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료 흔드는 의료 민영화 반드시 막아야"
의-정 갈등 속 의료대란이 계속되고 있다. '의료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지만, 진정한 의료개혁에 대한 논의보다는 윤석열 정부의 근거 없는 '2000명 증원'을 둘러싼 논쟁과 의료 위기가 부각되고 있다. 의료는 모두의 권리이자 복지다. 의료 공공성 강화에 힘써온 의사들과의 인터뷰로 한국 의료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그를 통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아보고자 한다.
<기자말>
[하정은 기자]
* 이 인터뷰는 11월 18일 줌으로 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인문학 교실 부교수 최규진입니다. 간단히 말씀드려 의료 역사, 의료 윤리 등을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최근에는 앞으로 의사-환자 및 의료인-사회 사이의 소통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 보고 이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 지금의 공공의료체계가 되는데 다양한 사건들이 있으며 역사의 굴곡을 지나왔다고 생각하는데요, 그에 있어 큰 전환점들이 궁금합니다.
"의학이 인간의 생로병사를 다 담고 있는 영역이고, 실천을 동반하는 학문이다 보니 사회와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그렇기에 공공 의료의 중요한 전환점 역시 사회의 큰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먼저 해방 이후 미군정 하에서 많은 진보적 보건의료인들이 북으로 가고 이승만 정권 하에서 친미적인 의료인들이 주도권을 잡으며 당시 사회가 염원했던 '국영의료'의 뜻이 좌절되었죠. 박정희 정권 때 사회적 저항에 직면해서야 500인 이상 사업장부터 겨우 의료보험이 시행되었고요. 87년의 민주화 운동과 노동자 대투쟁을 겪고 나서야 전 국민에게 의료보험이 확대되었죠.
그럼에도 의료보험이 조합별로 나뉘어 있어 농민들을 비롯해 가난한 지역 주민들은 의료보험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습니다. 가난한 조합은 보험료를 거둬도 얼마 안 돼 혜택도 적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죠. 이걸 통합하기 위해서 농민들과 노동자들이 끊임없이 싸우고 김대중 정부가 정치적 힘을 발휘해서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전 국민 건강보험'이 탄생합니다. 이후 정권마다 추진한 의료민영화 시도로 인한 후퇴(민간보험 시장 확대 등) 그리고 노동·시민사회가 싸워 만들어낸 여러 결실들('암부터 무상의료' 운동 등)이 합쳐져 현재 한국의 공공 의료체계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수 정권이 의료보험 정책 잘했다?
- 독재 정권 때 공적 건강보험이 만들어지고, 보수 정권에서 건강보험 보장성이 확대되기도 하는데요, 그래서 어떤 이들은 보수 정권이 복지 정책을 더 잘 펼쳐왔다고 합니다.
"권위주의 정권에서 시민들의 저항을 낮추기 위해 사회복지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박정희 정권 때도 1961년에 쿠데타 이후 63년도에 의료보험법을 만들었습니다. 쿠데타의 정당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막상 법을 만들어놓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유신이라는 강력한 사회통제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저항이 끊이지 않자 1977년 의료보험을 시행하죠. 물론 그것도 진전이라면 진전이겠죠. 연표로만 보면 전두환-노태우 시절 지역까지 의료보험 적용이 확대되고, 이명박-박근혜 시절 4대 중증 질환을 중심으로 보장성이 강화되기도 합니다. 이런걸 '복지의 역설'이라고도 하는데, 보수 정권이 위기에 봉착하면 보건복지와 관련한 정책을 제시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이건 보건의료계 시민사회 영역이 그만큼 보수 정권에서도 잘 싸웠단 얘기인 거죠. 또 한편으론 소위 '진보 정권'이 상당히 친시장적이어서 보수 정권과 두드러지게 차이 나는 정책을 펼치지 않았다는 얘기이기도 하고요."
- 윤석열 정부의 소위 '의료 개혁'도 그런 맥락으로 볼 수 있을까요?
"뭐, 외형적으로는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찌 됐건 윤석열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계속 위기였고 그 위기 속에 제시한 정책 중 그나마 국민들의 지지를 받은 게 의사 증원이잖아요. 하지만 그조차도 속내가 워낙 얕아서 약발이 오래가지 못하는 거 같아요. 윤석열 정부가 겉으로 보면 지방의료, 필수의료 살리겠다, 혼합진료 금지하겠다는 둥 여러 '개혁'안을 내놓았습니다만, 실제 의사들을 지역, 필수의료에 공공적으로 배치할 수 있는 방안은 전혀 안 만들고 있잖아요. 지금 형태는 오히려 의사들 몸값 낮춰달라는 대형 병원들의 소원 수리에 가깝죠. 의사 증원보다 시민들에게 더 시급하고 중요한 사안은 오히려 역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대표적인 예로 코로나 대란을 겪고도 예비 타당성 조사 들이대며 지역 공공병원 건립을 막고 있잖아요(관련기사: 의대 증원 이유, 속내 드러낸 윤 대통령 발언 https://omn.kr/2akro).
"공공병원 짓지 않고 민간 병원에 돈 뿌려 해결"
- 건강보험 도입이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큰 도약이라고 생각하는데, 건강보험 전과 후의 의료상황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합니다.
"건강보험 도입 전과 후의 한국 의료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건강보험이 있기에 어쨌거나 한국 의료가 공적 영역에서 굴러갑니다. 미국만 보더라도, '아메리칸 드림' 운운했지만 결국 '미국은 살 나라가 못 돼' 이런 말이 나오는 첫 번째 이유가 바로 공적 건강보험 부실로 인한 비싼 의료 비용이잖아요. 건강보험이 있고 없고는 사회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하나의 기준점입니다."
- 국민건강보험이 있는데도 공공의료가 더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점이 아쉽습니다. 아직 사회적으로 공공의료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너무 부족한 거 같아요.
"역사적으로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체험한 의사와 시민이 많지 않았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인 것 같아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원, 도립의원 등 공공병원의 의사, 환자 모두 거의 일본인이었습니다. 당시엔 공공병원이 의료의 중심이었으나 정작 그것을 체험한 조선인 의사와 시민은 아주 소수였죠. 사실상 조선인에게 공공병원은 있으나 마나 한 존재였습니다. 심지어 일제 강점기 그렇게 많은 의사들 중에 대학 교수였던 사람도 몇 명 안 돼요. 대부분이 도시 중심 개원가에 존재했죠.
이런 상황에서 해방을 맞아 공공의료를 한국인 주체로 전개할 기회가 생겼는데, 미군정과 보수 정권 아래에서 그 기회를 놓쳤습니다. 당시 공공적·사회적 의료를 얘기하면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었기 때문에 '국영의료'의 필요성이 사회적으로 강하게 제기됐는데도 결국 실현되지 못했고, 공공의료를 실현할 수 있는 많은 주체들이 북으로 쫓겨나다시피했죠. 한국전쟁 이후에는 더더욱 우경화돼 미국에 유학 갔다 온 사람들이 중심이 돼 미국의 의료를 최선으로 놓고 보건의료정책을 펼치게 되고요. 한국 사회가 공공의료에 대한 이해가 얕은 건 이런 역사적 맥락도 있다고 봅니다."
"한국의 공적 의료체계는 삼발이 의자와 같아요. 크게 보아 세 가지 축으로 지탱하고 있죠. 모든 국민이 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의무가입제, 모든 의료기관은 건강보험 환자를 봐야 한다는 당연지정제, 마지막으로 의료 공급의 공공성(공공병원)입니다. 이 세 다리는 건강보험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중 다리 2개, 즉 의무가입제와 당연지정제는 비교적 건실한데 공공의료 공급, 즉 공공의료기관 면에서 워낙 부실해서 의자가 흔들리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한국의 공적 의료체계의 과제는 그나마 튼실한 두 개의 다리를 잘 지탱하고, 나머지 짧은 다리인 공공의료기관도 제대로 갖춰내는 것이 되겠죠."
▲ 서울의 한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사 |
ⓒ 연합뉴스 |
"맞아요. 사실 한국전쟁 이후에도 공공의료기관 중심으로 기반을 다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한국전쟁 이후에 많은 원조가 들어와요. 예를 들어, 스칸디나비아 3국의 원조로 국립중앙의료원이 건립됐습니다. 당시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의료기관이었는데 몇십 년 동안 방치해 그 위상이 추락하고 말죠. 또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외국으로부터 엄청난 액수의 차관이 들어옵니다. 그중 많은 돈이 민간병원 지원에 들어갑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1970년대 말부터 의료보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1989년 노태우 정권 들어서 전 국민 의료보험으로 확대되는데, 국민들에게 건강보험의 실효성을 피부로 느끼게 하기 위해선 결국 의료기관을 많이 만들어야 했거든요. 이때 국가가 나서서 공공의료기관을 대거 확충했어야 하는데, 이를 민간병원에 돈을 뿌려 해결했죠. 대학병원들 중에서도 유독 상업적인 병원들 상당수가 이 시기 차관으로 만들어진 것이죠. 공공병원이 부족하고 부실해진 이유는 자원 부족이나 도덕적 해이 이런 거 때문이 아니라 정치인들의 잘못된 정책 판단 때문인 것이죠."
"이명박-박근혜 정부 건강보험 뒤흔드는 시도, 시민들이 막아내"
- 지금도 공공의료가 나아갈 길이 멀다고 느끼지만, 반대로 의료민영화를 하려는 세력도 건재합니다. 의료민영화에 관해 설명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크게 보아, 한국의 공공의료 체계를 지탱하고 있는 건강보험과 공공의료기관을 흔들어 그 역할을 민간이 대체하게 하려는 경향을 의료민영화의 흐름이라고 저는 판단해요. 그중 가장 큰 흐름이 실손보험 등 민간 보험시장의 확장인데, 이를 노리는 세력들이 큰 그림을 그리고 움직이기 때문에 의료민영화를 막고자 하는 사람들이 하나하나 잡아내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개인 정보를 민간보험에다 넘기는 것도 이들이 가장 원하는 것입니다. 개인정보 규제가 느슨해질수록 건강보험 데이터, 병원의 질병 정보들이 민간보험에 흘러갑니다. 그러면 민간보험에서 수익률을 높이고 국민건강보험을 취약하게 만들기 위한 전략을 짜기에 더 유리해지는 거죠.
사실 가장 중요한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의사들이 의료민영화 흐름을 막아서는 데 역할을 해주어야 해요. 영국에선 NHS를 흔드는 신자유주의 흐름을 막기 위해 의사들이 자주 파업에 나서죠. 일본 같은 경우에도 우리나라와 의료 틀이 비슷한데 민간 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거의 없어요. 강력한 비급여 규제인 '혼합진료 금지'가 사회적으로 합의돼 있기 때문인데요. 이 혼합진료 금지 제도를 흔드는 흐름에 맞서 일본 의사들이 성명을 발표하고 그래요. 한국은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오히려 의사들이 실손보험으로 처리할 수 있는 비급여를 유도하는 상황이잖아요.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민간보험 시장이 계속 늘어나 공적 보험이 보장성을 못 늘리고 축소될 수밖에 없어요. 여기에 자본과 결탁한 정치인들이 계속 규제 완화를 해대면 결국 공공병원처럼 건강보험도 시장에 휘둘리게 되고 마는 거죠."
"맞아요. 그 예로 이명박 정부 때 의료민영화를 관철하려 했는데, 광우병 반대 시위와 의료민영화 저지 운동이 이를 막았어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였잖아요. 건강보험 환자를 안 받아도 되는 병원을 만들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공공의료의 세 다리는 굉장히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거든요. 당연지정제가 폐지되면 건강보험 의무가입제도 흔들릴 수밖에 없거든요. 당시 눈밝은 의사들과 국민들이 이것의 위험성을 알아차렸어요. 이때 처음 나온 구호가 바로 '의료민영화 반대'였어요. 당시 구호를 만드는 자리에 저도 있었는데, 처음엔 '의료보험 민영화 반대'라고 피켓을 만들었던 게 기억나네요."
▲ 제주 서귀포시 녹지국제병원 |
ⓒ 연합뉴스 |
"그렇죠.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흔드는 게 불가능하니까 박근혜 정권 들어와서는 영리병원 케이스라도 하나 만들자 했던 건데 결국 그것도 못하게 됐습니다. 이것도 어찌 보면 역사적 경험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거 같아요. 건강보험과 관련된 법이야 박정희가 만들었을지 몰라도 그것이 실효성을 갖게 되는 과정은 시민사회가 하나하나 싸워 만든 역사거든요. 농민, 노동자 그리고 진보적 보건의료인들과 시민들이 정말 그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끼고 싸움을 시작했었죠. 그런 역사가 있다 보니 시민사회가 건강보험을 흔드는 것에 대한 민감도가 굉장히 큰 거 같아요."
- 앞으로 한국의 의료 방향성에 대해 남기고 싶은 말이 있나요?
"말씀드렸듯이 역사적 경험은 쉽게 사라지지 않아요. 코로나19 팬데믹은 굉장히 뼈아팠지만 한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국민에게 공공병원의 중요성을 알리고 인식을 바꾼 계기가 됐습니다. 그 정도의 인식 변화, 계기는 시민사회운동에서 만들기 어려웠어요. 이런 중요한 역사적 경험이 변화의 계기가 됩니다. 시민들의 인식은 바뀌었고, 나머지는 정치적인 문제예요. 즉, 사회운동이 중요한 시점이죠. 우리가 언제까지 공공병원이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로 인해 무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있을 순 없잖아요? 의사들도 시민들과 함께 공공의료를 고민하며 그 흐름 위에서 자신들의 요구를 펼쳐야만 합니다. 의사들이 정치적으로 힘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으니까요."
▲ 최규진 인하대 의과대학 의료인문학 교실 부교수 |
ⓒ 최규진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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