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없이 G20 단체사진 ‘찰칵’…지각 안 기다려준 정상들
퇴임을 두 달 남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마지막 국제 다자회의에 참석했다가 단체 사진 촬영을 하지 못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18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참가국 정상들은 ‘글로벌 기아·빈곤 퇴치 연합’(Global Alliance Against Hunger and Poverty)이라는 글씨를 인쇄한 단상 위에서 설탕을 잔뜩 쌓은 듯한 독특한 형태로 유명한 ‘빵 지 아수까르’ 산(일명 ‘빵산’)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등은 취재진의 요청에 맞춰 손을 맞잡거나 손뼉을 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런 모습은 G20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됐다. 이어 정상들은 사진을 찍고 자연스럽게 대화하며 회의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정상들이 해산하는 분위기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그제야 뒤늦게 회의장 쪽에서 걸어 나왔다.
G20 공식 영상을 촬영하는 카메라는 바이든 대통령 쪽으로 황급히 돌리다 크게 흔들렸다. 몇 초간 초점이 맞지도 않은 데다 당황한 듯한 누군가의 탄식도 그대로 송출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멜로니 총리 등과 잠시 대화하다 회의장 쪽으로 되돌아가는 모습이 잡히기도 했다.
현지 매체 G1은 “바이든 대통령이 촬영장에 늦게 나와 공식 사진에서 제외됐다”며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사진 촬영에서 빠졌다고 보도했다.
미국 백악관 취재단은 이번 사진 촬영이 G20 정상회의를 기념하는 공식 사진 촬영은 아니며 기아와 빈곤퇴치 회의를 기념하는 사진 촬영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미국의 국제적 위상을 고려할 때 현직 대통령이 국제 행사 단체 사진 촬영 일정에 ‘의도’가 아닌 ‘지각’으로 동참하지 못하게 되는 건 유례를 찾기 힘들다. 이번 G20 정상회의 단체 사진 촬영이 3년 만에 재개됐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앞서 2022년(인도네시아 발리)과 2023년(인도 뉴델리) 정상회의 때에는 정상들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어깨를 나란히 하지 않겠다’는 이유로 단체 사진을 찍지 않았다.
바이든, APEC 때도 끄트머리 자리…정중앙 시진핑과 대비
앞서 페루에서 진행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단체 사진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은 뒷줄 끄트머리 자리를 배정받았다. 이를 두고 폭스뉴스를 비롯한 일부 미국 언론은 “어색한 위치”라는 비판을 섞어 논평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내년 1월 퇴임을 앞두고 있다.
한편 APEC 당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앞줄 정중앙에 서 있었고 이번 G20 사진에서도 앞줄에 자리했다.
트럼프, 존재감 드러내는 막후 영향력
G20 정상회의에서 참석하지도 않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막후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18일(현지시간) 미 CNN방송과 브라질 매체 G1 등에 따르면 올해 G20 의장국인 브라질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 제안에 따라 기후 위기 대응과 글로벌 부유세 과세를 이번 회의 주요 의제로 삼고 가시적 합의안 도출을 위해 노력했지만, 일부 국가의 반대에 부딪혔다.
가장 강하게 반기를 든 나라는 강경우파 성향의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 이끄는 ‘브라질 이웃’ 아르헨티나라는 게 중론이다.
아르헨티나는 기후 위기론에 부정적 입장을 견지하면서, 정상 공동 선언문에 구체적인 행동을 촉구하는 취지의 문구를 넣는 것에 반대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고 G1은 전했다.
부유층에 대한 과세 역시 “(아르헨티나는) 논의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기류”라는 소식통의 전언이 있다고 아르헨티나 일간 라나시온은 보도했다. 이는 밀레이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고 엘파이스는 전했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밀레이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기후 위기론을 ‘거짓말’이라고 일축해 왔다. 이는 기후 위기를 ‘사기’라고 주장하는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 시각과 일치한다. 밀레이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 참석 전에는 미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트럼프 당선인과 비공개 회동을 하는 등 향후 아르헨티나 외교 정책 주파수를 미국과 맞추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G1은 “브라질 외교가에서는 밀레이 대통령이 마치 트럼프 특사처럼 행동한다는 우려를 보인다”고 꼬집기도 했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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