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농사 마쳐도 기분이 좋지 않아", 늙은 농부의 한숨
또 '쌀'을 말합니다. 풍요의 상징인 가을의 누런 들판에서 한숨 내쉬는 농민들을 알기에, 감당하기 벅찬 이야기를 전합니다. "밥 한 공기 300원 보장"이란 농민의 요구는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관철되지 않았습니다. 더 많은 기사는 <월간 옥이네> 11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자말>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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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렇게 익은 벼. |
| ⓒ 월간 옥이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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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북 옥천 청산농협의 공공비축 벼. |
| ⓒ 월간 옥이네 |
"제일 먼저 농민들이 가져온 쌀을 모아 네 번에 걸친 불순물 제거 작업을 해요. 이때 무게랑 수분량을 확인하고요. 그리고 나선 '사이로'라고 부르는 저장고에 뒀다가 건조 후 다시 톤백에 담아 저장합니다. 빠르면 12월에서 1월 중, 늦으면 3월까지 출하 일정이 잡히는데, 그전까진 창고에 보관해 두죠." (청산농협 송정호 계장)
올해 청산농협의 예상 쌀 수매량은 1300톤가량. 청산농협 김홍표 상무는 "옥천군과 정부에서 할당하는 매입량과 별개로 농민들이 가져오는 쌀은 전부 수매해 남은 수량은 자체 판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0월 중 이뤄지는 산물벼 매입이 끝나면 11월 말부터는 건조벼 매입이 이뤄질 예정이다.
오후에 한바탕 비가 쏟아질 거란 일기예보가 맞을 작정인지 벌써 하늘에 회색빛 구름이 빽빽한데, 미곡종합처리장은 줄지어 들어오는 트럭 행렬로 활기가 돈다. 톤백 자루를 내려놓고 잠시 숨 돌리는 틈을 타 청산, 청성의 농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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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북 옥천 청산면 덕지리 설용석씨. |
| ⓒ 월간 옥이네 |
"난 나흘 전에 왔다 갔지. 오늘도 비 소식이 있던데, 그날도 오후에 비가 온대서 비 오기 전에 얼른 수확해 왔었지. 비 오거나 안개가 짙은 날엔 수확하기가 영 안 좋거든. 톤백 가지러왔는데 우리 마을 톤백은 누가 싹 가져갔다네? 마을회관에 가보면 내 것도 있겠지."
농사란 능숙한 농부의 힘으로만 지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때를 맞춰 벼의 성장을 돕는 날씨와의 협업이 필수. 그러나 이제 일상에서까지 체감되는 기후위기가 이 긴밀한 협업을 위협한 지 오래다.
올해는 태풍 피해가 크지 않아 다들 안심하고 있던 여름 끝물에 쏟아진 비가 악수였다. 벼 키가 웃자라 힘을 받지 못하고 쓰러지고(도복), 그렇게 넘어진 알곡이 비를 맞아 싹이 트는 수발아 현상까지. 유난히 뜨거운 이번 여름 탓인지, 지난 겨울이 겨울답지 않게 따뜻했던 탓인지, 벼멸구와 깨씨무늬병, 흰잎마름병까지 찾아오며 벼 농가엔 비상이 걸렸다.
"올해 날도 가물고, 태풍도 크게 안 왔잖아. 그러니 뒤늦게 병충해가 올 거라고 생각을 못 했지. 다들 제때 약을 못 쳐서 피해를 많이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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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북 옥천 청산면 만원리 김용수씨. |
| ⓒ 월간 옥이네 |
"이미 톤백 4개 가져다 뒀어. 방금 가져온 것까지 하면 6개. 아직 논에서 계속 수확 중이라 이것만 내려놓고 다시 다녀올 거야. 비 오기 전에 다 할 수 있으면 오늘 마무리하려고. 몇 개 더 가져올진 떨어봐야 아는데, 8000평 중에 1000평 정도는 가족이랑 지인들한테 보내고, 나머지는 다 여기로 가져오지."
김용수씨 논은 다행히 병충해 피해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비에 도복 피해를 봤다.
"올해 비가 안 오더니 또 한참 쏟아져서 벼 키가 너무 컸어. 그 상태로 비가 또 내리니 픽픽 쓰러졌지. 주변에선 잎마름병으로 난리인데, 우리 논은 약을 꼼꼼히 쳐놔서 그런지 피해가 크진 않았어. 그래도 전년만치 (수확량이) 안 나와. 체감상 20~30%는 줄었어."
매년 재해로 인한 피해가 커지는 상황이지만, 김용수씨는 7년 전부터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 "재해 피해를 인정받기가 어렵고, 인정받더라도 자부담 비율이 커 실질적인 도움으로 느껴지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 이에 김용수씨는 오롯이 그 부담을 지고 있다.
그의 요즘 고민은 '일손'이다. "농사를 처음 짓던 해만 해도 여자는 하루 1000원, 남자는 2000원"이었다는데, 이젠 여성 인력은 11만 원, 남성 인력은 13만 원이 기본이란다. 인건비에 비료, 농기계 값까지 생산비는 늘어만 가는데, 쌀값은 오를 기미가 없으니 농사짓는 재미도 뚝뚝 떨어진다.
"농민들은 나이 들어가는데, 인건비는 오르니 농사짓기가 점점 힘들지. 농어촌공사에서 쌀 생산량 많아 쌀값이 떨어진다고 쌀을 못 심게 해. 쌀 말고 콩 같은 거 심으라고 하는데, 콩이 벼랑 비교해 보면 일이 더 많아. 그러니 선뜻 작물 변경할 수가 있나. 우리 마을에도 1200평짜리 논이 아무것도 안 심긴 채로 그대로 있잖아. 그리고 콩도 가격 안정 안 되긴 쌀이랑 다를 게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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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북 옥천 청성면 최진중씨. |
| ⓒ 월간 옥이네 |
"올해 작황이 안 좋아. 9월에 햇빛이 좋으려나 싶었는데 해가 너무 강해서 벼가 안 여물고 말랐더라고. 그거뿐이야? 벼멸구, 깨씨무늬병 피해도 있어서 수확량이 10%나 떨어졌어. 벼농사를 15년 넘게 했는데, 갈수록 상황이 안 좋아져."
지난해 수확기 평균 산지 쌀값이 80kg당 20만2797원을 기록했던 데 비해 올해는 18만4848원(10월 15일 기준)에 머무르고 있으니 그 속이 더 답답하다.
"1년 농사에 드는 비용은 매년 오르는데 쌀값은 떨어지기만 하니 한숨만 나오지. 트랙터, 콤바인 기름값이며, 모판, 비룟값 다 올랐지. 작년까진 제초제를 1만 원에 샀는데, 올해부턴 1만1000원이더라고. 날씨도 안 도와줘, 정부도 안 도와줘. 이러니 1년 농사 마쳤는데도 기분이 좋지가 않아."
최진중씨가 바라는 건 "농민 입장에서 말해줄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다.
"쌀값 떨어질 때 도움을 받던 변동직불제가 갑자기 없어졌잖아. 농업인 안전보험, 농업재해보험 같은 걸 들어놔도 크게 도움 되는지도 모르겠어. 게다가 이런 보험도 개인적으로 알아서 들어야 해."
변동직불제는 쌀값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질 때 차액의 85%를 지원하는 제도로 2020년 폐지됐다. 이후 쌀 자급률이 떨어질 것을 우려해 시장격리제도가 법제화되고, 공익직불제가 도입됐으나 농민 입장에선 체감되는 효용이 크지 않다는 평이다.
"농가지원정책이 자꾸 바뀌니까 그 피해를 다 농민들이 지는 거야. 그 변화도 농가에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그 반대로 가고 있는 것 같아. 농민 입장에서 말해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더 그래. 이 마음을 푸념할 곳도 없고, 그저 지켜만 봐야 한다는 게 속상하지. 정말 농민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이 생기려면 농민 국회의원이 더 많아져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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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공비축 벼. |
| ⓒ 월간 옥이네 |
쌀 목표가격인 20만 원을 지켜내라는 농민들의 목소리에 농림축산식품부는 10월 15일 쌀 9만5000톤을 추가 격리하기로 결정했다. 이어 10월 28일에는 벼멸구·호우 등으로 피해를 본 벼를 전량수매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결정이 쌀값 정상화에 유의미한 영향을 줄지 확인되지 않은 가운데, 공공비축미 매입 현장을 찾은 농민들은 "올해 산지 쌀값 추이를 보니 12월 말 발표될 공공비축미 매입 가격을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는 반응이다. 공공비축미 매입을 진행하는 농협은 매입 직후 농민들에게 20kg당 4만 원을 우선 지급, 차액은 연말에 지급할 예정이다.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은 최근 15년간 세 차례에 걸쳐 발생한 쌀값 폭락 사태(2009~2010년, 2015~2017년, 2021~2022년)의 원인으로 예측할 수 있었던 쌀 생산량 증대와 소비량 감소에 대응하지 못한 정부의 안일한 대처를 지적했다. 더불어 "기후위기와 식량위기의 시대에 농업부문의 공공정책 강화가 아닌 시장에 맡기는 방식을 고수하는 한 쌀값 폭락은 또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녀름 이슈보고서 348호). "쌀값 문제는 단순히 쌀 생산 과잉이 문제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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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공비축 벼. |
| ⓒ 월간 옥이네 |
주교종 옥천살림협동조합 상임이사는 "적정 수준의 쌀값 책정도 과제지만, 대농이 아닌 일반 소규모 농가에서는 현재 목표 쌀값으로도 생활 영위가 쉽지 않은 현실"이라며 "쌀값 문제는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공적 차원에서 장기적인 관점으로 풀어갈 문제"라고 지적한다.
"쌀값 하락은 한두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개인과 지자체의 노력만으론 현 상황을 바꾼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만, 농가를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가능한 행동들을 이어간다면 장기적으로 쌀값 하락을 해결할 밑바탕을 마련할 수는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
그의 제안은 로컬푸드 확산과 함께 그간 건강한 지역농산물을 더 많은 지역 주민이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온 지역 농민 운동의 핵심을 담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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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쌀값 안정은 누구의 몫일까. |
| ⓒ 월간 옥이네 |
옥천군농업기술센터 농업정책과 조도연 과장은 "옥천쌀 소비 확대를 위해 직거래 판로 모색해 연결하는 군 차원의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2024년 올해 옥천군은 ▲부산 동래구청(360kg) ▲한국외식업중앙회 제주시지부(184t)를 통해 지역 쌀 소비 판로를 확대했다.
기존에 옥천 쌀을 정기적으로 구매해오던 ▲하나님의 교회 고앤컴연수원(27.2t) 역시 올해 쌀 직거래를 진행했다. 더불어 옥천군은 지난 5월 개소한 옥천군공공급식센터가 옥천성모병원, 옥천군장애인보호작업장, 옥천군립치매전담요양원과 업무협약을 맺는 등 지역 기관의 지역 농산물 소비를 확대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한편, 2024년 옥천군 벼 수매량은 3929톤(산물벼 126톤, 건조벼 2913톤, 친환경벼 890톤)으로 집계됐다. 이는 올 한 해 옥천군 생산 벼 총량(6774톤)의 58%에 해당한다. 옥천군은 올해의 경우 지난해보다 친환경 벼 수매량을 대폭 늘렸다고 밝혔다. ㄱ김민석 옥천군농업기술센터 농업정책과 원예유통팀장은 "지난해 친환경 벼 수매량(187톤)이 농가 수요의 20%에 그쳤던 것과 달리 올해는 친환경 벼라면 100% 수매했다"며 "최종 수매 실적은 지난해(약 3천767톤)보다 4%가량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월간옥이네 통권 89호(2024년 11월호)
글 이혜빈 사진 이혜빈·김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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