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에 분노... 내 무기력함이 더 미웠다"
김수정 2024. 11. 27. 16:30
새내기부터 졸업을 앞둔 학생까지... 대학에서 줄줄이 이어지는 윤석열 퇴진 시국선언
서울여대 24학번 아동학과 재학생이라고 밝힌 이가 쓴 윤석열 퇴진 서울여대 학생 시국선언문 주변엔 공감을 표시하는 포스트잇이 붙기도 했다. 시국선언문을 쓴 학생은 윤석열 정권에 느낀 실망감과 임기 2년 반을 우울하고 희망이 없는 시간으로 보낸 마음을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무기력함으로 표현한다. 이어서 " 투표권이 없던 나는 매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내가 사는 나라의 대통령이 누구인지 실감했다" 며 "더이상 외면할 수도 타인을 원망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한다.
청년들에 대한 외면 뿐만 아니라 살고자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이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며 "뿌리부터 썩은 정권, 어쩌면 최근 밝혀지고 있는 명태균과 김건희의 국정 농단은 국민을 하찮게 여기고 무시하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해도 되는 행동이었을지도 모릅니다"라고 썼다.
[김수정 기자]
▲ 경희대 서울캠퍼스 노천극장 게시판에 부착된 경희대 24학번의 대자보 |
ⓒ 김수정 |
전국적으로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 발표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4천명이 넘는 교수들이 시국선언에 참여한 것에 비해 같은 대학 구성원인 학생들은 잠잠하다며 비교하는 보도 역시 눈에 띈다. 하지만 지난 26~27일 둘러본 대학 내 풍경은 달랐다.
고려대 정경대학 후문에 부착된 대자보를 시작으로 서울 지역 대학 곳곳에는 학내 게시판에 부착된 교수들의 시국선언 대자보 옆에 학생들의 대자보가 자리잡고 있었다.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면 기존에 발표된 시국선언문과는 다른 '나의 이야기'가 적혀있어 더 공감이 된다는 반응이 많다.
양심과 부끄러움 앞에서 터져 나오는 '윤석열 퇴진'
▲ 26일 이화여대 학생문화관 안에 부착된 윤석열 퇴진 대자보 "양심에 찔려 위기를 모른 척 할 수 없습니다." |
ⓒ 김수정 |
이화여대 학생문화관 내부에는 졸업을 앞둔 재학생 명의로 작성된 대자보가 붙었다. 해당 대자보는 기존의 윤석열 퇴진의 이유를 밝히는 시국선언과는 사뭇 달랐다. 윤석열 정권 아래 살아가는 청년으로써 느끼는 진솔한 고백이 담겨 학생들의 공감을 더욱 받고 있다.
시국선언문을 쓴 이는 졸업을 앞두고, 취업준비와 관련 공부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와중에도 외면할 수 없는 윤석열 정권 아래 벌어지는 국정농단 사태와 실정에 삶이 고통스럽다고 호소한다. 특히 그는 "속이 답답하기만 한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제 자신이 부끄럽기만 하다"면서 "윤석열을 뽑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내 삶이 고통스러워야 하는지, 한참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누구나 시대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부끄럽게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나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는 대통령을 그냥 둘 수 없습니다.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대통령을 그냥 둘 수 없습니다. 나와 우리를 갉아 먹으며 제왕적인 권력을 누리는 대통령을 그냥 둘 수 없습니다.
서울여대 24학번 아동학과 재학생이라고 밝힌 이가 쓴 윤석열 퇴진 서울여대 학생 시국선언문 주변엔 공감을 표시하는 포스트잇이 붙기도 했다. 시국선언문을 쓴 학생은 윤석열 정권에 느낀 실망감과 임기 2년 반을 우울하고 희망이 없는 시간으로 보낸 마음을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무기력함으로 표현한다. 이어서 " 투표권이 없던 나는 매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내가 사는 나라의 대통령이 누구인지 실감했다" 며 "더이상 외면할 수도 타인을 원망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한다.
▲ 27일 서울여대 학생누리관 안에 부착된 아동학과 24학번의 시국선언 대자보 |
ⓒ 김수정 |
과거의 나를 위해 지금의 내가 <서울여대 학생 시국선언> -윤석열 대통령은 즉각 퇴진하라!- |
2022년 3월 10일 새벽의 나를 기억한다. 그날의 나는 무력하기 그지없었다. 만 17세의 나이로 투표권이 없던 나는, 그날 새벽을 눈 뜬 채로 지새워야만 했다. 남몰래 조금 울었던 것 같기도 하다. 투표권을 가진 어른들을 원망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나의 무력함에 대해 자책했다. 그날 개인 SNS에 캐나다 오타와의 사진을 올리며 이민을 가야겠다고, 한국을 떠나야겠다고 울부짖었던 기록은 여전히 남아 그날의 나를 상기시킨다. 그날 이후로 얼마나 많은 일이 벌어졌던가. 투표권도 없던 나는 매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내가 사는 나라의 대통령이 누구인지 실감했다. 친구와 전화기를 붙들고 한 시간이 넘도록 역정을 내고 한숨을 뱉어 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것밖에 없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주위를 돌아보던 시선을 거두고 나의 삶만을 영위했다. 2024년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지금의 나는 12월 7일 그날을 바라보고 있다. 내가 가진 참정권을 이대로 썩힐 수 없어서, 타인을 원망하고 싶지 않아서,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며 결국 또 무력했던 자신이라 기억하지 않았으면 해서. 12월 7일 광화문 광장에서 대통령 퇴진을 위한 범국민대회가 열린다. 나와 같은 기억, 다짐을 가진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하나의 목소리를 낸다. 지난 과거의 내가 내지 못했던 목소리를, 지금의 내가 내고자 한다. |
경희대 서울캠퍼스에 부착된 학생 시국선언은 현 정권아래 살아가는 청년들의 삶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시국선언문은 높은 물가 속에서 어렵게 생활하는 청년들의 삶을 지켜주기보다는 청년예산삭감으로 일관하는 앞뒤 다른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더이상 이 나라는 어려울 때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 곳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일갈했다.
쿠팡에서 내 시급과 맞먹는 계란 한 판 가격을 보며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물가가 계속 오르지만 최저시급은 그만큼 오르지 않는 현실이 원망스러웠습니다.
▲ 27일 서울과기대 향학로 게시판에 붙은 21학번 행정학과 재학생의 시국선언 대자보 |
ⓒ 김수정 |
서울과학기술대 행정학과 21학번 재학생이라고 밝힌 한 학생은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는 2022년 여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이 파업 당시 들었던 구호를 시국선언문 제목으로 삼았다. 시국선언문에는 노동혐오를 조장하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었다.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며 절박하게 외친 그들의 구호가 머릿속을 맴돕니다. 또, 특진을 내걸고 경찰력을 동원한 윤석열 정권에 맞서 차마 그 모욕감을 견디지 못해 자신의 몸에 불을 댕길 수밖에 없었던 건설노동자가 떠오릅니다.
마지막 순간 그가 느꼈을 외로움과 분노가 가슴 깊숙한 곳을 찌르듯 파고듭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노조법 2.3조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등 노동혐오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에 대한 외면 뿐만 아니라 살고자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이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며 "뿌리부터 썩은 정권, 어쩌면 최근 밝혀지고 있는 명태균과 김건희의 국정 농단은 국민을 하찮게 여기고 무시하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해도 되는 행동이었을지도 모릅니다"라고 썼다.
각 대학들의 시국선언은 12월 초에 발표할 예정으로 학생들의 연명을 진행하고 있고, 대자보가 부착되고 있는 학교들 역시 더욱 늘어나고 있다. 윤석열 정권 아래 살아가는 청년들은 더 이상 또래의 계속되는 죽음 앞에서 숨어버리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자신의 양심 앞에서 더 이상 자책만 하고 싶지 않다며 윤석열 퇴진에 목소리를 높이는 대학생들이 더욱 많아지고 있다.
학생들이 붙인 대자보 말미에는 대부분 '12월 7일 윤석열 정권퇴진 범국민대회에 함께 나가자'는 호소가 담겨 있다. 더 이상 참지 못하는 대학생들이 12월 7일 광장으로 나와 다시 촛불을 들지 주목된다.
▲ 27일 광운대 중앙도서관 로비에 부착된 " 청년은 한톨의 희망도 느낄 수 없다." 학생 시국선언 대자보 |
ⓒ 김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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