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의원은 진료, 보건소는 앱으로 건강관리… 민·관 ‘윈윈 협업’
‘내 손안의 보건소’ 하>
보건소가 앱 활용 생활습관 등 관리
개선된 건강 성적표에 주민 큰 호응
건강 챙기고 비용도 절감돼 '1석2조'
더 많은 모바일 서비스 활용 위해선
일반의원 환자들도 대상 포함해야
한반도 최남단인 전남 해남군은 고령화와 저출생 여파로 지난 10년간(2013~2022년) 인구가 15.3% 줄었다.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전국 89개 인구 감소지역 중 한 곳이다. 정주 인구가 줄면서 병·의원 수도 덩달아 감소 추세다. 고령 인구가 많고 이동 거리가 먼 전형적인 농어촌 지역인 데다, 단골로 다니던 동네의원이 하나둘 문을 닫으면서 고혈압 당뇨병 등 질환자 관리에 대한 소외 우려가 큰 실정이다.
해남군은 이 같은 의료 및 건강관리의 취약한 접근성을 모바일 서비스로 뚫었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2년째 실증 연구를 진행 중인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만성질환 관리 서비스’로 해결책을 찾은 것.
해남군은 올해 새로 도입된 ‘의원-보건소 연계 모델’에 참여 중이다. 동네의원으로부터 의뢰받은 고혈압 당뇨 환자들에게 보건소가 스마트폰 앱(채움건강)을 활용해 식이·영양, 운동 등 건강생활습관 관리를 돕는 형태다. 진료와 치료는 의원이, 질환 관리는 보건소가 맡는 협업으로 주민들 호응을 얻고 있다. 이번 실증 연구에 참여한 전국 22개 보건소 중 해남과 장흥군 2곳이 해당 모델로 선정됐다.
지난 5일 오전 찾아간 해남군 보건소 건강누리센터에는 이른 시간대인데도 모바일 사업에 참여한 주민들이 최종 건강검진을 받느라 분주했다. 지난 5월부터 보건소에서 받은 활동량계와 혈압·혈당계, 그리고 이에 연동되는 스마트폰 앱(사진)을 통해 건강관리를 받아온 만성질환자들은 몸무게와 허리둘레, 체성분, 혈압, 혈당을 측정하고 의사와 결과 상담을 받았다.
해남군 보건소에는 정부의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제(일명 동네의원 만관제)’에 참여 중인 관내 의원 6곳에서 의뢰받은 30명의 환자가 최초 등록됐다. 그중 앱 미접속 등 이유로 중도 탈락한 5명을 뺀 25명이 마지막까지 함께 했다. 다른 지역과 달리 해남군 관내 동네의원들이 보건소 사업에 협조적인 분위기가 한몫했다.
30대 후반에 당뇨병 진단을 받은 명경희(50)씨는 이날 지난 6개월간의 건강 성적표를 받아들고 뿌듯해 했다. 명씨의 식전 혈당(126㎎/㎗ 이상 시 당뇨병 해당)은 사업 초반 건강검진에서 145㎎/㎗였다가 최종 검진에서 132㎎/㎗로 떨어졌다. 3개월 평균 혈당조절 지표인 당화혈색소(6.5% 이상 당뇨병)도 8%에서 7.3%로 낮아졌다. 혈당치가 관리 기준 내로 들어오진 못했지만 뚜렷이 개선된 것이 눈으로 확인됐다.
명씨는 “다니던 의원 원장님이 보건소 사업에 참여하면 당뇨 관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면서 “매일 먹는 음식의 칼로리나 걸음 수가 앱에 자동 기록되니까 자꾸 보게 되고 반성하게 된다”고 했다. 고혈압 환자 주형천(58)씨도 “의원에선 약만 처방받고 일상에서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선 충분히 듣지 못한다”면서 “보건소 앱 이용 후 먹는 거나 운동 관련해 규칙적인 습관을 지키게 됐고 성취감도 얻고 있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2021년부터 동네의원 만관제 취지에 동감해 4년째 참여 중인 열린내과의원 이승곤 원장은 이번 보건소 사업에 자신이 진료해 온 환자 5명을 의뢰했다. 이 원장은 “만성질환은 전문적인 식이·영양 교육을 통해 질병을 제대로 알고 합병증을 덜 오게 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보건소 모바일 사업은 환자 자신의 건강을 지켜줄 뿐 아니라 의료 비용을 줄여주는 프로그램”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만관제 관련 수가(진료 행위에 대한 보상)를 받으려면 교육·상담에 환자 1인당 20분(의사는 10분) 이상 투자해야 하는데, 하루 60~70명을 진료 봐야 하는 여건에서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보건소의 모바일 서비스가 의사가 못 해주는 역할을 보완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원장은 동네의원 만관제가 본사업으로 전환돼 환자 본인 부담이 증가하게 되면 의원 관리 환자 수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보건소가 의원과 협력해 만성질환자를 관리하는 것은 좋은 방향”이라며 “다만 보건소의 진료 영역 침범은 곤란해 의원과 보건소의 역할을 더욱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남군과 인접한 장흥군 보건소에도 관내 3곳의 의원에서 추천받은 만성질환자 22명이 모바일 건강관리 서비스를 받고 있다. 이 지역엔 28곳의 병·의원이 있지만 “환자를 뺏길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해 보건소 사업에 그다지 협조적인 분위기가 아니다. 이 때문에 사업 초반 환자 모집에 애를 먹어야 했다. 보건소 직원들이 직접 의원들을 찾아다니며 발로 뛰었다.
내원 환자가 많은 오전 8~10시에 의원을 방문해 고혈압 당뇨병 환자를 상담하고 사업 안내장과 함께 활동량계, 혈압·혈당계 등을 비치해 사업을 알렸다. 당초 목표치 30명에는 못 미쳤지만 22명의 참여를 끌어냈다. 장흥군 보건소 건강증진팀 김경선 주무관은 “어르신 등 참여자들도 처음엔 모바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 했지만 22명 모두 중도 탈락 없이 끝까지 완주했다. 보건소 직원들의 사명감과 열정도 컸다”고 말했다.
20년간 고혈압과 당뇨병을 앓아온 택시 운전사 박모(69)씨는 “틈나는 대로 앱을 열어보고 실천하려 노력한다. 하루 목표 걸음 수가 부족할 땐 택시를 세워놓고 걷는다”고 했다. 박씨는 “여섯 달 동안 해 보니 좋은 점을 많이 느꼈다. 프로그램이 끝나도 지급받은 활동량계 등 장비를 계속 사용해서 나 스스로 관리할 생각”이라며 의지를 다졌다.
하지만 더 많은 만성질환자가 모바일 관리를 받게 하기 위해서는 동네의원 만관제에 참여하는 환자 외에 병원이나 일반의원의 진료 환자까지 서비스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김미연 건강증진팀장은 “일반의원에서 진료받는 환자들의 참여 희망이 의외로 많으며 그런 환자에게 보건소는 의원에서 받지 못하는 건강관리 서비스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 따르면 이번 사업 참여 환자의 약 64%가 동네의원에서 치료 중이며 보건소 진료를 받는 경우는 5% 수준으로 파악됐다. 보건소가 병·의원 환자를 뺏는다는 우려는 기우임을 보여준다.
해남·장흥=글·사진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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