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주식시장TF의 경고 "국정농단 단체, 끼어들지마라"
[류승연 기자]
▲ 한국경제인협회 김창범 상근부회장이 21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한국경제 재도약을 위한 주요 기업 사장단 긴급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더불어민주당 주식시장 활성화 태스크포스(TF)에서 단장을 맡고 있는 오기형 의원이 22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한경협을 가리켜 상법 개정안 논의에서 한발 물러나라는 '경고 메시지'를 날렸다. 전날(21일) 한경협과 16개 그룹의 사장단이 최근 민주당이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에 반대 목소리를 내자 이를 재반박하기 위해 마련된 기자회견 자리에서다. 오 의원이 한경협을 향해 빠지라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쉬지 않고 다음 말을 이었다.
"한경협 관련해 대표적으로 문제가 되는 게 국정농단이었습니다. 삼성물산의 불법 합병 과정을 통해서 국민연금이 2500억 원을 손해봤습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의 주된 기여자였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다양한 논의 끝에 해체하기로 했었는데 한경협으로 이름을 바꾸고 다시 나왔습니다. 상법 개정의 문제의식을 훼손하지 마십시오. 기업들을 위해서도 도움이 안 된다는 말씀, 드립니다."
주식시장 활성화TF 단장의 경고 "한경협, 뒤로 빠져라"
금융투자소득세가 일으켰던 '국내 증시 제도 개편'을 둘러싼 논쟁이 상법 개정안으로 재점화하고 있다. 최근 민주당이 당론 법안으로 내놓은 법에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뿐 아니라 주주에게도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모회사 핵심 사업부의 성장성을 믿고 투자했는데, 갑자기 회사가 이 사업부를 떼어내 증시에 재상장하면서 모회사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투자 손해를 입히는 '물적분할'과 같은 사례를 막기 위한 조치다. 심지어 민주당의 금융투자소득세 추진 계획에 반대했던 개인 투자자들조차 찬성하는 사안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재계가 반대하고 나섰다. 한경협과 16개 주요 그룹사 사장단은 지난 21일 '소송 남발'이나 '투기자본으로부터 경영 침탈을 당할 우려'가 있다며 공개적으로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오기형 의원은 22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전날 재계 성명을 가리켜 "상법 개정을 지연하겠다는 의지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이미 상법 개정에 대해서는 오랜 논의가 있었다"라며 "소송 남발은 상법 개정을 할 때마다 늘 나오는 레퍼토리였다"라고 지적했다. 또 "과거 재계는 주주 대표소송이나 집단 소송을 추진하려 할 때도 같은 논리를 댔지만, 집단 소송은 지난 20년 동안 20번도 나오지 않았다"라며 "어떻게 그게 남용이냐"라고 역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오 의원은 현재 자본시장에서 상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를 말한 뒤 재계를 향해 "오히려 상법 개정 과정에 들어와 무엇이 문제인지 토론에 참여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앞서 이재명 대표는 이날 오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직접 토론에 참여해 입장을 취합해 본 다음, 우리 당 입장을 확실히 정리하겠다"라며 경영계와 개인투자자들에 공개 토론을 제안한 상태다.
한편 오 의원은 최근 이 대표가 재계에 '당근'으로 내놓고 있는 '배임죄 완화' 논의에 대해서는 "아직 내부에 정리된 내용은 없다"라면서도 "다만 과거에도 배임죄를 완화하는 법안이 발의된 적이 있다. 당시에도 재계에서 형사 처벌 범위가 너무 과하다는 우려가 나왔다"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무엇을 배임죄로 볼 것인지 기준을 다듬는 방식으로 논의해 볼 수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오 의원과의 일문일답이다.
재계 반대하는 '주주 충실의무', 민주당은
- 당초 민주당 상법 개정안에는 주주를 향한 이사의 충실의무나 보호의무 둘 중 하나가 담길 걸로 예측됐다. 결과적으로 둘 모두가 담긴 상법 개정안이 당론으로 발의됐다.
"용어를 둘로 나눠 쓸 뿐이다. 종합적으로 설명하자면 사익과 주주의 이익이 충돌할 때 이사회는 주주 이익을 우선시하라는 것이다. 이사의 보수나 회사의 비즈니스 기회 등을 판단하는 경우에 말이다. 또 기업 합병 비율을 정하거나 물적 분할 여부를 결정하는 경우에도 주주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라는 뜻이다."
- 현재 자본시장에는 다양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런데도 민주당 주식시장 활성화 태스크포스(TF)는 상법상 충실의무 확대를 첫째 안건으로 선택했다. 추상적인 개념을 바꾸려 한 이유가 있을까?
"이사들에게 이렇다 할 책임을 물을 수 없어 자본시장에 다양한 문제들이 생겼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구조조정이나 합병, 분할 등 회사의 조직 개편 과정에서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했고 그로 인해 주가도 떨어져 주주들이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도 주주들은 회사에 책임을 묻지 못했다.
과거 삼성물산의 예를 돌이켜 보자. 삼성물산-제일모직 간 합병 과정에서 합병 비리가 있었던 것 아닌가. 합병을 하더라도 회사 전체 자산은 그대로로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삼성물산의 이사들은 합병 과정에서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내리지 않았다. 주주들 역시 '회사를 위한 선택'을 내린 이사들에게 대표 소송을 제기할 수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물을 제도가 필요하다는 반성적인 비판이 있었고, 결국 이사들이 주주들 편에서 의사를 결정해야 한다고 판단해 이번 법안을 내게 됐다."
- 결과적으로는 당시 삼성물산 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 손해를 보기도 했다. 피해를 입힌 당사자들에게 구상권을 청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 대한민국 주식시장 활성화 TF 단장을 맡은 오기형 더불어민주당(도봉구을) 의원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대한민국 주식시장 활성화 TF 1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 유성호 |
"LG화학은 원래 기업 가치가 40조 정도 되는 회사였다. 그런데 물적 분할을 하면서 사업부 중 하나였던 (LG에너지솔루션이) 증시에 상장을 했다. LG에너지솔루션의 기업 가치는 최근 조금 떨어져 94조 원이다. 그런데 LG에너지솔루션의 상장과 함께 LG화학의 지분 가치는 희석됐다. (LG화학이 LG에너지솔루션을 보유한) 지분 비율을 반영한다면 기업 가치가 70~80조는 돼야 하는데도, 현재 20조 원대 수준이다. 주주들로서는 황당한 상황이다. 그렇다 보니 LG화학 주주들은 회사에 'LG에너지솔루션 물적분할 후 상장'이라는 의사결정이 적절했는지 묻고 있다. 당시 사건은 정치권에 문제 해결을 위한 숙제로 던져졌다."
- TF 차원에서 다양한 기업의 소액주주들과 만나고 있다고 들었다. 주로 듣는 말은?
"소액주주들은 회사 이사진이 소액주주들을 배제하는 결정을 내려 피해를 입히는 행태가 반복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회사가 벌어들인 이익을 기업 집단 차원에서 계열사에 넘겨주는, '곶감 빼먹기' 같은 행태를 반복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 상법 개정안은 언제쯤 국회 문턱을 넘을까?
"이미 충분히 논의했기 때문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최대한 빨리 논의될 걸로 보고 있다. 소위에서 빠른 토론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소송남발? 늘 나오던 레퍼토리"
- 상법 개정에 반대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미 충실의무 확대는 정치권의 해묵은 주제다. 지난해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은 대정부질문 과정에서 상법 개정안의 취지와 의미를 묻는 이용우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문에 '법률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보호하도록 하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 획기적인 법안'이라고 긍정 평가했다. 개정안의 방향성에 공감한다며 당시 법무부에서 운영하고 있던 상법 특별위원회에서 상법 시행령 개정안까지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올해 1월 윤석열 대통령도 주주 보호를 위해 상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정부 공식 문건에는 '증시 밸류업'을 위한 방안으로 상법 개정이 포함되기도 했다. 이미 다양한 논의가 있어왔다."
- 재계 반발도 본격화됐다. 삼성·SK·LG를 포함한 16개 그룹 사장단이 21일 상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긴급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어떻게 봤나?
"상법 개정을 지연하겠다는 의지로밖에 안 보인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미 상법 개정에 대해서는 오랜 논의가 있었다. 그런데 이렇다 할 해법 없이, 이번에도 그냥 미루기만 하자는 것이다. 오히려 상법 개정 과정에 들어와 어떤 점이 문제인지 토론에 참여하는 게 맞다. 재계 의견도 제시하지 않고 충실의무 확대에 무조건 반대만 하는데, 진정한 제도 개선 의지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 재계에서는 충실의무 확대로 주주들로부터의 소송이 남발될 것을 우려한다.
"소송 남발은 상법 개정이나 회사 지배구조를 개정하려 할 때마다 늘 나오는 레퍼토리였다. 또 과거 재계는 주주 대표소송이나 집단 소송을 추진하려 할 때도 같은 논리를 댔다. 그런데 집단 소송은 지난 20년 동안 20번도 안 나왔다. 그게 무슨 남용인가? 심지어 주주 대표 소송에는 공익적 성격도 있다. 소송에 따른 이득이 결국 회사로 귀속되기 때문이다. 주주 이익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도 '남용 가능성이 있다'며 반대하는 건 사실을 호도하는 것이다."
- 이재명 대표는 재계를 향한 회유책으로 '배임죄 완화'를 꺼내든 모양새다. 어떤 논의가 진행 중인가?
"아직 내부에 정리된 내용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과거에도 배임죄를 완화하는 법안이 발의된 적이 있다. 그후 논의가 멈춰 섰을 뿐이다. 당시에도 재계에서는 형사적 처벌 범위가 너무 과도하다는 우려가 나왔다. 논의해 볼 수 있다고 본다. 무엇을 배임죄로 볼 것인지, 기준을 좀 더 다듬을 필요는 있다."
- 상법 개정안 논의가 끝난다면 주식시장 활성화 TF의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TF의 역할은 상법 개정안 통과로 다 하지 않을 것이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또 남아있기 때문이다. 자본시장법에서 상장회사를 중심으로 한 의사결정이 좀 더 진화할 부분이 있겠다고 본다. 또 국민의힘 쪽에서도 자본시장 질서를 둘러싼 제도의 대안을 내놓을 것이다. 대안이 오면 같이 논의할 것이다."
- 상법 개정 이외에도 최근 정치권에서는 '가상자산 과세'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민주당이 가상자산 기본 공제액을 250만 원에서 5000만 원으로 높이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반면 국민의힘은 2년 더 과세를 유예하자는 쪽이다.
"민주당은 원칙적으로 (가상자산 과세를) 연기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물론 그 경우 (기본 공제액) 폭에 대한 문제는 남는다. 이런저런 의견들이 나오지만 (5000만 원으로의) 기본공제액 인상은 민주당의 총선 공약이었다.
국민의힘은 과세를 하지 말자고 주장하지만, 우리는 감세 정책이 답은 아니라고 본다. 지금 나라 곳간이 무너지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세 수입이 344조 1000억 원이었는데 올해는 그보다 더 떨어진다고 한다. 경기가 활성화되면 세수도 뒤따를 것이라고 하지만, 경기가 계속 위축되는 현 상황에서 오히려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정책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정부·여당은 각종 감세책을 내놓고 있다. 지금은 가상자산처럼 소소한 이슈로 논쟁할 때가 아니다. 이 나라의 경제 정책 자체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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