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한 채 때문에 가짜 혼인신고 한 사람의 최후
[김성호 평론가]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부동산만큼 한국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는 것도 드물다. 아파트 한 채 갖는 게 일생의 소망이 되고, 집을 어디에 어느 정도 크기로 가졌느냐가 마치 계급처럼 통용된다. 십수 년을 벌어도 갚기 어려운 돈을 빌려 집 한 채를 사고, 그 이자로 미래를 저당 잡힌 채 살아가는 이가 수두룩하다. 온 국민이 빚쟁이가 되었고 가계부채가 위험 수준을 넘었다는 경고음에도 부동산을 향한 질주는 멈출 줄을 모른다.
한국인이 가장 욕망하는 것이 내 집 마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스갯소리처럼 여겼지만 공공연히 마주하게 되는 초등학교 학생들의 꿈은 건물주다. 부동산을 갖는 것이 삶의 목표이고 희망이며 꿈이 되는 세상, 부동산을 욕망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고 이를 갖지 못하면 실패한 삶처럼 보이는 게 우리가 사는 곳의 현주소인지도 모른다.
아파트를 가지려 하는 게 잘못된 일은 아니다. 오히려 각자가 처한 현실 가운데 현명한 선택일 수 있겠다. 집도 없고 전세도 사라져가는 가운데 월세가 다달이 월급에서 뭉텅이로 빠지는 게 현실이고 보면 집을 가져야 안정적인 삶의 바탕이 된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오죽하면 리얼리티 연애 프로그램에서조차 내 집을 갖고 있다는 게 중요한 매력 포인트가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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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채> 스틸컷 |
| ⓒ 씨네소파 |
잔금을 치르고 실거주 기간만 채운 뒤 팔고 나오면 큰돈을 벌 수 있다. 이러한 믿음이 로또 청약 가운데 자리한다. 일해서는 벌지 못할 돈을 단박에 벌 수 있다니 머리 빠른 한국 사람들이 가만히 놓아둘 리가 없다. 위장전입부터 통장매매, 위장이혼까지, 심지어는 입양을 청약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례까지 수시로 적발된 바 있다. 장애인과 탈북자 등 우대조건이 되는 항목을 노려 명의를 빌리는 사례도 적잖았다. 이 모두가 시세차익을 노린 일당의 소행이 아닌가.
한눈에 보기에도 허름한 부녀다. 시장 옷 가게에서 딸이 외투 하나를 보고 걸음을 멈춘다. 몸은 자랐으되 하는 짓은 영락없이 대여섯 먹은 아이, 딸은 발달장애가 있다. 옷을 붙들고 떼를 쓰는 통에 아버지는 애를 먹는다. 하는 수 없이 옷을 사주기로 하지만 가벼운 주머니 사정 탓에 영 탐탁지가 못하다. 사만 원은 줘야 한다던 외투를 단돈 이만 원에 샀던가. 어쩌면 그보다 더 깎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흥정 아닌 협박과 구걸 사이에서 타협을 보고 부녀는 가냘픈 평온을 다시금 찾아 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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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채> 포스터 |
| ⓒ 씨네소파 |
두 부녀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만난 이유가 이내 드러난다. 영화 <한 채>는 신혼부부 특별공급 아파트를 노리고 위장결혼을 한 두 가족의 이야기다. 고은과 도경이 서류를 꾸며 부부가 된 채 행세하고, 분양을 받게 되면 그 수익을 나누어 가지자는 계획이다.
처음 보는 사이인 데다 적잖이 음흉한 계획에 동참한 탓으로 두 사내, 문호와 도경 사이엔 은근한 기싸움이 펼쳐진다. 이들을 중개한 건 그렇고 그런 일을 수두룩하게 처리하는 듯한 불법 브로커다. 영 불량한 태도로 필요한 절차를 건성건성 알려주는데, 도경은 미리 말도 없이 장애를 가진 여자를 가져다 붙이냐며 싫은 소리를 한다. 그 말을 그저 들어 넘길 수 없는 문호다. 제 딸이 장애를 가졌으되 이런 자리에서까지 퇴짜를 맞아서야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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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채> 스틸컷 |
| ⓒ 씨네소파 |
영화의 제목인 '한 채'는 말 그대로 집 한 채를 뜻한다. 서류상은 합쳤으되 실상은 남남인 두 가정이니 집은 한 채가 아니라 두 채여야 마땅하다. 그러나 강퍅한 세상은 평범한 가정에 한 채조차 쉬이 허용하진 않는다. 그리하여 한 채는 사는 집이 아닌 욕망하는 집 한 채가 된다. 잠시 잠깐 거쳐 가는 몸 누일 한 채가 아닌, 그들 두 가정의 신세를 바꿔줄 꿈 꾸는 한 채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 채'는 동시에 이들이 함께 사는 집이 되기도 한다. 사람이 산다는 게 그리 뜻한 대로만 되는 것도 아니고, 거리를 둔다 해도 몸 닿는 이를 마냥 멀리할 수도 없는 일이다. 처음엔 서먹서먹 거리를 두던 문호네와 도경이 차츰 가까워져 마침내 식구처럼 변화하는 모습을 <한 채>가 그려낸다.
비정상 가족의 정상화는 이미 흔하디흔한 주제라 해도 좋겠다. 공동체가 파괴되고 대가족이 핵가족으로, 이제는 그조차 되지 못한 가족 없는 가구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이 아닌가. 그럼에도 인간이란 존재는 사회적 동물이고 곁을 주고 정을 나눌 사람을 필요로 하는 법이다. 그리하여 핏줄로 이어진 가족 대신 새로운 공동체를 찾게 되는데, 현실에선 수많은 좌절이 따를지라도 영화와 예술은 그를 얼마쯤 이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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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채> 스틸컷 |
| ⓒ 씨네소파 |
영화가 서로 다른 두 부녀를 묶어내는 방식은 새로운 것 없다. 시작은 역시 한국답게 밥으로 엮어낸다. 그네들의 빤한 사정을 알 수 있는 밥과 반찬에도 어떻게든 아침 식사를 한 상에 같이 먹으며 정을 나눈다. 이어 함께 일을 하고, 얼굴 붉히며 다투다가도 다시 서로를 챙기며 나아간다. 그렇게 진짜 가족 못지않은 관계로 나아간다.
불법청약을 위해 맺어진 관계는 필연적 위기로 다가선다. 암초에 달려드는 범선처럼 둘은 예고된 갈등을 빚게 된다. 돈과 이익이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이냐를 두고 선택의 기로에 선다.
택할 수 있는 두 가지 선택지 중 어느 것이 현실적이냐를 나는 쉬이 말할 수가 없다. 그건 인간이란 안에 악한 개와 선한 개를 함께 지니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고, 대개의 경우 승자란 제가 먹이를 더 많이 준 개로 기울 뿐이다. 그러나 영화가 택할 수 있는 귀결이라치면 명백히 나은 것과 못한 것이 생기게 마련이다. 악하기도, 선하기도 한 인간은 불법청약으로 맺어진 관계에서도 그 이상을 피워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아름다운 시작 또한 절망적인 범죄로 끝날 때가 있다는 걸 우리는 쉽게 짐작하는 바다.
<한 채>는 쉽고 편안한 방식으로 비정상 가족의 가족화를, 가족이란 테두리 바깥에서 또 다른 관계가 생겨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영화가 가진 몇몇 단점, 이를테면 고은의 캐릭터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고민 없는 모습이 엿보인다거나 영화의 전개가 쉬이 예상할 수 있고 위기가 설득력 있게 그려지지 않는다는 등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제법 울림이 있는 작품이 됐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한국사회에 실재하는 부동산에 대한 욕망과 성공에의 기로 가운데 탈락한 평범한 이들을 비추는 방식이 2024년 한국에 비추어 유효하고 적절하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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