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병원'이 생긴대요, 같이 참여하실래요?

전영선 2024. 11. 19.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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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의료센터 건립기금마련' 2024 이철수 판화전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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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선 기자]

"형님! 17일에 별다른 약속 없으시면 저랑 전시 보러 가실래요? 이철수 판화전이요."

지난 6일, 당진에 사는 동서에게서 전화가 왔다. 인사동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보러 가자는 전화였다.

"오! 좋지~ 가을 나들이도 못 갔는데 다녀오면 좋겠네."
"그럼, 버스 예매할게요!"

그렇게 나서게 된 일요일 나들이길. 막 추워지기 시작한 날씨에 도톰한 겉옷을 챙겨 입고 인사동으로 향했다.

동서는 초보 캘리 작가다. 올해 대전 주보 표지 공모전에 당선되며 '작가'라는 이름을 얻었다. 요즘 동서는 이철수 판화가의 작품에 매료되어 있다. 단아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세계. 그 세계가 동서가 궁극적으로 가닿고 싶은 작품 세계이기 때문이다.

스산한 바람이 휘몰아치는 인사동 초입에서 동서를 만나 함께 전시장으로 향했다. 전시는 인사아트센터 6층에서 열리고 있었다.
▲ 2024 이철수 판화전 '전태일의료센터' 건립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열린 전시였다. 인사아트센터 제6전시장(6층)에서 열렸다.
ⓒ 전영선
와서 보니 전시회는 '전태일의료센터 건립기금마련'이라는 문구를 달고 열리고 있었다. 전시장 초입 한쪽 벽면에는 이번 전시회의 취지를 설명하는 글이 새겨져 있어 눈길을 끌었다.
"...1980~90년대 우리나라 최초 집단 산업재해 인정투쟁을 통해 원진레이온 직업병 노동자들과 시민사회가 함께 일궈낸 전문의료기관인 <녹색병원>은 개원 20주년을 맞이하던 2023년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의 필요성을 제기하였습니다. 의료환경은 20여 년 전과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산재·직업병, 노동자의 건강 문제에 대해 더욱 확장되고 전문화된 대응이 필요함을 절감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공감한 노동, 시민·사회, 보건의료, 뜻있는 많은 개개인이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을 위한 추진위원으로 참여하고 모금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전태일의료센터는 서울시 중랑구 면목동에 위치한 녹색병원의 외부 주차장 부지(옛 YH무역 여성노동자들의 기숙사 터)에 지하 3층, 지상 6층 건물로 세워지며, 2027년 하반기 완공될 예정입니다..."

전태일은 내게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으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스스로의 몸에 불을 댕긴 스물 초입의 젊은 청년. 그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낱낱의 당위를 평전을 읽으며 알았다. 그리고 그가 과격한 전사가 아니라 섬세하고 자상한 성품의 미륵불에 가깝다는 사실도 책을 읽으며 깨우쳤다.
전시회에는 그런 전태일을 형상화한 작품이 있었다. <전태일의 불꽃을 들어올려>라는 제목의 신작이었다. 불꽃이 전태일이고, 전태일이 불꽃 같은 그런 작품이었다.
▲ <전태일의 불꽃을 들어올려> 작가가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며 그린 신작이다.
ⓒ 전영선
이번 전시는 '나눔'을 주제로 삼은 듯 보였다. 커다란 사발을 전면에 내세운 전시 포스터부터가 그랬다.
▲ 전시 포스터 2020년작 <큰그릇이야>를 전면에 내세웠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십시일반의 마음이 일어나기를 바랐다.
ⓒ 전영선
작가는 작품을 통해 당신과 나는 한 하늘을 이고 산다고, 웃는 얼굴로 서로를 의지하면 좋은 인연이라고, 물 한 그릇 하늘이 내듯 서로에게 다정하자고, 부디 생명에게 가혹하지 말자고 조곤조곤 말을 걸었다.

그러다 어떤 작품에서는 절절함을 표하기도 했다.

"새는 좌우의 날개가 아니라 온몸으로 난다. 모든 생명은 저마다 온전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새가 그러하고 세계가 그러하다. 죽음처럼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거기서 이미 죽음에 이른 사람들까지, 온몸으로 살고, 온몸으로 죽는다. 그러니 부디 생명에 가혹해지지 말자."

<새는 온몸으로 난다 2>에 쓰인 문구를 읽으며 동서도 나도 얕게 탄성을 질렀다. '온몸'이라는 단어가 주는 묵직함이 온 마음에 전해져 왔다.
▲ <당신과 나> 이철수 작가의 2020년 작품이다. 항아리 속에 담긴 우주가 인상적이다.
ⓒ 전영선
▲ <좋은 인연> 이철수 작가의 1999년 작품이다. 미소가 한가득이어서 보는 나도 입꼬리가 올라갔다.
ⓒ 전영선
▲ <큰그릇이 있으면> 이철수 작가의 2020년 작품이다. 동서는 내게 저렇듯 큰 그릇이 있으면 무얼 담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답하지 못했다.
ⓒ 전영선
"저기 작가님이 계시네요."

앞서 전시장을 돌던 동서가 곁에 다가와 내게 귓속말을 했다. 그러고 보니 전시장 가운데 있는 탁자에 인자한 표정의 신사 한 분이 점잖게 앉아 있었다. 이철수 판화가였다.

동서와 나는 다가가 인사를 건네고 전시 도록에 사인을 부탁했다. 선생은 이름을 묻고는 도록 속지에 풀꽃과 함께 관람자의 이름을 적었다. 동서의 도록에도 내 도록에도 풀꽃 아래 이름이 살포시 내려앉았다. 어여뻤다.

사인을 받으며 문득 궁금해져 선생에게 여쭈었다. 어떻게 전태일의료센터 건립 기금을 마련하고자 생각하시게 되었느냐고. 선생은 (삼보일배오체투지) 환경상을 심사했는데 그때 수상자였던 녹색병원 임상혁 병원장에게서 의뢰가 들어와 선뜻 나서게 되었다고. 도움이 되자면 개인전을 여는 게 좋을 것 같아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다는 답변을 들려주었다.

선생의 답변을 듣고 나니 동서 덕분에 찾은 전시장이 한층 각별하게 다가왔다. 선생 또한 미륵불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기 때문이다(전시회를 통해 얻어지는 수익금은 모두 전태일병원 건립에 쓰인다).

동서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 앞 촬영도 부탁했다. 선생은 기꺼이 촬영에 응했다. 수줍은 듯 온화한 미소를 띤 채.
▲ <길이 멀지요> 작품 앞에서 동서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 <길이 멀지요> 앞에서 이철수 작가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 전영선
집에 돌아와 전시 도록을 찬찬히 훑었다. 선생은 전시 도록 말미 '작가의 말'에서 "저는 이제 전태일이 우리 사회에서 보통명사가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적었다. 그 이유로 전태일은 '행실이 바른' 사람이며 더없이 '착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전태일의료센터>도 그렇듯 우리 사회의 '착한 병원'을 꿈꾸고 있다고 덧붙였다.

'착하다'는 말을 '어리석음'으로 치부하는 세태가 만연한 세상에서 선생은 '착하다'는 말을 참 많이도 읊조렸다. 마치 왜곡되어버린 '착하다'는 말의 본래 의미를 되살려내겠다는 듯이.

전태일 의료센터는 '노동자 병원'을 표방한다. 노동자 건강에 관한 연구와 조사를 정책으로 나아가게 하고, 노동자들이 건강한 몸으로 다시 일터로 복귀할 수 있도록 입원 치료와 회복을 도우며, 뇌심혈관계질환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신속하게 치료해 과로사로부터 노동자들의 생명을 지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참고자료: https://taeilhospital.org/about). 이는 전태일이 자신의 몸을 불사르면서까지 추구하고자 했던 '인간다움'에 맞닿아 있다.

선생의 전시는 18일 자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선생의 '착한' 뜻과 함께 병원 건립을 위한 모금은 계속 된다고 한다(190여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병원 건립 비용 중 50억 원은 국민 모금으로 마련된다).

현재까지 모금액은 15억여 원. 개인 6,080명과 단체 115곳의 참여로 목표액의 31.5%를 달성했다(참고자료: https://taeilhospital.org/). 아직 한참 남은 목표액에 나도 십시일반 선뜻 힘을 보탰다.

전태일의 아름다운 뜻과 마음을 닮은 '착한 병원'이 무사히 완공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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