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주주입니다만... 전화 좀 받아주세요"
[김지영 기자]
"최근 삼성전자 주가가 많이 흔들리는데, 저는 그것 때문에 연락드린 게 아닙니다. 저는 삼성전자를 믿고 응원하는 주주입니다."
그동안 여러 기업의 주주가 되어보았지만, 이런 식의 전제를 깔고 대화를 시작해야 했던 경험은 처음이었다. 단순한 공시 내용 확인을 위한 문의였음에도, 왜 이런 변명 아닌 변명을 해야 했을까.
▲ 기업과이해관계자 |
ⓒ Pixabay로부터 입수된 이미지 |
주주로서 당연히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날의 전화통화는 내가 알고 있던 '글로벌 초일류기업 삼성'의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공시 자료에 나와 있는 재경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가는데 받지를 않는다. 한 번, 두 번... 시간을 달리해가며 수차례 시도했지만 돌아오는 건 무응답뿐이었다. '바쁘시겠지...' 하고 넘기기에는 하루가 다 지나가고 있었다.
결국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 다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드디어 누군가와 연결이 되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재무팀이라 생각했던 그곳은 채용팀이었다. 그래도 '이제야 제대로 된 번호를 알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삼성전자 주주인데요. 재무팀에 문의드릴 게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담당자분과 통화가 어려워 이쪽으로 연결된 것 같은데, 재무팀으로 연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최대한 공손하게 말씀드렸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차가웠다.
"안됩니다. 전화연결을 할 수 없고, 번호를 알려드릴 수도 없습니다."
재무팀 직통번호라도 알려주실 수 있냐는 질문에도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단 두 글자로 정중한 문의를 일축해버리는 응대에 당황스러웠다. 나는 다시 한번 설명을 시도했다.
나는 최대한 차분히, 내가 단순한 불평을 노출하려는 민원인이 아닌 회사의 주주이자 응원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여전했다.
"죄송합니다만, 전화번호를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대신 메일로 해당 내용을 문의해 주십시오."
"그렇다면 제가 메일 발송후, 저의 메일 수신 확인 전화는 어디로 해야 하죠? 가끔 메일발송해도 상대측에서 못 받았다고 한 적이 있어서요."
" 죄송합니다. 전화번호는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그 순간 나는 깊은 한숨이 나왔다. 이것이 과연 글로벌 기업의 모습일까? 이 일을 겪으며 든 생각은 '소통'이었다. 주주나 고객과의 소통은 기업의 기본 중 기본이다. 외부 전화가 오면 담당 부서로 연결해주거나, 최소한 직통 번호를 안내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물며 주주의 정당한 문의라면 더더욱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글로벌 선진기업들의 경우, IR(투자자관계) 활동을 단순한 정보제공 차원을 넘어 기업 가치 제고의 핵심 요소로 인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기업들은 분기별 실적발표 후 진행되는 컨퍼런스콜에서 개인투자자들의 질문도 성실히 답변하며, 일상적인 문의에도 친절하게 응대한다.
반면 국내 기업들의 경우,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많다. 특히 개인투자자들을 대할 때면 불필요하게 경계하거나, 귀찮아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심지어 일부 기업들은 공시 내용에 대한 단순 문의조차 "홈페이지를 참고하라"는 식의 형식적인 답변으로 일관하기도 한다.
속상한 마음을 꾹 누르고, 질문사항을 다시 한 번 차분히 설명했다. 간절한 내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본인의 응대가 지나쳤다고 생각했을까.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직원은 마침내 한 번호를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재무팀이 아닌 IR팀 번호였다. 다른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였지만,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이 생겼다. 'IR팀이라면 주주와의 소통을 담당하는 곳이니, 혹시 재무팀 연락처를 알려줄 수도 있지 않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또다시 묵묵부답뿐이었다. 긴 신호음만이 내 기대를 비웃듯 울려 퍼졌다.
삼성전자는 세계적인 기업이다. 기술력과 시장 지배력은 국내 유일,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진정한 글로벌 초일류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이해관계자들과의 소통도 그에 걸맞은 수준이어야 한다.
그날의 통화는 짧았지만, 그 속에는 개선되어야 할 우리 기업문화의 한 단면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부디 이 작은 경험담이 더 나은 기업문화를 만드는 데 작은 물방울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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