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누구를 보며 일하는가
성경을 읽다 보면 해석하기 난감한 본문을 종종 마주하는데, 누가복음 10장의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가 그렇다. 예수님과 제자들을 집으로 초대한 마르다는 열심히 음식을 만들다가 자신을 돕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만 듣는 동생 마리아를 보며 예수께 “동생에게 자신을 돕게끔 명하시라”고 요청한다. 그런데 예수께서 난해한 답변을 남기신다.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눅 41~42)
아무리 봐도 주님의 일이라는 것은 따로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기독교는 이 본문에 근거해 종교개혁 이전까지만 해도 세속 일터보다 수도원이나 교회가 훨씬 더 고귀한 자리라고 여기며 세속 직업보다 사제가 고귀한 직업이라고 여겼다. 심지어 성직만이 소명이라고 규정했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해석이 맞을까.
다행히 바로 앞 본문이 해석을 돕는다. 누가복음에는 마르다를 만나기 전 예수께 어떤 율법 교사가 찾아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한 사건이 그려진다. 이때 예수께서는 율법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답변을 남기신다. 그러자 그는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묻는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남기신 게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다. 율법의 대명사인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 만나 죽게 된 한 유대인의 호소를 듣고도 그냥 지나쳤으나 반율법적 존재의 대명사인 사마리아인이 그를 구해주고 환대했다는 파격적인 비유. 이를 통해 예수께서는 ‘내 이웃이 누구냐’라는 물음은 결국 선별적으로 사랑하려는 자기중심적 죄된 본성임을 직면시키셨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이웃이 아닌 자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시에 이 비유는 마르다를 향했던 예수님의 난해한 대답을 이해할 실마리가 된다. 비유 속 제사장과 레위인은 제사업무와 구호업무 등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한 일을 하는 자들이다. 하지만 강도 만나 죽어가는 자를 외면한다. 결국 비유는 무슨 일을 하느냐가 어떤 이의 정체성을 규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상기시킨다. 핵심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일을 하는가이다. 그런데 본문에는 율법 교사가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29절) 질문했다는 단서가 존재한다. 결국 그는 하나님께 인정받고 나아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그런 일들을 해왔다.
마르다 역시 그러하다. 물론 주방 일은 율법과 관련은 없다. 하지만 그녀의 일은 타인을, 무엇보다 예수님을 섬기기 위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 순간 마르다의 일은 율법 교사가 했던 일의 동기와 같다. 증거가 있다. 만약 진정 섬김을 더 잘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그녀는 마리아를 찾아가 직접 요청해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마리아가 아닌 예수를 찾아가서 호소하고야 만다. 즉 그녀는 지금 섬김을 위해 그 일을 한 게 아니라 자신을 옳게 보이길 원했던 것임이 드러났다.
반면 마리아는 누구를 바라보며 일을 하는가. 주님을 바라보며 말씀 듣는 일을 했다. 당연한가. 아니다. 자신에게 물어보라. 당신은 말씀 읽을 때, 설교 들을 때, 정말 주님만 바라보는가. 나는 대답할 자신이 없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이 해야 할 일조차 잊을 정도로 주님만 바라보며 말씀 듣는 일을 했다.
그런데 말씀 듣는 일만큼 귀한 일, 즉 예수를 섬기는 일을 하던 마르다는 그 순간 주님이 아닌, 그 옆에 있는 마리아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내가 인정받으려고 하는 이 일을 방해하는 듯한 마리아를 보며 분노한다. 결국 예수께서 ‘좋은 편’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런 뜻이다. 네가 무슨 일을 했느냐가 아닌 과연 너는 누구를 바라보며 일했느냐.
이런 맥락에서 한 가지 더 말하고 싶다. 한국교회는 누구를 보며 일하는가. 혹시 교회를 더 거룩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같은 이들을 바라보며 쉬이 분노하는 것은 아닌가. 한국교회가 해야 할 것은 그런 주님을 더 바라보지 못한 자신에게 분노하며 회개한 뒤, 타인이 아닌 주님을 더 바라보는 것임이 분명하다.
손성찬 목사(이음숲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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