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미사일 공격 봉인도 풀렸다…스톰섀도, 북한군 있는 지역 타격
‘트럼프의 귀환’이라는 절대변수가 우크라이나 전장을 지배하고 있다. 미국에 이어 영국도 자국이 지원한 미사일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를 타격하는 걸 허용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 취임 뒤 이뤄질 평화협상에서 우크라이나와 서방이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한 화력 지원이다. 이에 맞서 러시아는 핵 사용의 문턱을 낮춘 새로운 핵 교리를 내놓으면서도 대응 수위를 고민하는 모양새다. 트럼프와의 휴전 협상을 염두에 두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서도 트럼프의 용인선을 넘는 도발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美 이어 英도 미사일 사용 제한 해제
20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이날 영국의 공대지 순항 미사일 ‘스톰섀도’로 러시아 본토를 처음 공격했다. 미국의 전술지대지미사일 에이태큼스(ATACMS)로 접경지 브랸스크주를 공격한 다음날이다.
영국 일간 일간 텔레그래프는 러시아 군사 블로거를 인용해 이날 북한군이 파병된 러시아 쿠르스크의 마리노 마을에서 스톰섀도 파편이 발견됐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는 스톰섀도 최대 12발을 발사했다. 외신들은 우크라이나 군사 전문 매체 디펜스 익스프레스를 인용해 스톰섀도가 겨냥한 목표물은 러시아 지휘부가 통신 센터로 사용 중인 군사 시설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북한군 고위 장성과 러시아군 지휘관들이 은신해 있는 지하의 지휘 통제실을 노렸다는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개발한 스톰섀도는 사거리 250㎞로, 수십m 깊이의 지하 시설에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정밀유도무기다.
영국과 우크라이나는 스톰섀도 사용 제한 해제 여부를 공식 확인하지는 않았다. 다만 지난 18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푸틴이 승리하게 놔둘 수 없다”고 강조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한 소식통을 인용해 정상회의 기간 서방 당국자들이 비공식적으로 스톰섀도 사용을 논의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처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중심으로 서방이 힘을 합쳐 우크라이나의 공성전을 지원하는 배경은 트럼프 취임 뒤 이뤄질 평화협상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트럼프 측은 여러 종전안 중 하나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20년 유예하고 ▶현재 전선을 기준으로 1300㎞에 이르는 비무장지대(DMZ)를 설정하고 ▶해당 완충지역을 유럽의 나토 병력이 지키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이런 구상대로라면 어떤 국경선 상태에서 전쟁을 끝내는지가 유럽 국가들의 이해관계와도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문제가 될 수 있다.
‘레드라인’ 그어놓고 고민하는 러
푸틴은 미국이 에이태큼스 사용 제한을 해제한 직후 새로운 핵 교리를 승인했다. 핵보유국의 지원을 받는 비핵국가도 핵으로 공격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 등 사실상 자의적 판단에 따라 핵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서방 국가들은 푸틴이 실제 핵에 손 댈 가능성은 매우 작다고 보는 부위기다. 뉴욕 타임스(NYT)의 외교 전문기자 데이비드 생어는 19일(현지시간) “(러시아의 핵 교리 개정을 통한 핵 사용 위협에 대한)워싱턴의 반응은 하품을 겨우 참는 수준”이라며 “(그간 계속해온)속 빈 강정같은 핵 위협이라는 게 미 관료들의 평가”라고 전했다. 푸틴에게 핵 사용은 최후의 협상 수단이라는 취지다.
이어 생어는 “전쟁 내내 푸틴은 나토 국가들에 대한 노골적인 공격에 신중했고, 이는 전쟁에서 벗어나기를 원하기 때문”이라며 “푸틴이 (핵을 사용하는 방향으로)오판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 푸틴으로서도 트럼프와의 평화 협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준의 보복에 나설 경우 협상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푸틴이 핵을 꺼내들기보다는 나토 유럽 국가의 민간인을 노린 폭탄 공격이나 요인 암살, 인프라 파괴 등 책임 입증이 어려운 ‘회색지대 도발’로 응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 로이터 통신은 20일(현지시간) 러시아 전현직 관료 5명을 인용해 푸틴이 트럼프와 휴전 협정을 논의할 의향이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가 이미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 도네츠크, 루한스크, 자포리자, 헤르손 등 4개 지역을 정확하게 분할하기 위한 협상에 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는 “푸틴의 메시지는 바이든이 아니라 트럼프를 향해 내는 것으로, 러시아가 핵 사용을 군사적 행동에 옮길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사실은 ‘핵교리를 수정했지만 협상도 가능하다’는 취지로, 지난한 협상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침묵하는 트럼프 ‘두 달 혈투’ 절대변수
트럼프는 아직 미국과 영국의 미사일 사용 제한 해제 등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히지는 않고 있다. 트럼프 측 인사들은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변경을 비판하지만, 트럼프 본인은 취임 뒤 협상에서 이를 유리하게 활용하기 위한 ‘손익계산서’를 정리 중일 가능성도 있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푸틴도 결국 트럼프가 내거는 조건에 귀를 기울이는 형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트럼프는 이른바 ‘미치광이 전략’을 푸틴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푸틴이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푸틴을 협박하며 역으로 우크라이나를 전폭 지원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러 경제공동위 의정서 조인=윤정호 북한 대외경제상과 방북 중인 알렉산드르 코즐로프 러시아 천연자원부 장관은 20일 평양 만수대에서 열린 조인식에서 ‘무역경제 및 과학기술협조위원회’(이하 경제공동위원회) 제11차 회의 의정서에 조인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1일 보도했다. 의정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러시아 대도시에서 출발하는 북한행 직항 항공편 편성 등에 양 측이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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