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의 대잔치... 정부, 금융회사, 전문가 모두 한패다

문진수 2024. 11. 28. 10:3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돈이 선하게 쓰이는 세상을 꿈꾸며 ①

사회와 경제를 움직이는 혈관인 금융의 사회성을 회복하고 대안적인 금융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비영리단체‘사회적금융연구원’은 11.27일 국회에서 한국 사회적금융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조망하는 포럼을 개최했다. 이글은 이번 포럼에서 논의된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으로,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우리나라 사회적금융(social finance)의 현주소와 전망을 소개할 예정이다. <기자말>

[문진수 기자]

[기사 수정 : 28일 오후 2시 3분]

금융시장에서 탈락/배제된 이들을 일으켜 세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신용구제(credit relief)라고 한다. 신용구제는 두 가지 길이 존재한다. 법원의 판결을 통해 이루어지는 공적 채무조정, 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를 통한 사적 채무조정이 그것이다. 전자는 진입장벽이 높지만, 개선 효과가 크다. 후자는 법원에 비해 효과는 낮지만, 신속성과 다양성을 갖추고 있다.

정부가 사적 채무조정을 위해 설립한 기관이 서민금융법을 근거로 만들어진 신용회복위원회와 서민금융진흥원이다. 서금원은 휴면예금관리재단의 후신(後身)이다. 5개 시중은행과 한국자산관리공사, 생명보험사(23개), 손해보험사(11개)가 공동으로 출자해 만들었다. 서금원과 신복위는 공적 기관이지만, 금융회사가 실질적인 '주인'이라는 뜻이다.

신복위는 어떤 방식으로 채무를 조정할까. 채권자 즉 5천 개가 넘는 협약기관의 50% 이상이 '탕감'에 동의해야만 조정이 가능하다. '채권자' 중심이다. 조정 후 다시 건강한 금융 소비자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재기 지원이나 사후관리 프로그램도 헐겁다. 회전문을 통과하는 것처럼, 다시 부채의 늪에 빠질 가능성이 상존한다.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정부는 늘 빚을 늘리는 정책을 펴왔다. 공적 보증기관을 통해 신용을 보강하고 은행 문턱을 낮춰 대출을 확대했다. 당장 급한 불을 끄기 위한 대증요법이다. 하지만 이 정책은 한계가 있다. 빚으로 돌려막기를 하는 건 근본적인 처방이 아니다. 산소호흡기를 떼면 회복 능력이 없는 이들은 빚의 수렁으로 더 깊게 빠지게 된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세 곳 이상의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 수는 2024년 1분기 기준으로 450만 명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이 가계부채 데이터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래 최고 수치다. 이들 대다수가 자영업자다. 빚의 총량은 계속 늘고 있다. 다중채무 자영업자의 대출 잔액은 2분기 기준 753조 8000억 원으로, 불과 석 달 사이에 1조 원이나 증가했다.

연체율로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2024.6)에 따르면,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0.50%(2022년 2분기)에서 1.52%(2024년 1분기)로 3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상환능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취약 차주의 연체율은 10.21%에 달한다. 10곳 중 1곳이 빌린 돈을 갚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법원이나 채무조정 기관을 찾게 될 것이다.
▲ 가계대출 /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 비교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 (2024.6)
ⓒ 한국은행
정부의 서민 금융정책은 빚을 늘리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안이 없는 것 같다. 수혜자는 따로 있다. 돈을 빌려주는 금융회사다. 2018년~2022년 동안, 5대 시중은행이 벌어들인 이자수익만 235조 원이 넘는다. 영업이익의 85%를 이자 장사로 벌어들인 셈이다. 공적 보증기관을 통해 이루어진 대출은 손실 위험이 'O'인 사업이다. 한국적 맥락에서 볼 때, 경제 위기는 은행들이 떼돈을 벌 수 있는 기회다.
한쪽에선 빚더미에 짓눌린 금융소외 계층이 안전망도 없이 추락하고 있고, 한쪽에선 신용창조라는 요술 방망이를 휘두르며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이른바 금융 전문가라는 이들은 '빚을 탕감해 주는 것은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킨다'라는 논리로 다중채무자를 빚쟁이로 몰아간다. 빚을 매개로 작동되는 이 순환 시스템에선 정부도, 금융회사도, 전문가도 모두 한 편이다.
▲ 서민의 든든한 동반자? 은행의 배신 MBC PD수첩
ⓒ MBC
한국의 금융시장 규모는 1990년 158조 원에서 2021년 상반기 5662조 원으로, 지난 30년간 35배 이상 증가했다. 금융시장이 커지면 접근성이 좋아지고 금융 결핍이 줄어들어 다양한 경제주체들이 혜택을 누려야 한다. 현실은 딴판이다. 저신용자와 공익적 가치를 추구하는 단체들은 돈 가뭄에 시달리고 있고 소상공인, 자영업자는 빚더미에 깔려 허덕이고 있다. 결핍과 과잉이 뒤섞여 혼탁한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
은행들이 벌어들인 돈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모두 시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금융위기가 닥치면 정부는 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해 공적 자금을 투하한다.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은행을 살리는 것이다. 이것이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금융회사의 민낯이다. 그런데 시민의 복리 증진을 위해 앞장서야 할 정부는 이런 시장 금융의 약탈성을 용인, 방조하고 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예일대의 쉴러(R.Shiller) 교수는 '금융 자본주의는 인간의 발명품이지만 아직 미완성 상태'라고 말한다. 나아가 '분명한 건 지금 상태로는 부족하다는 것이고 따라서 더 민주적이고 인간적인 금융 시스템이 우리 삶에 폭넓게 스며들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금융이 선하게 쓰일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덧붙이는 글 | 문진수 기자는 사회적금융연구원장입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