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까지 대비… “내 사망보험금, 아이가 성인되면 주세요”

황인호 2024. 11. 19.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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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금청구권 신탁 관심 증가
금융사가 보험금 관리·분할 지급
수익자 미래에 사용되도록 보장
사후에도 자녀 생활 안정에 도움
게티이미지뱅크


미성년 자녀를 둔 50대 여성 최고경영자(CEO) A씨는 지난 12일 삼성생명에서 출시된 보험금청구권 신탁을 1호로 계약했다. A씨는 본인의 사망보험금 20억원과 관련해 자녀가 35세가 되기 전까지는 이자만 지급하다가 자녀가 35세, 40세가 되는 해 보험금의 50%씩 지급하도록 신탁을 설계했다.

최근 자산가를 중심으로 보험금청구권 신탁 상품이 관심을 끌고 있다. 보험사가 지급하는 사망보험금을 신탁회사가 운용, 관리해 수익자에게 주는 상품이다. 그동안 금융권은 부동산, 퇴직연금, 펀드 등만 신탁 자산으로 판매할 수 있었지만 최근 자본시장법 시행령과 금융투자업 규정 개정안 시행으로 보험금도 신탁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이전에는 보험계약자가 사망하면 보험사가 수익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고 계약이 종료됐지만, 이제는 A씨처럼 수익자를 신탁업자로 변경해 누가 언제 어떻게 보험금을 받을지 미리 정할 수 있게 됐다. 사망보험금 관리와 상속 재산 운영이 더 유연해지고 안전해진 셈이다. 금융사들도 관련 시장이 커질 것으로 보고 발 빠르게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미성년 자녀 둔 50대 자산가 관심

18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지난 12일 출시된 보험금청구권 신탁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은 억 단위 보험금을 보유한 자산가 위주로 알려졌다. 문의 후 곧바로 계약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지난 12일 금융위원회는 신탁 가능한 보험금청구권 요건을 규정해 관련 신탁 상품이 출시 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사망보험금이 3000만원 이상인 고객은 누구나 보험금청구권 신탁에 가입할 수 있게 됐다.

자산가들이 보험금청구권 신탁을 찾는 이유는 사망보험금이 수익자의 미래를 위해 사용되도록 ‘보장’할 수 있어서다. 종신보험 가입자 중에는 사후 사망보험금이 제대로 수익자에게 돌아갈지, 돌아가더라도 잘 못 쓰이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는 이들이 많다. 사망보험금을 둘러싼 분쟁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각 금융사의 1호 가입자 대부분이 미성년 자녀를 둔 50대인 것도 이런 우려가 반영된 결과다. 신탁이 일종의 ‘안전장치’인 셈이다. 미성년 자녀를 둔 부모가 사망보험금 청구권을 신탁하면 신탁업자(금융사)는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보험금을 안전하게 관리해 필요한 시기에 분할 지급할 수 있다. 가입자 사후에도 금융사가 자녀의 생활 안정과 교육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다.

흥국생명의 보험금청구권 신탁 계약 1호 주인공도 자녀를 둔 50대 남성이었다. 한 기업체의 임원인 그는 본인의 사망보험금 5억원에 대해 자녀가 40세 되기 전까지는 이자만 지급하다가 자녀가 40세, 45세가 되는 해에 보험금의 50%씩을 지급하도록 했다. 은행권 최초인 하나은행의 1호 계약자도 마찬가지다. 그는 만약의 사고에 대비해 본인의 사망보험금이 미성년인 자녀를 위해 쓰일 수 있도록 상품을 설계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아직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비교군이 많지는 않지만, 미성년 자녀를 둔 분들의 관심이 높다”며 “지금은 자산가들의 문의가 많지만 점점 다양한 고객층으로 가입자가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신탁 가입 조건이 3000만원인 것도 다양한 가입자의 신탁을 보장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883조원 시장’ 선점 경쟁 치열

보험금청구권 신탁 허용으로 국내 신탁 시장은 벌써 지각변동 조짐이 보인다. 보험업계에서는 앞으로 대부분 종신보험 가입자가 신탁을 활용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고령화 사회 진입에 따라 상속재산 규모와 치매 고령자 수 등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신탁 자산 규모는 1310조원이다. 2020년 1039조원에서 2021년 1166조원, 2022년 1223조원 등 계속해서 증가 추세다. 여기에 보험금까지 추가되면서 신탁 시장 규모는 더 확대될 전망이다. 지난 6월 말 기준 생명보험사 22곳의 사망 담보 계약 잔액은 883조원에 달한다.


규모가 큰 만큼 금융권의 시장 선점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종신보험을 주력으로 판매해온 생명보험사들은 기존에 은행 중심으로 운영되던 신탁 시장에서 존재감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종합자산관리 역량을 강화해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보험금 청구 및 지급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어 고객 니즈에 보다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국내 보험사 중 종합재산신탁업 자격을 취득한 곳은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흥국생명 미래에셋생명 5곳이다. 삼성생명은 2007년 종합신탁업 자격을 취득해 일찍이 종합자산관리팀(WM) 내에 신탁부를 두고 관련 역량을 키워오고 있다.

교보생명의 경우 지난 6월 금융위로부터 재산신탁업을 인가받았다. 2007년 금전신탁에 뛰어든 데 이어 재산신탁 진출에도 성공하면서 종합재산신탁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변호사·세무사 등 신탁 전문 인력으로 구성된 별도 조직도 꾸렸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 시장 포화상태에서 보험금청구권 신탁 시장은 보험사들에 새로운 먹거리”라며 “현재 신탁업 관련 라이선스가 없는 일부 금융지주계열 보험사들도 은행이나 증권 등 다른 금융 계열사와 협업하는 형태로 신탁업 진출 발판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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