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학생들 질투 마라…경쟁 대신 노래를 즐겨라”

김호정 2024. 11. 19.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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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한국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베셀리나 카사로바(메조 소프라노·왼쪽)와 조란 토도로비치(테너).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이들은 “30년 넘는 경험을 한국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게 뭐냐고요? ‘질투하지 마라’예요.”

메조 소프라노 베셀리나 카사로바(59)가 잠시 생각한 후 답을 했다. 열정적 성격의 테너 조란 토도로비치(63)도 “동의한다”며 말을 이었다. “목표가 노래하는 것이라면, 어디에서 해도 상관 없는 거다. 작은 극장이든 밀라노 라 스칼라든, 노래할 수 있으면 된다. 자신이 노래를 파바로티처럼 못한다고 걱정하는 학생들이 있다. 그런데 누가 그렇게 하라고 했나?”

카사로바와 토도로비치는 각각 불가리아와 세르비아 태생의 성악가다. 세계 무대에서 30년 넘게 노래한 이들은 현재 서울대 음대 성악과의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토도로비치는 지난해, 카사로바는 올 9월 서울대에 정착했고 세계적 경력의 두 성악가가 서울대를 선택하면서 화제가 됐다.

최근 서울대 교수 연구실에서 만난 이들은 “만났던 모든 한국 학생들의 노래가 훌륭했다”고 말했다. “교수직을 선택하기 7년 전부터 전세계에서 공개레슨을 열었다. 그때마다 한국 학생을 많이 만났는데 예술성에 놀랐다. 눈을 감고 들으면 동양 성악가라는 걸 모를 정도였다.”(카사로바) 토도로비치 또한 “한국 성악가들이 부르는 독일어 가곡은 모든 발음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고 놀라워했다.

카사로바는 26세에 빈 국립 오페라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데뷔했던 스타다. 모차르트·벨리니·도니제티 오페라에 주로 출연했고 이후 글루크·헨델의 오페라에서 바지 역할(여성이 연기하는 남성)로 인기를 얻었다. 토도로비치는 ‘카르멘’의 돈 호세, ‘토스카’의 카바라도시, ‘나비부인’의 핑커톤 등으로 인기를 얻었던 테너다. 독일 데트몰트와 하노버의 오페라 극장을 중심으로 런던·베를린·빈·뮌헨·드레스덴 등에서 주연으로 활동했다.

이들은 한국 학생들의 실력과 노력에 대해 “노래를 듣고 있으면 행복할 정도의 재능”이라고 했다. 다만 “미래에 대한 불안, 지나친 경쟁에 대해서는 경고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오페라 무대에서 주연으로 돋보이고자 하는 성악가들은 다른 사람이 가진 재능을 항상 부러워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다르다. 무엇보다 우리 모두는 하루에 한 곳에서 밖에는 노래할 수 없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카사로바)

토도로비치는 라이벌 관계로 꼽혔던 두 성악가를 예로 들어 같은 이야기를 했다. 플라시도 도밍고와 루치아노 파바로티. 세계 3대 테너 중 둘로 꼽혔던 이들이다. “도밍고는 늘 모든 걸 잘해야 하고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성악가다. 파바로티는 그저 노래하는 걸 즐겼다. 다른 성악가가 어떤 경력을 쌓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가 더 행복했나?” 토도로비치는 “큰 사람들, 위대한 성악가들은 유연하고 친절하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두 교수는 노래뿐 아니라 음악을 대하는 자세,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학생들과 나누고 싶어했다. 카사로바는 “인간적으로 사랑을 나누고 마음을 여는 것이 음악가의 가장 중요한 재능”이라며 “청중뿐 아니라 동료 음악가들이 자신을 완전히 믿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토도로비치 또한 “스스로 무대에 서지 않는 교수는 학생들에게 좋은 스승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무대에서 느꼈던 ‘아하 모먼트’를 학생들에게 전하려 한다”고 했다.

두 성악가 모두 경력을 쌓는 데에 스승의 영향을 받았던 경험이 있다. 토도로비치에게 도약의 순간을 만들어준 사람은 전설적인 소프라노 에디타 그루베로바다. 소리를 내는 방법에 대한 근본적인 가르침을 줬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연습에 10분 이상 먼저 도착하고, 어린 스태프까지 모든 사람에게 친절했던 모습에서도 많은 것을 배웠다.”

카사로바는 불가리아 소피아 음악원 시절의 스승 레사 콜레바를 꼽았다. 그는 “다른 사람을 흉내내지 않고 자신의 것을 찾도록 만드는 사람이 좋은 스승”이라고 했다.

이들이 한국의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데에는 서울대 교수인 바리톤 사무엘 윤의 설득이 주효했다. “유럽 오페라 무대에서 만났던 그가 여러 차례 한국행을 권했다”(카사로바)고 했다. 이제는 세계 어느 무대에서 한국 제자들이 노래하는 장면을 보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카사로바는 “그동안 가져왔던 나의 네트워크를 학생들을 위해 사용할 생각”이라고 했다. “아주 다양한 재능을 잘 키워 가능한 많은 성악가에게 행복한 경력을 쌓게 해주고 싶다”는 토도로비치는 “지금 한국 학생들의 실력을 보면 분명 가능하다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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