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조' 호위함 사업 탈락 충격…K방산, 日처럼 실패서 배워라 [이철재의 밀담]
거침없이 진격하고 있었던 K방산이 요즘 호흡을 골라야만 하는 상황이다. 최근 최대 10조원 사업으로 평가받던 호주 호위함 사업에서 떨어지면서다. 노르웨이 호위함 사업에선 검토 대상에도 오르지 못했다.
지난 8일(이하 현지시간) 호주의 공영방송인 ABC에 따르면 호주의 Sea 3000 사업 1차 후보 4개국 가운데 한국과 스페인이 빠지고, 일본과 독일이 2차 후보국 2개국으로 추려졌다. 호주 정부는 지난 2월 한국 등 4개국 5개 모델을 1차 후보로 선정하고, 올해 안에 2개국의 2차 후보를 가린 뒤 내년 최종 후보 1개국을 확정할 방침이었다.
한국에선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각각 충남급 호위함과 대구급 호위함으로 수주전에 뛰어들었다. 5개 모델 가운데 2개가 '메이드 인 코리아'였고, 우수한 성능·철저한 납기 준수·뛰어난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한국의 수주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정부도 심승섭 전 해군참모총장을 호주 대사로 보내 지원사격했다.
그래서 탈락의 충격이 컸다. 방위사업청은 "호주 정부의 발표 때까진 공식 입장을 안 낸다"고 밝혔다. 그러나 호주 측은 비공식적으로 한국의 탈락을 통보했고, 25일 독일·일본의 2차 후보 선정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노르웨이는 현행 프리드요프 난센급 호위함을 대체할 신형 호위함 사업에 착수했는데, 20일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을 1차 후보로 초청했다. 한국은 아예 고려 대상도 아니었다고 한다. K군함이 믿을 만 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는 후문이다. 1차 후보 국가들의 호위함 중 일부는 아직 한 척도 진수하지 못한 것들도 있다.
10조 원짜리 호주의 Sea 3000 사업은
호주는 중국이 남중국해를 넘어 호주의 안방인 남태평양까지 어른거리자 2030년까지 10년간 2700억 호주달러(약 250조원)를 투자해 국방력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을 2020년 7월 1일 발표했다. 그러나 2022년 5월 21일 노동당이 자유·국민연합을 꺾고 정권 교체에 성공하면서 자유·국민연합 정부의 국방 전략을 재검토했다. 특히 호주 해군 사업이 문제였다.
호주 해군은 사업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50억 호주달러(약 4조 6000억원)를 들여 만든 콜린스급 잠수함은 생명과도 같은 정숙성이 부족해 '록 콘서트장'이란 별명이 붙었다. 호주 해군은 9억 호주달러(약 8200억원)를 더 쏟아부어 개선해야만 했다. 호주의 이지스 구축함인 호바트급 구축함은 여러 조선소에서 따로 블록으로 만든 뒤 국영 조선소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건조됐는데, 조선소마다 인치법과 미터법을 제각각 쓰는 바람에 전량 폐기한 적도 있었다.
가성비 좋은 호위함으로 계획한 헌터급 호위함은 공기가 늦어지면서 예산이 척당 39억 호주달러(약 3조 6000억원)로 늘어났다. 그래서 호주 정부가 들고나온 게 Sea 3000 사업이었다.
호주 정부는 해군을 제쳐놓고 미국 해군의 예비역 제독이 이끄는 독립분석팀(IAT)에게 '구조조정'을 맡겼다. IAT는 지난해 9월 29일 건함 계획을 다시 짜라고 권고했다. 이에 따라 호바트급 구축함 3척(Sea 4000)과 헌터급 호위함 9척(Sea 5000)을 건함한다는 당초 계획을 호바트급 3척·헌터급 6척으로 수정했다. 그리고 절약한 예산을 호바트·헌터급의 티어(Tier) 1 수상 전투함을 보조할 17척의 티어 2 전투함 사업에 투입하기로 했다. 이게 ‘Sea 3000’이다.
Sea 3000에서 11척은 대공·지상 타격·호위 등 범용 호위함이다. 2025년 계약, 2026년 건조, 2029년 초도함 인도라는 비교적 빡빡한 일정의 사업이다. 첫 3척은 해외에서, 나머지 8척은 호주에서 각각 건조한다. 호주 조선산업을 키우려는 목적에서다.
나머지 6척은 ‘선택적’ 유인함이다. 미국으로부터 대형 무인 수상함(LUSV) 기술을 지원받아 만드는데, 이지스 체계와 미사일 32기 규모의 수직발사관(VLS)을 갖춘다.
그리고 호주 IAT는 2월 20일 보고서에서 Sea 3000의 범용 호위함으로 4개국의 5개 모델을 추천했다. 한국의 울산급 배치-Ⅱ(대구급), 울산급 배치-Ⅲ(충남급), 독일의 메코 A-200, 일본의 모가미 30FFM, 스페인의 알파 3000 등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화오션의 대구급과 HD현대중공업의 충남급이 고배를 마신 것이다.
자신했는데도 왜 떨어졌을까
한국은 내심 Sea 3000 사업에 자신이 있었다. 한국 호위함이 독일·스페인·일본에 비해 값이 싸면서도 성능이 더 우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호주가 같은 아시아·태평양 국가인 한국과 안보 협력을 강화하려고 해 한국이 이래저래 유리한 입장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그래서 말들이 많다. 특히 대구급이나 충남급이 성능이 뒤떨어져 낙방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술 유출 심사가 오래 걸려 서류를 늦게 낸 게 패착이었다거나,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이전투구식 경쟁이 주범이라는 추측이 떠돌았다. 그러나 이 추측들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결정적 요인이 아니었다.
중앙일보 취재 결과 대구급과 충남급은 호주 해군이 요구하는 '사양'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호주 해군은 미국의 인도·태평양의 전략에 부응해 중국을 태평양에서 견제하려고 한다. 그래서 오래 초계할 수 있는 호위함이 필요했다. 우수한 성능의 호위함을 싸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는 부차적 고려 사항에 불과했다.
일본 모가미급의 항속 거리는 8000해리(약 1만 4800㎞)이며, 독일의 메코 A-200은 7200해리(약 1만 3300㎞)다. 충남·대구급은 4500해리(약 8300㎞)다. 항속거리는 항공기나 선박이 연료를 최대 적재량까지 싣고 비행· 항행할 수 있는 최대 거리를 뜻한다. 전투함의 항속거리는 엔진 효율과 물의 저항을 잘 가르는 설계에 달려있다. 그리고 연료 적재량도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한국 해군은 북한을 상대하는 게 기본 임무다. 그래서 먼 바다로 나갈 일이 적다. 항속거리를 키울 필요가 없는 이유다.
승조원의 거주 편의성도 장기 항해엔 중요하다. 모가미급은 만재 배수량이 5500t인데 승조원이 100명이다. 자동화를 적극적으로 채택하면서 승조원 숫자를 줄였고, 그만큼 승조원에게 더 넓은 공간을 줄 수 있다. 반면 충남급은 4300t에 승조원 120명이며, 대구급은 3600t에 120명이다. 충남급이 대구급보다 더 크지만, 더 많은 장비가 실려 거주성은 큰 차이가 없다.
호주 해군의 주문 사항을 방사청이나 업체가 제대로 파악한 뒤 잘 대응했는지 의문이다.
호주는 또 Sea 300 호위함에 미국제 전투체계와 미국제 무장을 달 것을 요구했다. 모가미급은 자국산 전투체계이지만, 무장의 상당수는 미국제다. 메코 A-200은 주문자의 요구에 따라 다양한 전투체계와 무장을 넣기로 유명하다. 충남·대구급은 한국산 전투체계에 한국산 무장이다. 자주국방엔 좋지만, 수출을 하려면 추가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일본, K방산의 경쟁자로 나설까
아직 확정 단계는 아니지만, 일본이 호주 Sea 3000 2차 후보에 들었다는 사실은 놀랍다. 일본은 평화 헌법에 따라 무기 수출을 사실상 제한했기 때문에 방산수출 실적이 한국보다 뒤진 상태다.
그런데 일본은 2014년 4월 1일 ▶국제조약·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등을 위반한 국가나 분쟁 당사국에는 금지 ▶평화공헌·국제협력과 일본 안보에 기여할 경우 허용 ▶목적 외 사용과 제3국 이전은 일본 정부의 사전동의 필요 등 '방위장비(무기) 이전(수출) 3원칙'을 발표했다.
일본의 무기 수출을 풀어주는 게 원칙의 골자였다. 무기 수출이나 국제 공동 개발을 거의 인정하지 않았던 기존 방침에서 벗어나 무기 수출을 기본적으로 인정한 뒤 금지 내용을 심사로 규정한다는 방침으로 바꿨다.
이에 따라 일본은 2015년 호주의 차세대 잠수함 사업에 도전했다. 결과는 낙방이었다. 정부의 지원이 부족했고, 방위산업 업체의 마케팅 실력도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실패에서 배웠다. 호주 Sea 3000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섰고, 모가미급의 양대 사업자 중 미쓰비시 중공업이 주도하고 미쓰이 E&S가 지원하는 '원팀'으로 뛰었다. 일본 해상자위대의 모가미급 호위함인 노시로함(FFM 3)은 7월 남태평양 피지 근해에서 영국·호주 해군과 연합 해상훈련을 뛰었다.
노시로함은 호위함대가 아닌 지방대 소속인데도 해외에 파견 나간 셈이다. 말이 좋아 '훈련'이지 Sea 3000을 노린 '마케팅'이었다.
무기 수출은 전형적인 'G(정부) to G(정부) 사업'이다. 그래서 정치적 요소가 항상 작용한다. 이런 점에서 일본은 호주 시장에선 한국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 미국·호주·일본의 국방장관은 17일 호주 다윈에서 만나 지속적인 군사 협력을 논의했다. 3국은 내년부터 연합훈련을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호주는 일본과의 방산 협력 의지도 표명했다.
또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미국이 개입한다면 호주와 일본은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가능성이 크다. 호주는 아무래도 한국보다 일본과 전략적 공유도가 더 높기 마련이다.
일본이 Sea 3000 사업을 따낸다면, 탄력을 받아 방산 수출에 더 매진할 수 있다. 그러면 일본은 한국의 강력한 경쟁자가 된다. 특히 최대 70조원으로 전망하는 캐나다 잠수함 사업이 문제다. 일본은 이 사업에서도 한국의 호적수로 꼽혔다. 캐나다 언론에 따르면 일본은 지난 17일 입찰 시한을 넘겼고, "현재 사업에 참가할 계획이 없다"고 밝힌 상태다. 그러나 상황이 유동적이라 아직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K방산 가운데 수출에서 걸음마 단계인 분야가 K군함이다. 호주와 노르웨이 두 차례 실패에 아파하지 말고, 이를 악물고 패인을 분석한 뒤 약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박찬준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위원은 "한국은 복수의 업체가 참여하는 전략적 오류를 범했다. 두 업체가 큰 차이가 없는 수상함을 제시한 사실은 분명 마이너스 요인"이라며 "캐나다 잠수함 사업에선 원팀으로 참가해야 입찰 가능성을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HD현대중공업과 한와오션 사이를 조율할 방사청이 안 보이는 게 문제다.
다행히 자존심 싸움을 벌이고 있는 두 업체가 손을 잡을 계기가 마련됐다. 한화오션이 HD현대중공업 군사기밀 유출 사건의 경찰 고발을 취소하면서다.
방사청이 욕먹을 각오로 적극적으로 나서고, HD현대중공업·한와오션이 대승적으로 협력하는 모습을 곧 보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오대양에서 K군함을 더 자주 볼 수 있다.
이철재 국방선임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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