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현덕의 AI Thinking] AI 가속주의와 美·中 패권 다툼… 그리고 트럼프 ‘거래의 기술’

2024. 11. 19.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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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美 AI정책 ‘가벼운 터치’ 가능성
규제 최소화·민간 자율적 혁신 중시
AI가속, 對中 패권 방어 명분도 제공
ZTE 제재 때처럼 양국 협력할 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인공지능(AI) 관련 정책은 규제보다는 신속한 기술 개발을 추구하는 ‘AI 가속주의’ 쪽으로 흐를 것으로 전망된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신들로부터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주었으나 그 대가로 끔찍한 형벌을 받았다. AI는 인류에게 새로운 ‘불’과 같은 강력한 도구가 되고 있다. 생성형 AI의 급속한 발전으로 그 영향력이 커지면서 한편에서는 위험성을 우려해 규제를 주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규제 없이 기술 발전을 가속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규제에 저항하는 AI 가속주의(AI accelerationism)는 AI 기술의 발전을 최대한 촉진해 기술적 특이점(singularity)에 도달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진 기술 철학적 관점이다.

대표적인 AI 가속주의자로 알려진 벤처캐피털리스트 마크 안드리센과 페이팔 마피아의 거두 피터 틸 등은 AI 규제에 반대하며 가속적인 AI 기술 개발은 인류의 난제들을 해결할 원동력으로 인류에게 복리 혜택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다. 이들은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했고, 트럼프는 ‘AI 규제 행정 철폐’를 약속했다. 반면 AI 감속주의자들(AI decelerationists)은 AI의 잠재적 위험을 예방한다는 명분으로 AI의 안전성과 윤리적 가이드라인 등 규제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했던 ‘안전, 보안, 신뢰할 수 있는 AI 개발과 활용에 관한 행정명령’(2023년 10월 발표)에 대한 지지로 나타났다.

이번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AI 규제론자에 대항한 AI 가속주의자들의 승리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혁혁한 공을 세웠고 현재 ‘국가효율부 장관’이라는 핵심 직책을 맡은 일론 머스크의 입장은 좀 미묘하다. 특히 머스크가 작년 캘리포니아의 AI 규제법안을 지지했다는 점은 평소 그의 철학에서 볼 때 조금 의외였다. 이 때문에 그가 AI 규제를 옹호하는 감속주의자들에게 동조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그 배경에는 AI 기술 독점 반대 명분과 개인적 감정 등이 복합돼 있는 듯하다. 머스크는 딥마인드에 초기 투자를 고려했다. 그러나 딥마인드가 구글에 인수되는 것을 보면서 거부감이 들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머스크는 오픈AI 설립에 참여했으며, AI 기술이 소수 기업에 독점되는 것보다 오픈소스 형태로 개발돼 많은 사람이 혜택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2019년 오픈AI가 영리 기업으로 전환하고 마이크로소프트로 흡수되는 모습을 보면서 AI 기술 독점화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그는 오픈AI가 초기의 오픈소스와 비영리 정신을 내던지고 상업적 이익만을 추구한다고 비판했다. 딥마인드는 구글의 품에 안기고, 오픈AI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일부가 되는 현실이 못마땅했다. 그는 오픈AI가 충분한 검증 없이 무작정 달려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결국 머스크는 스스로 AI 기업(xAI)을 설립하면서 그들과 경쟁 관계에 돌입했다. 그의 AI 규제에 대한 동기는 개인적 경험과 소수에 의한 AI 기술 독점 반대라는 점에서 단순한 기술 규제론자와는 결이 달라 보인다.

이제 머스크가 정부 요직에 임명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AI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재의 분석으로는 트럼프의 AI 정책은 ‘가벼운 터치(light touch)’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신기술이 개발되는 초기 단계에서는 정부가 개입하지 않고 규제를 최소한으로 줄여 개발자와 기업이 비용과 시간을 절감하도록 하는 것이다. 정부는 민간의 자율적 혁신에 힘을 실어주고, 기업들이 스스로 AI 윤리 기준을 세우고 책임 있는 AI 사용을 촉진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프라이버시 침해나 안전 문제 같은 중대한 이슈가 발생하는 경우에만 개입하는 정책이다. 이 정책은 AI 기업들이 자국 내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방향이기도 하다.

트럼프의 AI에 대한 규제 폐지 약속과 신속한 기술 개발 추구는 AI 가속주의와 닮았다. 차세대 미국의 성장 동력이 될 혁신을 창출하기 위해 AI 규제를 폐기하고, 기술 혁신을 경제 성장의 주요 동력으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AI 가속주의자는 빠른 AI 발전이 미국 경제와 국민 복지에 미칠 긍정적인 영향도 강조한다. AI 가속주의는 미국의 산업을 강화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며,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의도에 활용될 수도 있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미국의 국가안보 및 글로벌 리더십 유지와도 직결된다.

미국이 자국 기업 중심의 AI 연구와 개발을 추진할 경우 미국 외의 국가들은 가혹한 환경을 맞을 수 있다. AI 가속주의는 중국의 기술 패권을 방어하고 미국의 AI 기술 우위를 유지하는 데 좋은 명분이 된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기술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대중국 규제는 강화될 수 있다. 이 경우 외국 기업들은 미국 AI 생태계에 진입하기 위해 미국 기업들과의 전략적 제휴를 모색하려고 할 것이니 트럼프 입장에서는 반가울 것이다.

AI 가속주의는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이중적 성격을 띨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는 필요하다면 거래의 이익을 전제로 중국과 부분적으로 협력할 가능성도 상존한다. 예를 들어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제재를 받던 중국 기업 중흥통신(ZTE)에 13억 달러의 벌금 부과 등 조건을 걸어 제재를 해제한 바 있다. 국제 관계에서는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말처럼 오직 국가 이익만이 영원하다는 경구를 떠올리게 한다.

여현덕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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