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는 어쩌다 ‘지친 거인’이 됐나 [스페셜리포트]
주력 유통·화학 동시 부진
곳간 비고 눈덩이 이자 부담
무엇보다 그룹 핵심 계열사 롯데케미칼 부진이 뼈아프다. 한때 롯데케미칼은 연간 1조원 넘는 영업이익을 내던 효자 회사였다. 2020년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중국이 석유화학 공장을 대규모로 증설하자 시장은 공급 과잉 상태로 변질됐다. 주요 석유화학 제품 가격은 하루가 멀다 하고 추락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전쟁 등 지정학적 문제까지 덮쳐 원재료 원유 가격이 급등했다. 설상가상 고물가·고금리 여파로 수요마저 위축됐다. 석유화학업계 수익성 지표 에틸렌 스프레드가 손익분기점인 t당 300달러를 한참 밑도는 구조가 고착화했다.
시장 변화 적기 대응에 실패했다는 점이 패착으로 지목된다. 롯데케미칼은 경쟁사 대비 기초석유화학 비중이 더 높다. 지난해 연결 기준 전체 매출의 60%에 달한다. 이미 수년 전부터 중국발 공급 과잉 우려로 고부가 스페셜티 제품으로 전환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시각이 확산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실기(失期)했다. 롯데케미칼은 2022년 7626억원 영업 적자를 냈고 2023년 3477억원의 손실을 봤다. 올해 실적 전망도 어둡다. 시장에서 전망하는 2024년 롯데케미칼 영업손실 규모는 4730억원에 달한다.
현금 곳간은 비어가지만 이자 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옛 일진머티리얼) 인수, 롯데건설 자금 지원으로 차입금이 급속도로 늘었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말 롯데케미칼 순차입금은 6조원 수준까지 급증했다. 부채 증가는 이자 부담으로 돌아온다. 롯데케미칼은 2023년 연간 이자비용으로 3788억원을 냈고 올 상반기에만 2094억원을 썼다. 단기간 반전을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라는 게 산업계 시각이다. 보유 자산 줄매각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버틸 수밖에 없다는 게 롯데케미칼 안팎 분위기다.
그룹 또 다른 축 유통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백화점 사업이 선전 중인 듯싶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편치 않은 대목이 눈에 띈다.
롯데백화점은 신세계 출신 정준호 사장이 이끈다. 정 대표는 롯데쇼핑 첫 외부 인사다. 그는 신세계에서만 20년 이상 몸담았다. 2019년 롯데그룹 계열사 롯데GFR로 자리를 옮긴 뒤 2021년 11월 롯데쇼핑 백화점사업부장(롯데백화점 대표)에 올랐다. 만 3년간 일군 성과에 관해서는 시각이 나뉜다. 내수 침체 속 선방했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거시변수를 걷어내더라도 눈에 띄는 ‘트로피’가 없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경쟁사(신세계 13개·현대 16개) 대비 두 배 많은 32개 점포를 가졌지만, 매출과 영업이익에서 유의미한 성장을 일구지는 못했단 평가다. 2017년 신세계 강남점에 국내 백화점 1등 자리를 내준 뒤 정 대표 재임 기간 이를 탈환하지 못한 것은 뼈아픈 대목이다. 신세계 ‘럭셔리’, 더현대 ‘MZ세대’ 등으로 확고한 정체성을 구축한 경쟁사와 달리, 롯데만의 차별적 정체성을 구축하지 못했단 평가도 아쉽다. 이 탓에 정 대표의 경우 올 정기 인사에서 연임 시각이 우세하지만, 입지가 다소 위축됐단 시각도 존재한다.
편의점(코리아세븐), 이커머스(롯데온) 등 다른 유통 채널 성적표는 더 심각하다.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코리아세븐은 미니스톱 인수 이후 적자의 늪에 허덕인다. 업계 양강 CU와 GS25와 격차는 더 벌어졌다. 이커머스 시장 제패를 노리고 야심 차게 출범한 롯데온은 ‘천덕꾸러기’ 신세다. 출범 이후 매년 1000억원 안팎 적자를 내며 버티다 결국 지난 6월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호텔롯데는 올 상반기 다시 영업 적자를 냈다. 지난 2분기 호텔롯데는 영업손실 526억원을 기록했는데, 1분기(-272억원)보다 적자 규모가 커졌다. 매출 약 70%를 차지하는 면세점 부진이 뼈아프다. 롯데면세점은 4분기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 중이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4호 (2024.11.13~2024.11.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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