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남의 영화몽상] 오즈의 마법사, 소녀, 마녀
“섬웨어 오버 더 레인보우(무지개 너머 어딘가에)…” 이렇게 시작하는 ‘오버 더 레인보우’는 영화 ‘오즈의 마법사’를 본 적 없는 사람도 들어봤을 법한 유명한 노래다. 주인공 도로시(주디 갈란드)가 부른 노랫말에 따르면, 어딘가는 “감히 꿈이 이뤄지는 곳”이자 “걱정거리가 레몬 사탕처럼 녹아버리는 곳”이기도 하다.
도로시는 미국 캔사스에 사는 소녀. 회오리바람에 휘말려 애완견 토토와 함께 낯선 세상에 떨어지고, 집에 돌아가기 위해 마법사를 만나러 노란 벽돌길을 따라 에메랄드 시티로 향하고, 그 여정에 심장 없는 허수아비, 뇌 없는 양철 인간, 용기없는 사자가 동행한다. L 프랭크 바움의 원작을 각색해 1939년 개봉한 이 할리우드 영화가 아날로그 기법으로 구현한 판타지는 여전히 눈길을 끈다.
한데 21세기 뮤지컬 관객이라면 도로시보다 두 마녀, 엘파바와 글린다의 얘기에 친숙할 듯싶다. 이들이 주인공인 ‘위키드’는 2003년 초연 이래 세계적으로 히트한 뮤지컬답게 유명한 노래도 여럿. ‘디파잉 그래비티(중력을 벗어나)’는 공연을 본 적 없는 사람도 들어봤을 법하다. 노랫말에 따르면 중력을 벗어난다는 것은 “남들이 정해준 한계”를 벗어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노래에서도 짐작하듯 뮤지컬 ‘위키드’는 ‘오즈의 마법사’와 퍽 다른 이야기다. 앞선 영화의 조연들이자, ‘나쁜 마녀’ ‘착한 마녀’로 구분되던 두 캐릭터에 전혀 새로운 서사를 부여하고 주인공으로 삼은 것부터 그렇다. 그레고리 머과이어의 소설 『위키드』를 각색한 결과다.
도로시를 돕는 마녀 글린다와 달리 ‘나쁜 마녀’는 영화와 바움의 원작에선 그저 ‘서쪽 마녀’였다. ‘엘파바’는 ‘L 프랭크 바움’의 머릿글자를 따서 머과이어가 만든 이름. 그가 어려서부터 바움의 원작에 친숙했을 것은 당연지사. 한데 매년 TV에서 방송하는 ‘오즈의 마법사’ 영화를 보고 형제자매에게 역할을 맡겨 공연 놀이를 했다는 게 재미있다. 올 초 보스턴 공립도서관에서 진행된 공개 인터뷰에서 한 얘기다.
사실 그는 바움의 원작이 진작에 퍼블릭 도메인이 된 줄 알았다고 한다. 1900년 나온 첫 권 『오즈의 위대한 마법사』는 50년대에 저작권 시효가 소멸했지만, 바움이 쓴 14권의 시리즈 마지막 권은 『위키드』 출간 직전인 90년대 중반까지 시효가 유지되고 있었다.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면 『위키드』 같은 작품은 나오기 힘들었을 것 같다. 물론 뮤지컬 제작진의 각색 역시 이 소설을 곧이곧대로 옮기지는 않았다.
이번 주 개봉하는 ‘위키드’는 이 뮤지컬을 영화화한 작품. 평가는 관객의 몫일 텐데, 오즈의 나라가 바움 이래 여러 창작자를 거치며 120년 넘게 변주되어온 과정 자체도 흥미롭다.
이후남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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