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미사일로 북한군 겨눈다…떠나는 바이든의 '마지막 승부수' [view]
바이든 미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미국 미사일로 러시아 본토를 타격하는 걸 허용했다. 북한군 참전으로 인한 전쟁 확대 위험성이 러시아의 핵 사용 위협 못지 않게 심각하다고 판단한 결과다. 퇴임을 두 달 앞둔 조 바이든 대통령이 북·러 연합군의 ‘쿠르스크 탈환’을 저지, 트럼프 행정부에서 이뤄질 평화 협상에서 우크라이나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17일(현지시간) 뉴욕 타임스(NYT)와 워싱턴 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조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사거리 약 300㎞인 에이태큼스(ATACMS·Army TACtical Missile System) 미사일로 러시아 내부 표적을 타격할 수 있도록 기존의 제한을 해제했다.
미국과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를 공식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부인하지도 않았다.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정부는 북한과 러시아의 불법적인 군사 야합이 국제사회에 대한 중대한 안보 위협을 가하고 있는 상황에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한·미 간에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러·북 군사협력에 대해 긴밀히 소통 중”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행정부의 이번 결정은 1차적으로는 북한군 추가 파병을 막기 위한 목적이다. 한·미는 북한군 1만 1000여명이 이미 우크라이나가 점령 중인 러시아 서부의 격전지 쿠르스크에 배치돼 전투 작전에 참여했다고 보고 있다. 미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WP에 “애초에 군을 파병한 게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치를 실수인지 김정은이 깨닫게 해야 한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 전술지대지미사일인 에이태큼스의 사거리를 고려할 때 우크라이나는 이를 북한군 주둔지인 쿠르스크에서 쓸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가 조기 종전을 공언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전 북한군을 동원해 ‘땅따먹기식’ 고기 분쇄기(meat grinder) 전술을 통해 쿠르스크 탈환을 밀어붙이자 미국이 미사일 제한을 풀어 우크라이나의 공성전을 지원하고 나선 것이다.
러시아는 이미 북한군을 포함, 5만명을 쿠르스크 지역에 소집했다. 북한의 파병 덕에 다른 전선에서의 병력 유출 없이도 인원을 충당할 수 있었다. 결국 바이든이 아끼고 아꼈던 카드를 꺼낸 건 쿠르스크에서 북·러 연합군에 큰 희생을 안기고, 북한이 추가 파병을 망설이게 만들기 위한 회심의 일격인 셈이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러시아에 유리한 방향으로 조기에 휴전이나 종전을 추진할 가능성과 맞물린다. 트럼프 측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끊고 특정 시점에서의 국경선을 기준으로 종전을 달성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WP는 미 관료들을 인용해 “새 대통령이 임기 초에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는 평화 협상에 앞서 우크라이나가 최대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를 백악관은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가치 외교를 표방하며 반러의 구심점에 섰던 바이든이 퇴임 전 자신의 ‘업적’을 확고히 하는 측면에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취임 뒤 이를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지만, 두 달 동안 이끌어낸 쿠르스크 전황 변화를 바탕으로 협상의 기준점 자체는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노련한 협상가를 자처하는 트럼프로서도 대러시아 협상 카드를 늘려가는 건 실보다 득이 될 수도 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러시아는 빨리 쿠르스크를 탈환한 뒤 이미 강제병합한 돈바스는 러시아 영토로 기정사실화한 다음 종전하려고 할 것이고, 반면 우크라이나는 쿠르스크라도 상징적으로 남겨두려고 할 것”이라며 “이런 쿠르스크 공방전에서 무기 지원의 제한을 두지 않겠다는 의사를 미국이 분명히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 언론들이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에 속하는 에이태큼스에 대한 제한 해제를 ‘장거리(long-range)’ 미사일 사용 허가로 표현한 것도 눈길을 끈다. 추후 북·러의 행동에 따라 접경지인 쿠르스크를 넘어서는 러 내륙 본토 타격도 배제하지 않는 것일 수 있어서다.
이는 결과적으로 ‘공포의 핵균형’이라는 금기를 깰 수 있어 주목되는 대목이다.·우크라이나라는 비핵국가가 러시아라는 핵보유국을 상대로 본토 공격을 실시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같은 핵보유국인 미국이 이를 지원하는 양상이어서다. 핵보유국 간 대리전 성격까지 전쟁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비핵국가의 핵보유국 공격은 물론, 핵보유국 간의 정규전도 국제정치학에선 금기시되는 영역이다.
미사일 공격을 즉자적으로 핵 전력 사용과 연결할 수는 없지만, 핵이 그 자체로 상대방의 행동을 억제하는 ‘만능의 보검’이라는 기존의 관념 자체를 바이든 행정부가 흔든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서방산 무기 사용 제한 해제가 검토될 때마다 핵 교리 변경 등을 거론하며 사실상 핵 사용 가능성을 위협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당장 러시아는 3차 세계대전을 언급하며 반발했다. 러시아 하원(국가두마) 국제문제위원회 부위원장인 블라디미르 자바로프는 “3차 세계대전 시작을 향한 매우 큰 발걸음”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번 결정은 핵 사용의 문턱을 낮추는 것 아니냐는 우려로 이어질 수 있다. 저위력 핵무기 사용 등 시나리오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지원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며 러시아는 자신들의 억지력이 차츰 무너진다고 느낄 수 있다”며 “실제 장거리 미사일이 사용될 지는 미지수지만 갈수록 전황이 ‘레드 라인’에 근접하며 위험해지는 건 사실”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미 측은 우크라이나의 에이태큼스 사용이 전쟁 전체의 판도를 바꿀 중요 변수는 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원 수량 자체가 제한적인 데다 러시아는 이미 주요 공군 전력 등을 에이태큼스 사거리 밖으로 이동시켰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실제 ‘핵 보복’까지 나설 가능성은 작게 보는 이유다. 오히려 러시아가 유럽 국가 내에서의 책임 입증이 힘든 폭탄 공격 등을 통해 민간인을 노릴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미 CNN 방송은 전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바이든 행정부는 절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내륙 깊은 곳의 본토를 공격하는 정도의 확전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군 파병이라는 변수로 인한 파급효과를 제거하기 위한 조치이지, 이로 인해 러시아의 전략 무기 사용이 유발될 것으로 예상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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