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최대 과제인데... 돈 아끼며 관망하는 초라한 윤 정부

최기원 2024. 11. 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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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원의 세금이야기 - 이 예산으로 탄소중립 가능한가④] 개도국 기후재원 연 1조 달러, 함께 사는 길 모색해야

다른 시각에서 정부 조세재정정책의 이면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세금과 예산은 민주정치의 전제이자 결론이며,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기자말>

[최기원 기자]

 지난 12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회의 COP29에서 세계 정상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11일부터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리고 있는 29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29)의 주제는 '돈'이다. 소위 기후 재정(climate finance)의 문제다. 기후위기 대응에 드는 엄청난 재원을 누가 어떻게 얼마나 부담해야 하는가? 질문의 무게와 어려움에 막막해진다. 그러나 진정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고민한다면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주제다.

무너진 기후정의, 부족한 기후재원

2년 전 파키스탄의 대홍수를 기억할 것이다. 국토의 3분의 1이 침수되고 1700명의 사망자와 8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이 명백한 기후재난에서 파키스탄은 300억 달러(37조 원)에 달하는 피해를 입었다. 이는 2022년 파키스탄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8%에 준하는 수치다. 그러나 파키스탄의 2022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 세계 배출량의 0.5%에 머물렀으며(Global Carbon Project, GCP), 1750년부터의 역사적 누적배출량의 차원에서는 파키스탄의 배출량은 전 세계의 0.3%도 되지 않는다.

파키스탄뿐만이 아니다. 기후재난에 가장 취약한 국가들은 소위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국가들에 집중되어 있다. 기후위기 취약 국가를 평가하는 CRI 2021(Climate Risk Index 2021)의 상위 10개국은 푸에르토리코, 미얀마, 아이티, 필리핀, 모잠비크 등 모두 글로벌 사우스 국가다. 이들은 2000년 이후 매년 GDP의 0.4~3.8%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산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탄소배출량은 미미한 수준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강력해지는 허리케인으로 매년 3.6%의 GDP 손실을 입은 푸에르토리코의 2022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 세계 배출량의 0.03%에 그친다. 기후재난의 극심한 피해자인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전체의 1750년 이래의 역사적 누적 배출량은 6%에 불과하지만 여기에는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인 19억 명이 산다.

반면 온실가스의 역사적 누적배출량의 62%를 고소득국가가 집중 분포된 북미와 유럽이 차지한다. 미국은 2위 중국의 두 배에 달하는 4000억 이산화탄소 환산톤 이상을 배출한 유일한 국가이고(25%), EU 28개국의 누적배출량도 3500억 톤으로 전체의 22%에 달한다.

이러한 원인제공 주체와 피해국의 극심한 불일치는 '기후정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주요 원인이다. 부유한 국가들은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피해는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게 떠넘긴다. 배출량이 많은 광업이나 제조업은 개발도상국의 몫으로 점차 이전하고, 재원과 기술은 부족한데 경제성장을 필요로 하는 저개발 국가들은 온실가스 감축에 투자하기 난망해진다. 그 결과 글로벌 사우스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폭증하고, 기후재난은 이들 국가들의 국민들을 더욱 아프게 덮치는 현실이다.

국제적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2년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을 정초할 때,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이 기후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재정 자원을 제공해야 한다(shall provide)고 명시했다. 2009년 코펜하겐 당사국총회에서는 구체적인 안으로 2020년까지 연간 1000억 달러(140조 원)의 개도국 기후 대응 자금을 조달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2020년을 넘긴 2022년이 되어서야 겨우 달성할 수 있었고(개발도상국들은 이마저도 민간재원 포함 및 근거 미흡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기후위기의 심화에 따라 1000억 달러라는 목표도 과소측정되었다는 게 명백해졌다. 새로운 인류사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OECD의 2013-2022 10년간 선진국의 개도국 기후재원 마련 집계
ⓒ OECD
얼마를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이에 이번 아제르바이잔 COP 29에서는 개발도상국 기후재원 마련을 위한 새로운 목표를 합의하려고 한다. 이른바 NCQG(New Collective Quantified Goal on Climate Finance) 논의다. 이는 2015년 파리 협약에서 '2025년 이전에 개도국의 요구와 우선순위를 고려하여 최소 1000억 달러 이상의 NCQG를 설정해야 한다(제9조)'는 결정에 근거한 것이다.

NCQG 논의를 앞두고 필요 재원 규모가 여러 차원에서 제시됐다. 가장 먼저 협상의 표준이 될 안으로 UNFCCC 재정상임위원회(Standing Committee on Finance, SCF)에서는 향후 5년간 5.3~6.9조 달러(7300~9500조 원, 연간 1460~1900조 원)가 개도국 기후대응을 위해 필요할 것으로 봤다. 이는 기존 목표인 연간 1000억 달러의 10배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이와 비슷하게 개발도상국들은 연간 1~2조 달러(1400~2800조 원)의 기후재정 필요성을 제시한다. 이는 개도국 그룹 사이에서도 이견이 있어서 공식 문서에도 최소 1조 달러, 1.1조 달러, 1.3조 달러, 2조 달러 등의 대괄호 형태의 옵션으로 서술되고 있는 상황이다.

UNFCCC의 의뢰로 별도로 추계를 진행한 '기후재원 독립적 고위 전문가 그룹(Independent High-Level Expert Group on Climate Finance, IHLEG)의 숫자는 좀 더 크다. 중국을 제외한 개발도상국에 대해 연간 2.44조 달러(3400조 원)의 재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 중 1.44조 달러는 개도국 내에서, 1조 달러는 선진국을 포함한 외부에서 조달해야 한다고 봤다. 전 세계 GDP가 100조 달러를 상회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개도국 기후대응에만 연간 전 세계 GDP의 1~2%는 족히 써야 한다는 결론이다. 0.1% 남짓에 그치는 현재의 투자는 여기에 비하면 극히 미미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IHLEG의 중국을 제외한 개발도상국 기후위기 대응 필요 재원 규모 추산
ⓒ IHLEG
태풍, 홍수, 가뭄, 폭염, 혹한 등 각종 기후 재난에 대비하는 적응(adaptation) 비용도 특기할 만하다. 유엔환경계획(UNEP)의 '2023 기후 적응 격차 보고서'는 향후 10년간 연간 2150~3870억 달러(300~540조 원)가 개발도상국의 적응 비용으로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2021년의 투자 규모는 이의 10%도 되지 않는 210억 달러에 그쳤다. 앞으로 줄잡아 현재 투자 규모의 10~18배의 자금이 더 투입되어야 한다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다.

현재보다 10배 혹은 그 이상이 필요함이 명백한 개도국 기후재원을 어떤 나라들을 대상으로 어떤 방식으로 조달할 것인가가 이번 총회의 최대 쟁점이라고 할 수 있다. 공여 의무가 있는 선진국 그룹은 중국과 사우디와 같은 배출량이 많고 경제력도 갖춘 국가들도 추가적으로 비용을 분담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재원의 구성도 민간금융 등을 포함한 다양한 원천을 인정하게 해서 공공재원 비용을 최대한 축소하려고 한다.

반면 개발도상국 그룹은 기존의 금융지원 방식이 민간자본이나 선진국의 이익으로 귀속된다며 공공재원의 대폭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2016년 이후 기후재원의 70%가 대출 형태로 제공되었고, 이러한 대출이 부유한 국가의 기업과 금융에게 수혜로 돌아갔다는 분석이 있다는 것이다. 공여 요청을 받은 중국과 사우디와 같은 국가들은, UNFCCC협약에 의무공여국은 '부속서 II 국가'들로 명시되어 있으며 이제 와서 이를 변경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대립이 총회 '의장 안'에서 제시하는 두 옵션으로 나타난다. 첫 번째 옵션은 개도국의 입장으로 연 1~2조 달러를 선진국이 지원하고 이 중 최소 4410억 달러는 무상 보조금으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두 번째 옵션은 선진국의 입장으로 민간투자를 포함한 다양한 재원으로부터 최소 연 1000억 달러를 지원하자는 것이다. 양측의 간극이 너무 커서 합의가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함께 사는 길, 대한민국이 제시했으면
 지난 2023년 6월 1일 세계 환경의 날을 앞두고 광화문광장에서 ‘윤석열 정부는 환경파괴 폭주를 멈춰라’ 기자회견이 환경운동연합 주최로 열렸다. 환경운동연합은 ‘세계 환경의 날을 기념하기 무색하게도 윤석열 정부는 케이블카, 공항 건설, 녹조 방치, 오염수 투기 찬성, 기후위기 방치 등 반환경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 활동가가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구호 '좋아 빠르게 가!'를 외치는 모습을 풍자하고 있다.
ⓒ 권우성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 대한민국 정부의 전통적 자세는 '관망'이다. 지금까지의 부속서 II국가 기준은 유지되어야 하며 우리도 일정 수준 돈을 낼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자율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개발도상국 기후대응에 더 많은 재원이 필요한 현실을 인정하되, 그것은 우리가 의무공여국이 아닌 국가의 지위를 유지한다는 전제에서다.

흔히 말하는 '국익' 관점에서 책임을 최대한 회피하며 그렇다고 명분을 저버리지는 않아야 한다는 시각에서는 지극히 합리적인 방침이라 할 만하다. '기후변화가 사기'라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미국이 파리협약을 탈퇴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굳이 의무공여국도 아닌 대한민국 같은 나라가 나설 공간도 이유도 없지 않나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문제는 남아 있다.

먼저 대한민국은 탄소배출의 역사적 책임을 쉽사리 외면할 수 있는 국가가 아니라는 점에서다.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7위, 1인당 배출량 5위(IEA, 2022)는 말할 것도 없고, 역사적 누적배출량 역시 세계 18위(GCP, 2022)로 누적배출량의 1% 이상을 차지하는 상위 국가라는 점에서 기후변화의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산업화 이후 역사적 누적배출량에 따라 개도국 기후재원을 할당한다고 하면, IHLEG 기준으로 필요한 선진국 조달분 연간 1조 달러의 1%인 100억 달러(14조 원)는 대한민국이 공여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정부가 자발적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각종 기후기금 지원을 전부 합쳐도 이 책임분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할 정도로 미미하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 녹색기후기금(GCF) 공여를 자발적으로 크게 늘리겠다고 자랑했는데 그 금액이 3억 달러(4200억 원)에 불과했다. 재정적 여유가 있는 국가가 재원을 분담해야 한다는 원칙을 적용해도 한국의 부담분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은 세계총생산의 1.5%를 산출하는 경제 대국이기 때문이다.

설령 공여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된다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극단적인 의견 대립 속에서 과연 인류는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이다. 책임성과 재정적 충분성 조건 모두를 갖추고 있는 대한민국과 같은 나라도 돈을 안 내는데, 어떤 나라가 돈을 더 내려고 나설 것인가?

역사적으로 자선이 문제 자체를 해결한 적은 없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자발적 공여가 충분한 지원을 이끌어 낼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약탈적 성격이 짙은 민간투자로 재원 계획이 채워지고 중국과 사우디 같은 국가들이 협조하지 않을 명분이 된다.

개발도상국 전체의 탄소배출은 이미 선진국을 훌쩍 넘어섰다. 절대규모도 문제지만 증가율의 차원은 압도하는 실정이다. 1990년 이래로 선진국의 배출량은 연 150억 톤 언저리에서 억제되고 있지만, 개발도상국의 배출량은 연 80억 톤에서 220억 톤으로 3배 가까이 뛰어올랐다.

우리 자신의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엄수한다 하더라도 개도국의 감축을 달성하지 않으면 그 효과는 무의미할 정도로 크게 반감될 수 있다. 국가이익의 차원에서도 어떻게든 개도국 탄소배출 문제는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시간조차 우리의 편이 아니다. 해결을 늦출수록 비용은 불어나는데 효과는 축소되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더 급진적이고 파괴적인 해결책으로 몰리게 될 수도 있다.

소극적 관망으로 일관하는 태도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가 아닐까? 의무공여국이 아닌 우리부터 합당한 돈을 내겠다, 우리부터 1.5℃ 경로에 부합하는 감축목표를 제시하고 화석연료 투자를 축소하겠다, 그러니 현재의 위기인식과 필요성을 바탕으로 모두가 필요한 재원을 책임지자는 입장을 주도하고 중재할 수는 없을까. 대한민국의 위치는 과거 식민지 중 유일하게 선진국에 진입한 국가로서 개도국과 선진국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국가라는 점에서 문제 해결의 키를 쥐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CF100(무탄소 전원 100% 사용)같은 자국 이해에 천착하는 이니셔티브에 몰두하며 원전국가의 명성에 안주할 것을 바랄 것인가, 아니면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제안자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세계사적 중심국가의 길을 걸을 것인가. 대한민국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명분과 책임과 실력 모두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다. 대한민국 정부의 새로운 시대인식과 전향적 자세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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