제조업 근로자 평균연령은 43세로, 10년 전보다 약 3.8세 높아졌다. 매년 정년 연장을 두고 협상 중인 현대차·기아 노사는 기술직(생산직) 촉탁 계약 기한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정년을 62세로 연장한 상태다.
고령일수록 신체 능력이 저하될 가능성이 크지만 이들의 산업 현장 내 비중이 높아지다 보니, 신기술로 그 공백을 메우려는 것이다. 건설·조선·항공·농업 등 다른 산업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미국 포드·록히드마틴, 독일 BMW 등이 제조 현장에 웨어러블 로봇을 도입한 이유다.
포드는 2018년 엑스블 숄더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엑소베스트’를, BMW는 2017년 미국 스파턴버그 공장에 상체·하체용 외골격 로봇을 각각 도입했다. 록히드마틴은 군사용 로봇 ‘포티스’를 산업용으로 개조해 중장비 거치에 활용하고 있다.
━
전문가 “의료용·레저용으로 시장확대 전망”
외골격 로봇은 근력저하 노인의 보행을 돕는 등 의료용으로도 영역을 넓히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9년 소비자가전쇼(CES)에서 처음 웨어러블 보행보조 로봇 젬스(GEMS)를 공개한 뒤, 제품 성능을 향상시킨 의료용 웨어러블 로봇 ‘봇핏’ 출시를 준비 중이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올해 초 “실버타운·피트니스 등 B2B(기업간거래)부터 시작하고, 더 다듬어 B2C(기업과 소비자간 거래) 시장에도 나오려 한다”고 밝힌 바 있다. LG전자는 보행 재활 웨어러블 로봇 등을 개발한 엔젤로보틱스에 초기투자했다.
시장조사업체 커스터머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글로벌 웨어러블 로봇 시장 규모는 2024년 24억 달러(약 3조3400억원) 수준에서 2033년 136억 달러(약 19조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한재권 한양대 로봇공학과 교수는 “최근 로봇의 범주가 ‘작업을 자동으로 수행하도록 하는 기계’를 넘어 ‘사람을 돕는 기계’로 확장되고 있다”며 “인구구조 변화 측면에서 산업 전반에서 근력 보조 기능이 필요해져 향후엔 의료용뿐 아니라 어르신의 산행을 돕는 등 레저용으로도 시장이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양=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부장 들이받고 2500억 번다…'싸움닭' 김대리가 만든 회사 | 중앙일보
- 정우성 "결혼 안한 게 아니라 못한 것"…문가비 임신 중 한 말 | 중앙일보
- 그랜저 탄 부부 팔다리 잘랐다…지존파의 핑크색 살인공장 | 중앙일보
- 박서진 "정신질환으로 병역 면제 판정"…기구한 가정사 재조명 | 중앙일보
- [단독] 주한미군 '스텔스 F-35A' 20대 배치 추진…성사 땐 79대 | 중앙일보
- 4억 주사 맞혀야 산다는데…생존율 30% 다섯살, 기적의 생환 | 중앙일보
- 침대 서랍에 3년간 딸 숨겨 키운 엄마…"주사기로 시리얼만 줬다" | 중앙일보
- 유명 피아니스트, 성매매 혐의로 벌금 200만원 약식기소 | 중앙일보
- 尹부부 의혹 다 때린다…野가 꺼낸 신무기 '살라미 상설특검' | 중앙일보
- 코타키나발루 3분만에 완판, 요즘 알뜰 여행자는 여기서 예약한다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