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중의 행복한 북카페] 생산자에서 분해자로
이상기후로 인해 길었던 더위는 11월이 돼서야 괄호를 닫았다. 곳곳에서 감지되는 지구의 위기에 단기간의 해법은 없다. 다만, 나침반을 쥐고 나아갈 방향을 잡아볼 수 있다. 썩지 않는 쓰레기가 넘쳐나는 탄소 시대의 지구, “활성화해야 할 것은 생산 과정이 아니라 분해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책이 있다. 일본의 농업사학자 후지하라 다쓰시가 쓴 『분해의 철학』이다.
프롤로그에 등장한 나폴리 사람들에 관한 에세이가 눈길을 끈다. 1차 대전 직후 나폴리에서는 고장 나지 않는 자동차가 없다. 나폴리 사람들은 명인 같은 솜씨로 차를 수리해가며 탄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완벽한 기계는 알 수 없는 것, 아직 뜯어보고 고쳐보지 않았기 때문에 나와의 관계가 시작되지 않은 것이라 꺼림칙하게 여겨진다나. ‘신상’에 둘러싸인 현대인들에게는 매우 신선하게 들리는 발상이다.
이 책은 ‘분해’를 키워드 삼아 프뢰벨 유치원의 나무블럭 놀이, 일본 넝마주의자들의 메카 개미촌, 깨진 그릇을 금으로 이어붙이는 수선법 ‘금계’ 등 흥미로운 소재를 종횡무진 누비며 생산-소비-분해라는 도식을 깨뜨린다. 생산에는 이미 분해의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떠들썩한 장례식’이라는 부제가 붙은 장에서는 동식물이 죽고 나면 얼마나 겹겹의 분해자들이 등장해 활발하게 해체해 나가는지 보여준다. 예를 들어 고래가 죽어 심해까지 천천히 낙하하는 동안 바다에는 수천종의 생물들이 사체를 양분 삼아 먹고 산다. 그 과정은 장례식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원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여 아름답다.
오늘도 생산적인 하루를 보내지 못했다고 괴로워하는 나에게 분해자로서의 발걸음을 내딛게 하면 어떨까. 뭘 새로 추가하지 않아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을 우리는 할 수 있다. 버리려던 물건을 차곡차곡 풀고 바수고 작게 만들어 쓰레기라는 최종 형태에 쉽게 내보내지 않으며 사물과 새로 사귀어 보는 것, 이건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김성중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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