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출 수 없는 택배… 사회적 합의 통해 노동자 과로·수수료 문제 물꼬 터야
쓰레기 배출·물가 압력 등 부작용도
점진적 법제화로 근무환경 개선해야
배송 속도 경쟁은 세계적 추세다. 하지만 도시 인구집중도가 높은 한국은 어느 국가보다 속도 경쟁이 치열한 게 현실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배송기사 과로, 쓰레기 배출량 과다, 소비자물가 상승 등 부작용은 관심을 갖고 억제해야 할 문제로 꼽힌다. 업계 안팎에서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점진적으로 문제 해결의 물꼬를 터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경우 소비자들이 물건을 받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한국보다 길지만 빠른 배송 경쟁이 한국만큼 치열하다. 미국 아마존의 경우 공격적인 물류 투자를 통해 ‘아마존 프라임’ 멤버십 회원에게 우선적으로 당일 배송, 무료 이틀 배송 등 혜택을 제공한다. 중국은 미국에 비해 많은 수의 대형 택배사들이 경쟁 중이고 배송 단위를 시(市)급, 구(區)급으로 촘촘하게 나눠 당일 배송이 가능하도록 전략을 짜고 있다.
일본은 이커머스 발전이 다소 느린 국가 중 하나로 꼽혔지만 최근 인력난에 정부가 비대면 배송을 유도하고 있고, 무인화 시스템 개발에 속도가 붙으면서 오히려 배송이 빨라질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은 지난해 기준 국내 이커머스 업계 규모가 229조원에 달할 정도로 지난 10년간 급격히 성장해 왔다. 국토 면적이 작고, 기업들의 물류 투자 경쟁에 불이 붙으면서 배송 경쟁에 속도가 붙었다. 여기에는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가 작용했다는 해석도 있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빠른 배송은 세계적 추세이고, 한국도 우리 실정에 들어맞는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고민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의 물류 경쟁 시스템은 소비자물가 상승의 위험 요인으로 평가받는다. 한 해에만 51억개 이상의 택배 물량이 처리되는데, 무료 배송 및 반품에 드는 비용의 상당 부분은 기업이 떠안고 있다. 소비자가 부담할 몫의 배송비를 대신 내주는 셈이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무료라는 이름을 붙여 시장 장악력을 높이는 데 힘을 쓰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소비자 확보를 통해 일단 기업 규모를 키우는 것이 ‘남는 장사’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영업 전략은 판매가를 올리는 방식으로 손해를 메울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택배 속도를 늦추는 건 어떨까. 기업들이 빠른 배송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택배 속도를 늦추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거액을 들여 물류 시스템을 만든 상황에서 느린 배송으로 인한 소비자 이탈 시 투자금 회수가 어려워지고 재고 처리 비용이 상승할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공동물류화는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기업이나 택배사가 파트너십을 맺고 동일 지역에서 집하·배송 작업을 공동으로 수행해 물류비용을 절감하고 배송 효율을 높이는 방식이다. 그러나 기업마다 이해관계가 달라 문제 발생 시 중재자 역할을 할 기관이 마땅치 않다. 전문가들은 기존 정책 강화 등 보다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공학과 교수는 “지정 장소를 통해 택배를 가져가는 시스템을 점진적으로 확대하거나 지역 물건을 지역에서 배송 시스템에 한해 지자체 차원에서 세제 혜택을 주는 방식을 생각해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노동 문제에는 노사 협약과 점진적 법제화를 통해 근무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자칫 과로사 등 생명과 직결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합의 속에 노동시간은 노사 자율에 맡기되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의 노동을 할 수 없도록 규제하거나 택배 단가의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등 방안이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2일 택배물류회사에 대한 국토교통부의 관리·감독 강화, 사업자의 냉난방시설 설치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택배기사 등 노동자에 대해 사업장의 철저한 관리를 촉구하고, 사망사고가 발생한 업체에 대해 국토부가 허술한 수준의 감독을 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소비자 의식 개선을 포함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도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는 “오늘 시키면 반드시 내일까지 와야 한다는 통념이 택배 노동환경 개선과 물류 시스템 변화를 더디게 할 수 있다”면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과로사 등을 원천적으로 막고, ‘느린 택배’의 공익성을 토론하는 공론장이 생기면 좋겠다”고 했다.
박성영 김성훈 이다연 기자 ps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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