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도지사 때 걸신들렸었나?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역사의 법정’ 운운은 교활한 도피
판‧검사 공격해봐야 이 대표만 손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법원의 1심 선고는 검찰의 조작 수사를 그대로 인정한, 유죄 결론을 내리고 짜 맞춘 ‘사법 살인’ ‘정치 판결’이다”(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18일 당 최고위원회의).
“오죽하면 (이 대표에게 선고를 내린 한성진 부장판사가) 서울 법대를 나온 게 맞냐고들 하겠나”(김민석 최고위원, 같은 자리). (이상 동아일보, 18일).
당의 대표가 1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선거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것에 대한 당 지도부의 반응이다. 이 기사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서 나온 최고위원들의 공개 발언 1만 282자 중 63.7%에 해당하는 6552자 분량이 이 대표 재판에 대한 비판이었다. 최고위원이라는 사람들의 숨 가쁜 충성 경쟁이 눈물겹다.
“더 훌륭한 인간이 되고자 노력을 기울이는 이러한 사람이야말로 신의 사제요, 신의 종이다.……고귀한 싸움에 당당히 임하는 투사이며 격정에 휘말리지 않고, 정의가 마음속까지 가득 차 있다.”(이해식 당 대표 비서실장, 17일 페이스북).
대표 측근들의 눈물겨운 충성 경쟁
“이미 일부 언론이 ‘민주당에 숨죽이던 비명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라고 한다. (비명계가) 움직이면 죽는다. 제가 당원과 함께 죽일 것이다”(최민희 국회 과방위원장 오마이TV 인터뷰, 조선일보, 18일).
이들처럼 ‘당의 아버지’를 신격화하면서 경배를 드리는 사람, 아버지의 분노를 대신해 거역하거나 이탈하는 자는 죽여 버리겠다고 호기를 부리는 사람도 있다.
이 대표가 권력의 핍박을 조금이라도 받는 게 사실이라면, 동료 의원으로서, 당직자로서의 동지적 분노 표출은 어느 정도 양해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대표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법원의 재판에는 국민의 공분을 살 핑계가 보이지 않는다. 순전히 개인의 행위에서 비롯된 형사사법 절차다. 충성 표현은 자신의 마음으로 해야지 왜 무리를 지어 애먼 사람들을 공격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더 위험한 것은 형사피고인 신격화와 당내 비판자에 대한 (정신적 혹은 정치적) 살해 위협이다. 죄를 지어 유죄 선고를 받은 사람이 신의 사제라고 한다면 이는 신에 대한 모욕이고 국법 질서에 대한 조롱이다. “내가 당원과 함께 죽일 것”이라는 협박은 또 뭔가? 당 대표 지위와 권위의 절대성을 강조하자는 것인가? 정신적 집단테러를 가해서라도 일탈을 막겠다는 것인데, 충성심을 인정받기 위해 막말도 불사해야 하는 그 처지가 오히려 딱하다.
이 대표가 진정한 민주적 정치리더라면 “제 개인의 문제는 제게 맡겨두고 당과 소속 의원, 당직자들은 국리민복의 대의에 헌신하시라”라고 부탁해야 옳다. 그런데 갈수록 ‘순교자 놀이’에 재미를 붙이는 인상이다. 그는 15일 선거법 위반 재판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선고가 나오자 “현실의 법정은 아직 2번 더 남아있고, 민심과 역사의 법정은 영원하다”라고 말했다. 항소심, 상고심이 남았다는 말은 맞다. 그런데 민심과 역사의 법정이 영원하다는 건 무슨 뜻인지 언뜻 이해가 안 된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2015년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확정판결을 받은 후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서는 무죄’라고 주장하더니 그 흉내를 내려 한 것인가? 흉내를 내려면 제대로 내야지 이 대표의 말은 요령부득하다. ‘민심과 역사의 법정이 영원’하면 유무죄 판결은 영원히 미뤄진다. 선고 없이 재판만 계속되는 셈인데 정말 영원히 재판만 받고 싶은 건가?
‘역사의 법정’ 운운은 교활한 도피
재판은 양심 민심 역사의 영역이 아니라 현실의 실정법 영역에서 이뤄진다. 현실의 유무죄 판결을 추상의 세계로 끌고 가서 평가받게 하겠다는 것은 교활한 도피다. 양심은 극히 주관적인 것이고, 민심과 역사는 판결이 아니라 (가변적) 평가만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검찰의 수사와 법원의 판결은 현실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지 민심과 역사 위에 정의를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다(그런 기대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직접적 목적일 수는 없다). 이 대표는 먼 역사로 나들이할 생각을 말고 현실의 국법질서에 순응해야 한다. 그게 정치인의 도리고 책무다.
이 대표는 그간 7개 사건, 11개 혐의로 5번 기소되어 4개 법정에서 재판받아 왔다. 주로 개인적 비리·부패 행위로 인한 것이다. 국민이나 이웃의 안녕과 발전을 위한 행위가 기소의 빌미로 작용했던 적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그 자신의 과오·욕심으로 빚어진 지극히 사적인 범법행위였고 그로 인해 수사받고 재판에 넘겨진 것이다. 그런 사람이 국회의원, 거대정당의 대표로 있을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훗날 ‘역사의 심판’ 거리가 아닌가?
검찰이 19일 ‘업무상 배임 혐의’를 적용해 그를 또 재판에 넘겼다. 여섯 번째 기소다. 앞으로는 5개 법정에 서야 하게 됐다. 경기도지사 재임 때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혐의다. 그 내용은 법인카드 심부름을 했던 조명현 전 경기도 7급 공무원의 폭로로 진작 세간에 널리 알려졌었다. 조 씨는 경기도 5급 공무원 배소현 씨의 지시로 도지사 부인 수발을 전담했다. 업무의 90%가 ‘배달’이었다. 배 씨가 자조적으로 “우리는 배달의 민족이야”라고 하더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입을 것과 먹을 것과 생활용품을 챙기는 일을 했다. 명절 선물부터 제사 음식까지 준비했다. 공식적으로는 비서였지만 실제로는 하인, 공노비와 같았다”(조선일보, 11월 21).
조 씨가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초밥 10인분 배달과 관련, 배 씨가 조 씨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기생충’(영화 ‘기생충’ 속 주인공 가족)이 있다고 생각해. (자택) 밑에 사는 기생충이 있든지 뭐가 있어. 그렇지 않니?”(세계일보, 22. 2. 13, 채널A 11일 보도 인용)
판·검사 공격해봐야 이 대표만 손해
조 씨는 경기도 법인카드로 초밥, 샌드위치, 닭가슴살 샐러드, 과일, 제수(祭需) 등 온갖 음식을 사서 이 지사 자택 현관문 앞으로 배달했다. 걸신(乞神)들린 사람들이었을까? 와이셔츠 등의 세탁비를 법인카드로 지불하고, 경기도 관용차를 자가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 대표가 당시 사적으로 사용한 경기도 예산은 총 1억 653만원에 이르렀다. 게다가 경기도 공무원인 배 씨와 조 씨를 규정에도 없는 ‘사모님팀’으로 삼아 종복처럼 부렸다.
조 씨가『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법카』(2023. 11)라는 책을 써서 이런 사실들을 폭로했는데도 이 대표나 민주당 측이 고소 고발했다는 말은 없다. 책 내용이 사실이라는 뜻이다. 치사하기 이를 데 없는 불법 비리를 저지르고도 여당 대선후보·국회의원·거대정당 대표로 위세를 떨치고 있다니! 이 점 만으로도 이 대표는 보통 사람의 범주를 훨씬 뛰어넘었다. 그런 그가 ‘민주주의’를 입에 달고 살면서 대통령, 장관, 검사, 판사 가리지 않고 탄핵 위협을 가하다니, 이게 요지경 속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대표의 극렬지지자들, 당 소속 의원들, 당직자들이 ‘당의 아버지’를 지키겠다는 충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범법자 역성들기는 민주 법질서 부인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그와 정치적 명운을 같이하겠다는 의리는 알겠는데 수치(羞恥)를 공유하는 것은 의리가 아니다. 행위가 치사하고 심리가 꾀죄죄해 보이는 사람을 대통령 만들겠다고 국법질서와 맞서는 것은 자기 모욕이다.
보수와 진보로 이념적 성향을 달리한다고 해도 국민이라는 점에선 한동아리다.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할 때가 있게 마련이지만, 그런데도 모두가 상식의 대도를 함께 걷는 동반자들이기를 믿고 소망한다.
참, 25일엔 이 대표의 ‘위증 교사’ 혐의에 대한 재판의 1심 판결이 나온다. 유죄 선고를 피할 수 없을 것 같은데, 검사‧판사에 대한 터무니없는 경쟁적 비난‧모함은 포기하는 게 좋겠다. 그게 이 대표를 위하는 길이 될 것이다.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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