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이태원 참사로 분노 만들라"…민노총 간부에 지령 102개
" “새해와 1월 8일(김정은 생일)을 맞으며 총회장님께 드리는 축전을 15일 전까지 보내주었으면 한다.” " 2018년 12월 3일 당시 민주노총 조직쟁의국장으로 일했던 석모(53)씨는 북한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으로부터 이런 지시를 받았다. 지시에서 언급된 ‘총회장님’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뜻한다. 이후 석씨는 2018년 12월 9일과 2020년 9월 30일, 2021년 1월 11일, 2022년 1월 30일, 2022년 4월 4일 총 5차례에 걸쳐 북한에 “한 몸 바쳐 투쟁할 것을 결의한다” 등의 내용이 담긴 충성맹세문을 보냈다.
北, 충성맹세문 요청에 이태원 참사 시위 지시
북한은 159명이 목숨을 잃은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2주 뒤인 2022년 11월 15일엔 “이태원 참사를 세월호 사건처럼 각계각층의 분노 분출 계기로 만들 것” “촛불시위, 추도문 등 다양한 항의 투쟁에 집중” 등을 지시했다.
석씨는 이 밖에도 2018년 10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총 102차례에 걸쳐 북한 지령문을 받고 간첩 활동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2017년 9월과 2018년 9월엔 중국과 캄보디아 등 해외에서 직접 북한 공작원을 접선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석씨 측 변호인은 재판 과정에서 “검찰이 공소장 일본주의(법관이 피고인에 대한 예단이나 선입견을 갖지 않도록 공소장에 범죄행위만 기재해야 한다는 원칙)를 위반해 재판 시작 전부터 피고인들에게 사회적 낙인을 찍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국정원이 증거로 제출한 외국에서 수집한 사진과 영상, CCTV 촬영물도 국제형사사법 공조절차를 준수하지 않는 등 조작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지난해 5월 기소된 석씨 등 민주노총 전직 간부들의 1심 선고가 1년 6개월 만에 나오게 된 이유다. 검찰은 국가정보원(국정원) 수사관이 암호를 해독해 실제 북한 지령문을 확보한 과정을 시연하는 등 증거수집 과정에 문제가 없다는 점 등을 공개하며 이들의 혐의 입증에 나섰다.
檢, 법원서 포렌식 과정 집접 시연, 접선 과정도 공개
지난해 8월 열린 3차 공판엔 석씨의 압수물을 포렌식 한 국정원 수사관이 증인으로 출석해 직접 시연하기도 했다. 석씨 사무실에 있던 외장하드 파일에서 발견한 영문자 ‘1rntmfdltjakfdlfkehRnpdjdiqhqoek7(1구슬이서말이라도꿰어야보배다7)’를 복사해 프로그램을 구동시키자 북한 지령문이 발견된 것이다.
검찰은 재판 과정에서 이들이 ‘손에 들고 있던 선글라스를 수건으로 2~3차례 닦는 동작’ 등 수신호를 미리 만들어 북한 공작원과 접선했고, 유튜브 영상 댓글 등으로 북한과 연락을 주고받은 정황도 공개했다.
공안수사에 정통한 한 검사는 “간첩수사의 경우 피고인이나 관련자들의 진술만 가지고는 혐의 입증이 사실상 불가능해서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증거를 토대로, 디지털 증거의 증거능력을 인정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을 심리한 수원지법 형사14부(부장 고권홍)도 지난 6일 “법원 및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국정원 수사관 등의 증언에 비추어 영장주의 및 형사사법 공조절차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고, 증거 능력도 인정된다”며 석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국가보안법 위반(특수잠입·탈출 등) 혐의로 함께 기소된 전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조직실장 김모(49)씨에게 징역 7년에 자격정지 7년을, 전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부위원장 양모(55)씨에게 징역 5년에 자격정지 5년을 각각 선고했다.
이 재판부는 선고 당일 2시간 30분에 걸쳐 구체적으로 판단·양형 이유 등을 밝혔다. 239쪽에 이르는 1심 판결문 중 약 30쪽을 검찰이 제출한 증거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재판부는 “(이들의 범행은) 북한을 이롭게 하고 분열과 혼란을 초래해 대한민국 존립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큰 범죄이고 은밀하고 치밀하게 이뤄져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석씨 등은 1심 판결에 불복, 지난 11일 항소장을 제출한 상태다.
이번 선고는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넘기는 과정에서 나와 관심이 집중됐다. 더불어민주당은 2020년 12월 단독으로 국정원법을 개정해 대공수사권을 3년간 유예기간을 거쳐 올해 1월부터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안보수사국 등으로 이관했다. 하지만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이 국정원 대공수사권 부활을 내용으로 하는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대공수사권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최모란 기자 choi.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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