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재곤 (6) 분노로 가득 찼던 내게 용서의 길 보여주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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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함이었다.
나와 관계없던 일이 날 위협했다.
택시기사가 나에게 죄를 떠넘기며 일이 커졌다.
구치소를 나오며 용서를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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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눈으로 밤새우며 오직 복수 생각
무심코 펴든 성경 본 후 용서 결심
모함이었다. 나와 관계없던 일이 날 위협했다. 사고와 직접 관련이 있던 택시기사는 죄에서 벗어났다. 대우건설에선 출국 날짜가 다가오고 있는데 연락이 안 된다며 각종 서류를 보내오고 있었다. 검사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택시에 부딪혔던 중학생들이 양심선언을 하겠다고 나섰다. “트럭이 아니라 택시에 부딪혔다”고 말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진술만 받아들여지면 나는 무죄였다.
하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검사는 아이들에게 “너희가 이제 와서 증언을 바꾼다면 너희가 가해자가 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고 했다. 아이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발길을 돌렸다.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극단적 선택을 할까 싶다가도 날 죄인으로 만든 택시기사 일당에게 복수하고 싶은 생각에 빠져들기 일쑤였다.
분노가 들끓어 잠도 제대로 청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결정적인 실수를 하고 말았다. 합의하면 빨리 풀려날 수 있다는 말을 믿고 피해자 가족들과 합의를 한 것이었다. 뺑소니를 인정한 결과가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의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이 일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으로 교통사고 8개 항목 특례법에 저촉돼 죄인의 굴레를 쓰고 말았다. 고작 26살이었다. 1984년 5월 초 나는 서울구치소에 갇혔다. 지금의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자리였다. 2평 남짓한 좁은 교도소에서 6~7명이 칼잠을 잤다.
나는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사고도 복기했다. 사실 너무나 가벼운 사고였다. 택시에 부딪힌 아이들의 부상도 가벼웠고 택시도 크게 망가지지 않았다. 이들이 그냥 합의했으면 원만히 끝났을 일이었다. 택시기사가 나에게 죄를 떠넘기며 일이 커졌다.
구치소의 시간은 느리게 갔다. 무료하던 어느 날 손바닥만한 파란색 책이 눈에 들어왔다. 기드온협회가 제작한 성경이었다. 무심코 성경을 폈는데 ‘억울할 때 읽으면 도움이 되는 구절’이라고 쓰인 문구가 유독 크게 보였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는 마태복음 6장 14~15절 말씀이었다.
용서라니. 분노로 가득 찼던 내게는 존재하지 않던 단어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렇게 찾아오셨다. 좁은 방, 억울함 속에서 이를 갈던 내게 찾아오신 예수는 따뜻했고 용서의 길을 보여주셨다.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19~21)
이 말씀을 읽던 날 밤 나는 그들을 용서하기로 했다. 그날 처음으로 단잠을 청했다. 구치소에서의 두 달은 분노와 복수, 그리고 용서로 이어지며 날 다시 세우는 시간이었다. 법정에서도 “나의 혐의를 인정한다”고 말했다. 판사는 내게 집행유예를 선고했고 그해 6월 풀려났다. 구치소를 나오며 용서를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게 됐다. 악으로 선을 이긴다는 로마서 말씀은 삶의 중심이 됐다. 그리고 사업가로 향하는 좁은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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