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협상, 선진국의 책임은 어디로 갔는가

김용만 2024. 11. 25.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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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이 책임을 회피한다면, 기후위기 협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김용만 기자]

 지난 12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회의 COP29에서 세계 정상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가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지난 11일부터 22일까지 열렸다. 당사국총회는 온실가스 감축을 목표로 하는 유엔기후변화협약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하지만 이번 총회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대는 그리 크지 않는 듯하다. 올해 핵심 의제는 '기후금융'이다. 기후재원의 규모와 마련 방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의결해야 하는데, 정작 18~19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만 쳐다봐야 했다. 총회도 이집트, 아랍에미리트연합에 이어 3년 연속 산유국에서 개최되어 구설에 오른 마당에, 화석연료 자본 로비스트들의 각축장으로 전락된 모양새다.
가뜩이나 정체성이 희미해져 가는 기후총회에서 대한민국은 웃지도 못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총회에 맞춰 기후변화대응지수 보고서가 공개됐는데, 우리나라는 산유국이 아닌 나라 가운데 가장 낮은 63위였다. 지난해에도 63위로 연속 꼴찌다. 또한 '오늘의 화석상'을 받았는데 기후 협상을 막은 나라 1~3위를 선정해 수여하는 불명예스런 상이다. 2년 연속 수상했는데 작년엔 3위였고 올해엔 1위다. 이 판국에 G20 정상회의 폐막 연설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기후위기 대응 의지를 강조했다. 국제 협력을 통해 기후위기에 맞서는 '녹색 사다리'를 제공하겠다고 한다. 이번엔 그 약속이 지켜져서 내년 총회에선 최소한 꼴찌를 모면했으면 한다. 경제 규모로 세계 10위 근처이고 G7을 바라보는 나라가 부끄러운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19차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제3세션 '지속가능한 발전과 에너지 전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기후재원 논의는 2010년부터 시작됐다. 의미 있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2020년까지 연간 1000억 달러의 공동 목표 달성에 노력하기로 했다. 그러나 약속을 지키지 못해 2015년 제21차 당사국총회에서 공동 목표 달성을 2025년까지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2025년 이전까지 연간 1000억 달러 이상의 신규 기후재원 조성이 목표다. 그래서 2024년인 올해 29차 당사국총회에서 기후재원에 대해 실질적인 방안이 나와야 한다.

재원 규모 및 공여국의 범위가 주요 쟁점이다. 돈을 내야 하는 선진국과 지원을 받는 개발도상국 간 의견 차이가 어느 정도까지 좁혀질지가 관건이다. 개발도상국은 향후 10년 동안 수조 달러 지원을 바라고 있다. 공공재원으로 1조 달러, 민간재원으로 5조 달러를 요구하고 있다. 한편 선진국에선 개도국이 요구하는 규모는 현실적으로 무리라며,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선 공여국의 범위를 중국이나 중동 산유국 등 부유한 개도국까지 넓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간극이 좁혀지려면 여력이 있는 개도국의 양보가 필요한 상황이다.

선진국들이 갚아야 할 생태 부채

G20 국가들은 세계 경제의 85%를 차지하고 전체 탄소 배출량의 80%에 이른다. 이번 G20 정상회의 결과에 당사국 총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 이목이 쏠린 이유다. 개발도상국의 자발적인 기후금융 공여를 인정하는 문구에 합의했고, 이를 의무로 규정하지 않는 선에서 타협했다고 한다. 예상은 했지만 실망스러운 결과다. 결국 형편껏 알아서 내라는 건데 돈이 제대로 걷힐 리가 만무하다. 이렇게 애매한 G20 정상회의 합의 내용은 당사국 총회를 더욱 혼란스럽게 할 뿐이다. 온실가스 감축을 주관하는 기후총회로서 역할을 지속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2015년 제21차 당사국총회는 파리협약을 의결했다. 법적 구속력이 있는 협약이다. 하지만 온실가스 감축은 더디 가고 있다. 개별국가가 의무 위반 시 제재할 방법이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속력이 있다고 하나 '자발적 의무'라는 성격이 강하다. 자유주의에 기반한 국제사회의 결합과 연대의 한계를 고려한다면 뾰족한 대안이 없다. 획기적인 변화가 없는 한, 이런 추세라면 이제는 기후변화 세상에 '적응'하는 준비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물론 지속적인 억제를 전제로 하는 시나리오이지 억제 자체를 포기하는 건 아니다.

기후재원은 사실 '기후정의'와 연결된다. 대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는 오래전부터 누적되어 왔다. 적어도 2백년은 되었을 것이다.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에 머무르는 시간이 수백 년은 된다고 볼 때, 현재의 선진국들은 지구와 국제사회에 생태 부채를 갖고 있다. 그 부채를 갚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강변할 수 있겠지만 질적 변화를 위해서는 좀 더 나아가야 한다. 실천이 담보되는 힘 있는 협상이 되려면 선진국들의 폭넓고 선제적인 양보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개발도상국의 양보를 견인하는 순서로 가야 이치에 맞다. 선진국은 열매를 이미 맛봤고 개발도상국은 이제 맛보고 있는 중이다. 어느 쪽이 먼저 양보를 해야 순리인지 아는 건 어렵지 않다.

오는 25일부터 부산에서 플라스틱 국제협약 체결을 위한 마지막 협상위원회가 열린다. 당연히 법적 구속력 있는 협약을 목표로 한다. 여기에서도 기후변화협약의 숙제들이 쟁점이다. 플라스틱 생산 감축, 재원 규모와 공여 범위를 둘러싸고 선진국과 개도국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발상의 전환이 없으면 우리가 기대하는 협상 결과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협상단에 들어 있는 책임자들은 누가 먼저 한발 물러서 양보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길 바란다. 해답이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다. 구속력을 갖춘 플라스틱 협약이 예정대로 내년에 비준되어 힘을 잃어 가고 있는 기후변화협약도 다시 제자리를 찾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김용만 기자는 기후 숲 생태 전문 미디어 '플래닛03'(https://www.planet03.com/) 편집인입니다. 이 기사는 '플래닛03'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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