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발 '추경 해프닝'…'건전재정'만 외치다 '경기부양' 놓쳤다

나상현 2024. 11. 25.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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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0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의 기획재정부 등 국정감사에서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정부가 ‘건전 재정’과 ‘경기 부양’ 사이에서 깊은 고민에 빠진 가운데, 금리 정책까지 꼬이는 형국이다. 한국 경제가 ‘트릴레마(trilemma·삼중 딜레마)’에 놓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회에서 예산 심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설익은 용산발(發) ‘추경 해프닝’까지 벌어지는 등 혼란스러운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내수 침체 장기화…수출도 우려


25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윤 정부의 기본적인 경제 철학은 건전 재정이다.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서 지출 증가율은 3.2%로, 총지출 개념이 도입된 2005년 이후 역대 네 번째로 낮은 수준으로 억제하면서 긴축 페달을 밟았다.
김영희 디자이너

하지만 이 과정에서 경기회복을 위한 마중물인 ‘재정’의 역할이 미흡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실제 내수 회복 기미는 쉽게 보이지 않고 있다. 올 3분기 소매판매(소비)는 전년 동기 대비 1.9% 감소하면서 10개 분기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20대 이하 임금일자리는 올 2분기 기준으로 전년 대비 13만4000명 줄면서 2017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대 감소 폭을 기록했다. 건설업 일자리도 건설 경기 악화로 3만1000명 줄면서 3개 분기 연속으로 줄었다.

그나마 한국 경제를 지탱하던 수출도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3분기 수출은 전기 대비 0.4% 감소하면서 1년 9개월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특히 기저효과가 사라지고 트럼프 재집권으로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면 수출 타격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한국에 2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할 경우 대미 수출액이 304억 달러(약 42조원)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불어나는 나라빚…기재부 “추경 편성 검토 안해”


김영옥 기자
그렇다고 경기 부양 위해 재정을 확대했다간 국가부채가 급증할 우려가 크다. 기재부가 발표한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내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적자 비중은 2.9%로, 긴축 재정을 표방했음에도 재정준칙 한도(3%)에 가까운 수준이다. 국가채무비율은 2028년엔 50%를 넘길 것으로 전망했다. 만약 추경이 현실화된다면 적자국채 발행 불가피한 만큼 나라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겨우 잡아놓은 물가·부동산을 자극할 가능성도 크다.

이에 기재부도 “내년 추경 예산 편성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확고하게 선을 긋고 있다. 예산 심사가 막바지 단계인 시점에서 추경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데다, 건전 재정 기조를 말 한마디로 틀긴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처음 추경론에 불을 지핀 대통령실도 지난 22일 “필요한 경우 재정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일반론적 언급이었다”고 한 발짝 물러섰다. 그만큼 윤석열 정부가 딜레마 속에서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동결이냐 인하냐…금리 인하 일정도 ‘미궁’


재정정책이 진퇴양난에 빠진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통화정책 수단인 금리조차도 행방이 불분명하다. 경기부양을 위해선 지속적인 금리 인하가 필요한 시점이지만, 이 역시 물가와 부동산을 자극할 우려가 있어 쉽지 않다. 여기에 1400원을 넘나드는 환율도 새로운 변수로 더해지면서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최근 “금리 결정에서 환율도 고려 사항이 됐다”고 언급했다.
한미 기준금리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국은행·미국연방준비제도(Fed)]

이에 금융권에선 오는 28일 열리는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동결’ 결정이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김유미 키움증권 연구원은 “기준금리를 현 3.25%에서 동결할 것으로 예상하고, 시장 컨센서스도 크게 다르지 않다”며 “금리 인하에 대한 효과 및 환율 등 대외 상황을 조금 더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안재균 신한투자증권 연구원도 “아직 잠재성장률을 웃도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고, 가계부채 중심의 금융안정을 중시하는 만큼 11월 금통위에서 추가 금리 인하 필요성은 낮다”고 말했다.

다만 성장률이 크게 꺾인다면 연내 추가 인하가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나온다. 마냥 금리 동결을 고수할 경우 내수 부진이 길어지면서 경제성장률이 더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대외 불확실성이 점점 커지는 만큼 더 이상 금리를 높게 유지해야 할 명분이 없다”며 “제때 금리를 인하해 소비·투자 등 내수 심리를 살려야 한다”고 밝혔다.


전문가 “정책적 ‘운용의 미’ 필요”…세수 확충도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조달청 별관에서 열린 미국 FOMC 주요 결과 및 국제금융시장 동향 관련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최 부총리, 김병환 금융위원장. 연합뉴스
결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서로 재정·통화 정책의 조화를 맞춰 나가는 ‘폴리시 믹스(policy mixㆍ정책 조합)’를 더 정교하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기재부와 한은 등 경제팀 간 엇박자가 너무 심한 탓에 이번 추경 논란처럼 국민에게 혼란만 주고 있다”며 “고금리 상황에선 재정을 풀고 금리 인하 시기가 되면 다시 조이는 등 ‘운용의 미’를 살려 정책을 펼쳐야 하는데, 서로 협조가 안 되고 제각각 조이기만 하다 보니 복잡해지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건전재정과 경기부양,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재정을 적극적으로 확대하되 세수 확충안도 함께 내놔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지금은 재정 확대가 필요한 시점이 맞고, 미래를 생각하면 재정 건전성을 포기할 수도 없다”며 “통용되지 않았던 감세 기조를 고집하지 말고, 합리적인 증세를 통한 세수 확충 방안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세종=나상현 기자 na.sang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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