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2호선까지 건드리는 서울시... '공포의 열차'가 온다
흔한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 '오마이뉴스 기자 박정훈'과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박정훈',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연대를 모색해 나갑니다. <편집자말>
[박정훈 기자]
▲ 서울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이 총파업을 예고하며 준법운행을 시작한 지난 20일 오전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 플랫폼이 지하철을 기다리는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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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서울에 와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곳이 신도림역입니다. 1호선에서 2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 이동을 하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몸이 공중으로 살짝 떠서 승강장까지 옮겨졌습니다. 문이 열리자 사람들은 몸을 구겨 넣기 시작했습니다. 승객들의 비명소리와 다음열차를 이용해 달라는 노동자의 절박한 외침이 뒤섞입니다.
여차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인데 우리는 매일 이런 지옥철을 탑니다. 철도와 지하철 노동자들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올해 2월 국회에서 열린 '철도차량 운전실 감시카메라 설치/운영의 문제점과 철도안전을 위한 토론회' 자료집을 보면 노동자들은 승객들의 무리한 승차 및 승객 끼임에 대한 우려와 운행 중 차량고장, 승객 민원 등으로 심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코레일과 서울교통공사는 철도와 지하철 인력을 감축하고, 2호선을 1명이 운행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철도와 지하철 노동자들은 참다 못해 투쟁을 선포했습니다. 철도 노동자들은 회사의 업무매뉴얼에 따라 안전하게 열차를 운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승객 승하차 확인을 철저히 하고, 역 정차 시간을 지키는 행동입니다. 그러자 코레일이 시민들에게 재난 안전문자를 보냈습니다.
"11월 18일부터 전국철도노동조합 태업이 예고됨에 따라 일부 전동열차 운행이 지연될 수 있으니 열차 이용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언론이 '태업'을 받아쓰기 시작했습니다. 노동자들은 '안전한 일터 지키기 행동'이라고 말했지만 기사 제목에 '태업'이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철도 노동자는 12월 5일, 서울지하철 노동자들은 12월 6일 총파업을 하겠다고 선포하자 '태업'은 '대란'으로 바뀌었습니다. 공기처럼 편안하게 달리던 철도와 지하철이 천천히 달리기 시작한 이유를 '태업'과 '대란' 두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언론노동자 박정훈에게 공공운수노조가 파업을 벌이는 이유를 편지로 보냅니다.
▲ 지난 6월 17일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이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9일 3호선 연신내역 전기실에서 직원이 작업 중 감전돼 사망한 사고와 관련해 서울시와 공사의 사과와 엄정한 사고 원인 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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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는 서울 3호선 감전사고를 일으킨 서울교통공사에 3억 60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했습니다. 3억 6000만원으로는 사람의 목숨을 되살릴 수 없습니다. 처벌만이 아니라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근본적 대책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철도와 지하철을 운영하는 코레일과 서울교통공사, 예산을 쥐고 있는 서울시와 기획재정부는 안전과는 정반대로 역주행 중입니다.
코레일은 차량정비와 시설유지보수, 전기유지보수 841명, 운전과 역무업무 589명 등 총 1566명을 줄이거나 외주화하려고 합니다. 전기유지보수업무를 하다가 노동자가 계속 사망하고 있는데 인력감축과 외주화를 추진하는 걸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차량정비와 시설유지보수업무는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일입니다.
서울 지하철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경영혁신 추진계획으로 2026년까지 2200여 명의 인력을 감축시킬 예정입니다. 2023년 이미 외주화 등으로 380명을 감축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소유권을 민간에 넘기는 게 민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업무를 하나하나 쪼개서 민간에 맡기는 방식으로 민영화를 추진합니다. 노동 위탁을 통한 민영화입니다. 노동자들의 파업은 국민의 철도와 지하철을 지키는 행동입니다.
▲ 지하철 9호선 고속터미널역에서 출근길 시민들이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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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들은 소송까지 불사했지만 법원이 서울시의 손을 들어줘 요금인상을 막았습니다. 이쯤 되면 공공이 직접 지하철을 운영하는 걸 검토해야 하는데 서울메트로 9호선의 주주가 교보생명과 한화생명 등으로 바뀌고 요금결정권을 서울시가 가져가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현재 최대 주주는 부산은행입니다.
9호선은 기존 개화역-신논현역에서 신논현 중앙보훈역으로 연장되었습니다. 이 구간은 서울시와 국가재정으로 건설했는데 서울교통공사가 운영을 하는 게 아니라, '서울메트로9호선운영'이라는 자회사에 맡겼다가 다시 서울교통공사가 운영을 합니다. 정확히는 서울교통공사가 아니라 9호선 운영부문이라는 사내독립법인이 운영합니다. 시민들은 서울교통공사가 운영하는 거라고 생각할겁니다. 아닙니다. 서울시가 서울교통공사의 사내독립법인과 별도의 위수탁계약을 맺어서 예산과 인력이 이 계약서에 제한을 받습니다.
9호선 연장으로 인력 증원이 필요하지만 서울시는 위수탁계약으로 인력증원을 묶어버렸습니다. 9호선 역사에 사람을 찾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선로는 연결되어 있는데 회사는 쪼개지고 예산운영과 권한도 쪼개지면서,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2023년 8월 신논현역에서 흉기 난동과 가스 누출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신논현에 연락을 했지만 신논현을 관리하는 직원은 단 1명입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지요. 다행히 오인신고였지만, 이 과정에서 승객이 대피하다가 7명이 다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현재 9호선은 3명의 지하철 보안관이 무려 13개 역을 관할하고 있습니다. 김성민 서울메트로 9호선 지부장은 9호선 지옥철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역무원들은 만성적인 1인 근무로, 사고가 발생하거나 난동자가 있을 때 홀로 대처해야 하고, 기관사들은 연장근무에 시달려 피로감이 누적된 상태로 열차 운전을 합니다. 기술 직원들은 인력 부족으로 업무 과중이 이루어지다 보니 제한된 시간에 쫓기듯 점검 및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서울시의 지적을 받아 서울교통공사가 적정인력 산정 연구용역을 진행한 결과 무려 196명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신논현역에서 종합운동장까지는 2015년에, 종합운동장과 중앙보훈역까지는 2018년에 연장되었다는 걸 생각하면 노동자들은 무려 9년을 인력충원 없이 견뎌왔던 겁니다. 파업은 국가가 하고 있었던 것이고, 노동자들은 국가가 일을 하지 않아 생긴 문제를 헌신적인 노동으로 해결해 왔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는 곳이 한 두 곳이 아닙니다. 서해선 소사-원시 구간은 국토교통부가 관할하고 코레일이 운영해야 하는데 이곳 역시 민자투자로 만들어졌습니다. 운영권을 획득한 민간업체 이레일(주)는 서울교통공사에 다시 재위탁하였고, 서울교통공사는 서해철도(주)라는 자회사에 다시 재위탁합니다. 용인경전철도 용인시와 시행사 운영사의 다단계 구조입니다. 용인경전철은 3~4개 역을 1명이 관리하는 무인화를 추진 중입니다. 이를 '스마트역사'라고 부르는데 죽음의 역사라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 지난 26일 공공운수노조는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안전한 사회·평등한 일상·윤석열 퇴진을 내건 공동파업·공동투쟁 돌입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 공공운수노조 |
철도와 지하철을 민간에 넘기고 복잡한 다단계 구조를 만드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돈 때문입니다. 국민들은 공공서비스를 수익을 우선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위주로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파업을 준비 중인 공공운수노조는 국민들의 생각이 궁금했습니다.
여론조사기관 메타보이스에 의뢰해 11월 13일부터 20일 까지 8일간 국민 125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민간 지하철을 다시 정부와 지자체가 운영해야 한다는 의견은 71.1%, 인력 충원을 해야 한다고 답한 국민은 82.7%였습니다. 국민들은 철도 지하철 노동자들의 파업 이유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겁니다.
오늘(28일) 아침 김문수장관은 공공운수노조의 파업을 철회하라고 했습니다. 고용노동부장관이 파업 철회를 요청해야 할 곳은 공공운수노조가 아니라 사태를 방기한 국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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