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위기 임박, 이 정부는 왜 손 놓고 있을까 [전용복의 경제뉴스 빨간펜]
[전용복, 경성대 국제무역통상학과 교수]
▲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금융수장들이 8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수출입은행에서 열린 거시경제금융회의에 참석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최 부총리, 김병환 금융위원장. 2024.11.8 |
ⓒ 연합뉴스 |
경기가 좋지 않다는 점은 누구나 피부로 느끼고 있다. 몇 가지 사례를 보자. 지난해 자영업 폐업자 수가 99만 6487명이었다. 절반 가까이가 소매와 음식업이었다. 올해 폐업한 자영자 수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 여파로 소규모 상가의 공실률도 크게 상승했다. 특히 지방의 사정은 더 좋지 않다. 가령, 부산의 소규모 상가 공실률(9.5%, 통계청)은 1년 전에 비해 4.1%p나 상승했다.
영세 자영업의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유수의 대기업들도 대규모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삼성전자, 시중 은행들, LG디스플레이, KT, 엔씨소프트, 신세계그룹, 롯데 등 거의 모든 대기업이 희망퇴직을 신청받고 있다고 한다.
원인은 내수 침체에 있다. '민간 내수 및 수출 증가율' 그래프를 보면 이는 명백하다. 2023년 하반기부터 수출은 크게 증가했다. 대신 민간 내수(GDP에서 정부(소비+투자) 및 순수출 제외) 증가율이 2023년 1분기 약 5%에서 점점 하락해 마이너스를 유지하고 있다.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줄었다는 말이다. 수출 경기는 좋지만, 내수가 문제이다. 그렇지만, 정부는 요지부동, 내수의 어려움을 완화할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인다. 경기가 침체하면 정부가 나서는 것은 상식 아닌가.
▲ 민간 내수 및 수출 증가율(전년동기대비, 실질, %) |
ⓒ 한국은행 |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정부의 태도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민간 경제가 하락함에도 정부가 손 놓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재정 여력이 없어서다. 2021년(61.4조 원)과 2022년(52.5조 원)에는 세금이 예상보다 더 걷혔다. 그런데, 2023년이 되자 세금은 예상보다 56.4조 원 덜 걷혔고, 올해에도 29.6조 원 덜 걷힐 것이라고 정부가 발표했다(전문가 대부분은 세수 부족이 이보다 더 클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초과세수에서 갑자기 세수결손으로 전환된 시기에 정권교체 말고는 다른 어떤 특별한 '경제적' 악재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세금이 덜 걷히는 이유는 두 가지다. 경기가 좋지 않거나, 세금을 깎아주는 경우다. 현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이 세금 깎아주기였다. 그런데, 그 혜택은 주로 고소득층, 부동산 부자들 그리고 대기업에 돌아갔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주로 '수출로 먹고사는' 기업들이다. 수출로 번 돈이 국민 모두에게 전달되려면, 정부가 그중 일부를 세금으로 걷어서 재정으로 지출해야 한다.
그런데 현 정부의 감세정책으로 이 가능성이 크게 줄었다. 수출이 잘 돼도 내수에 별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가 이것이다. 그 결과, 수출과 내수 경제가 마치 다른 나라처럼 별개로 움직인다. 내수 경기가 침체하니 세수는 더 줄어들고, 재정적자를 극도로 싫어하는 정부의 역할은 더 위축됐다.
이쯤에서 더 근본적인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세금이 덜 걷히면, 덜 써야 한다'라는 재정원칙은 '정부가 부채를 늘릴 수 없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경기가 좋지 않아 세금이 덜 걷히면, 정부는 국채 발행을 통해 더 많이 지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한국은행이 5일 발표한 외환보유액 통계에 따르면 10월 말 기준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4천156억9천만달러로, 9월 말(4천199억7천만달러)보다 42억8천만달러 감소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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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정부부채는 부정적이기만 할까? 그들이 제시하는 첫 번째 이유는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전가하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가 빚을 지면 미래 세대가 갚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믿을 수 없는 말이다. 미래 세대는 과거에 정부가 진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 그런 사례도 없다. 대신, 경제 규모가 커지면 정부부채도 상대적으로 작아질 뿐이다. 가령, 정부의 적자 지출이 마중물이 돼 경제가 살아나면 세수가 증가해 재정이 다시 건전해질 수 있다.
두 번째로 잘 알려진 이유는 국가 신용도가 하락하기 때문이다. 더 구체적으로, 정부가 발행한 채권, 즉 국채의 부도 가능성이다. 이 이유 또한 근거가 없는데, 자국 통화로 표시된 국채는 원리적으로 부도날 수 없기 때문이다.
사고실험을 위해 극단적 경우를 가정해보자. 만기가 돌아온 국채를 정부가 상환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한국은행이 인수하면 된다. 돈을 찍어내는 한국은행도 부도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망상일 뿐이다.
실제로 국가가 파산한 여러 사례를 제시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외화로 빌린 돈을 갚지 못한 경우들뿐이다. 금본위제가 폐지된 이후 자국 통화로 발행한 국채가 부도난 사례를 나는 단 하나도 알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우리나라는 기축통화국이 아니라서'라는 이유를 댄다. 기축통화국 국채의 수요는 풍부해서 항상 구매자가 존재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실제로는 원화 표시 국채도 수요는 충분하다. 당장 한국은행이 통화정책 수단으로 사용할 국채마저 부족해, 한국은행이 채권(통화안정채권)을 직접 발행하고 있지 않나.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국채 발행이 증가하면 금리가 상승한다는 주장이다. 재정적자를 위해 국채를 발행하면, 즉 국채 공급이 증가하면 국채 가격이 하락한다는 말이다. 국채에 대한 수요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급이 많아질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이 주장은 위 두 번째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실제로 국채 발행이 증가해서 금리가 상승하는 경우를 난 본 적이 없다. 국채 금리는 이런 정부의 신규 발행량보다는 물가 상승률, 경제 상황, 대체 투자 기회의 존재 유무 등 다른 변수에 영향을 받는다.
어쩌면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재정적자는 물가를 상승시킬 것이라고. 경제가 이미 잘 돌아가는 상황이라면 이 말은 일리가 있을지 모른다. 이미 수요가 팽배해 있는데, 여기에 정부마저 가세해 지출을 늘린다면, 물가 상승 압력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이 그런 상황인가? 동네 가게가 문을 닫는 이유는 수요(내수)가 부족하다는 명백한 증거다. 정부 지출이 증가하면 수요가 증가할 테지만, 현재 부족한 수요를 모두 메우고도 남아서 물가 상승을 유발할 정도의 정부 지출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물가 상승을 유발할 정도로 큰 지출을 원하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온갖 정치적 이슈로 세상이 시끄러운 와중에 경제적 어려움에 무관심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이런 무관심이 더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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