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북한의 경제가 움직인다 [곽인옥 교수의 평양 시장경제 리포트]
곽인옥 2024. 11. 18. 14:08
북한은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고난의 행군 시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 처참한 상황에 처했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주민들은 국가 주도의 계획 경제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북한에 자생적인 시장 경제가 싹트기 시작했다. 장마당과 상점, 고급 식당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돈을 굴리는 돈주(錢主)는 부를 축적하고, 새로운 형태의 뇌물 구조가 뿌리내렸다. 국제사회의 엄격한 경제제재를 받는 북한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사회주의 사상도 계획 경제도 아니고, 자생적인 시장경제다. 그러나 대다수 북한 주민은 여전히 살벌한 독재 체제의 굴레와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필자는 북한의 심장으로 불리는 평양의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10년간 조사를 해왔다. 탈북자 100여명을 상대로 장기간 심층면접을 하고, 각종 자료 수집을 통해 평양의 시장경제 작동 시스템을 분석했다. 폐쇄적인 북한 내부를 자세히 연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북한의 통계자료와 탈북자들의 증언 역시 어느 정도 신뢰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조사한 북한 사회와 경제의 현실을 공유함으로써 북한 주민들이 처한 현실과 고통을 함께 느끼고 새롭게 다가올 한반도의 미래를 고민해 보자는 취지에서 연재한다. |
1. 새벽 도매시장 분석
북한의 경제는 최근 몇 년간 점진적인 시장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평성시와 평양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들 지역의 새벽 도매시장은 북한 경제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 평성시 물류의 중심지로 부상
평성시는 북한 내에서 ‘개방도시’로 불리며, 물류와 유통의 중심지로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의 대표적인 도매시장인 ‘옥전 장마당’은 다양한 상품이 거래되는 대규모 시장으로, 북한 전역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옥전 장마당에서는 1만명의 상인들이 의류, 신발, 식료품 등 다양한 상품의 도소매를 하며, 특히 평성에서 생산된 가공품은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새벽 4시부터 열리는 평성 새벽 도매시장은 전국적인 도매시장으로 평성시 도매상인 3만명과 평양 및 각 지방 도매상인 7만명이 어우러진다. 이곳에선 북한 경제의 물가와 환율이 실시간으로 반영되며, 중국과의 무역에서도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평성시가 물류 유통의 중심지가 된 이유]
평성시는 철도 및 도로교통의 요지로 접근성이 용이하다. 평성은 국가의 강한 통제를 받는 평양 지역의 보조역할을 하면서부터 물류 유통의 중심지 역할을 맡기도 했다. 이곳에는 북한에서 수재들만 들어갈 수 있는 이과대학과 국가과학원이 있다. 엘리트들도 월급과 배급으로는 살아갈 수 없어서 부업으로 시장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데 평성에서 유명한 의류 가공업에 컴퓨터를 활용한 기술적인 인프라를 지원하고 있다.
고난의 행군 초기 전국에서 모여든 상인들이 이곳에서 터를 잡으면서 전국적인 도매 지역으로 자리를 잡았다. 특히 밀가루와 옥수숫가루로 튀겨낸 ‘벽돌과자’가 유통되면서 도매 지역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
[평성시 가내수공업의 분포]
평성시 행정구역은 평성역을 중심으로 중심 지역과 주변 지역으로 나뉜다. 중심 지역인 역전동, 중덕동, 양지동, 은덕동, 옥전동은 새벽 도매시장을 위해서 모여든 도매상인들을 대상으로 숙박업(30~40%)과 도소매업(40~50%)을 하는 주민들의 비율이 높다. 반면 주변 지역인 문화동, 하차동, 삼마동, 주례동, 보덕동, 봉학동, 냉천동 주민들은 주로 가공업에 종사한다. 의류 가공업이 60~70%로 대부분 차지하고 있다.
평성시에서는 동마다 특화된 가내수공업으로는 주례동 신발, 냉천동 껌, 보덕동 엿, 봉학동 술과 맥주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평성역전에서 가장 가까운 역전동은 접근성이 좋아서 전국적인 도매상인들이 숙박을 하고 도매를 하는 전초기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역전시장은 도소매지역으로 소매는 30%, 도매 70%를 하는 시장으로 역전동 전체가 하나의 큰 시장으로 형성되어 있는 곳이다. 도매 품목으로는 쌀, 오리고기, 돼지고기, 공업품, 수산물, 잡화, 전기제품, 휘발유, 신발, 당과류, 기름 및 조미료, 술 등이 있다.
[평성 새벽 도매시장 현황]
평성시 옥전 시장은 북한에서 매우 큰 시장이다. 상인은 1만명으로,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영업한다. 이보다 더 큰 시장은 옥전 시장 주변에 있는 평성 새벽 도매시장이다. 평성 새벽 도매시장은 평성 도매상인과 지방 각지에서 올라온 도매꾼이 모인다. 평양시의 각 구역 시장 상인들은 새벽마다 버스를 타고 도매를 하기 위해서 평성 도매시장을 찾는데, 이들 숫자만 2만명이 넘는다. 또한 개천시, 덕천시, 순천시, 안주시, 룡강군, 대동군, 북창군, 숙천군, 회창군 등 평안남도 주민들과 신의주시, 남포시, 사리원시, 해주시, 원산시, 함흥시, 청진시, 혜산시 등 전국적인 도매상인 5만명이 평성 새벽 도매시장에서 물품을 도매하여 유통하고 있다.
평성 옥전시장은 도매상인들이 자기 제품을 진열해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새벽 도매시장이다. 천(원단) 매대, 음식 매대, 공업품 매대, 신발 매대, 잡화 매대, 껌 매대, 사탕 매대, 빵 매대, 장식꽃 매대, 중국산 의류 매대 등 대부분 평성시에서 가공된 의류 매대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평성에서 도매로 판매되는 의류 가공품은 중국에서 원자재(천)을 가져다가 컴퓨터를 이용하여 만든다. 남한의 드라마나 영화를 모니터링해 연예인이 입는 옷과 똑같이 재단·설계 후 견본을 만들어 대량생산한다. 평성가공품의 특징은 중국산 의류와 비교해 가격이 싸다는 것이다.
의류 신제품은 평성 이과대학, 국가과학원의 엘리트와 피복 전문대학교 출신 디자이너의 창의력을 결합해 만든다. 도매상인의 도매거래는 주로 달러 80%, 북한 돈 20%를 사용하고 있다.
한편 장마당에 단속 제품으로는 한국산(드라마 CD, 의류, 쿠쿠 밥솥, 한국 의류), 달러 판매(돈장사), 군복 판매, 의약품 판매, 마약 판매, 휴대전화 판매, 매춘, 술장사(음식), 소고기 판매, 미니스커트, 쫄바지, 나팔바지, 영어가 적혀있는 티셔츠, 골프 및 등산 모자 등이다.
3. 평양시 경제활동의 중심지
평양시는 북한의 수도로서 정치적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경제 활동의 중심지로도 발전하고 있다. 평양은 북한 국가 경제 중심지로서의 중앙당 경제, 군수 경제, 내각 경제의 중심 지역이다. 또한 국가 중추 기관 중심지로서 중앙당, 보위부, 보안성, 군사령부, 각종 권력기관이 집중되어 있다. 고등대학 중심지로서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대학교, 평양의과대학, 평양외국어대학 등 명문대학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평양시는 교통 인프라와 대돈주들이 가장 많은 곳으로 무역회사 본사와 물류창고 중심 지역이다. 이뿐 아니라 장마당 주변에 열리는 대규모의 새벽 도매시장은 도시와 농촌 주민들이 농토산물과 공산품을 활발하게 교환하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고, 주민들의 생존을 넘어 수익 창출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평양시 무역회사 본사 위치]
평양시에는 무역회사 본사는 중구역과 보통강구역에 있으며, 무역회사 창고 및 생산기지는 주로 만경대구역과 락랑구역에 있다. 북한의 무역회사는 1급은 종업원이 1만명 이상으로 대기업이 200~300개 있으며, 2급은 종업원이 100~500명으로 중견기업이 1000개, 3~5급 종업원이 100명 이하로 2만개 이상 있다.
북한 산업은 기반 산업이 탄탄하지 못하여 모든 원자재와 생활필수품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중국과 무역이 활발하고 단둥-신의주 루트를 통해서 평안도, 황해도, 개성시, 평양시, 강원도, 함경남도 일부까지 공급된다. 훈춘-나진선봉 루트는 함경북도와 함경남도에 공급된다. 이때 와크권(무역권)이 있는 무역회사가 중국 물품을 유통시키는데, 무역회사 본사가 평양에 있어 평양 새벽 도매시장과 평성 새벽 도매시장으로 물품이 유입된다. 또 다른 경우에는 돈주들이 합작하여 와크권(무역권)이 있는 무역회사를 활용하여 중국으로부터 식량 및 생활필수품을 수입, 새벽 도매시장으로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평양시 새벽 도매시장 수요와 공급]
평양시도 새벽 4시부터 오전 7시까지 시장 주변에서 새벽 도매시장이 열린다. 특히 만경대구역의 칠골시장, 형제산구역의 하당시장, 서성구역의 연못시장, 평천구역의 봉학시장, 락랑구역의 토성시장, 락랑시장, 사동구역의 송신시장은 도심지역과 농촌지역의 경계선에 있는 장마당으로 새벽 도매시장이 활성화된 곳이다. 이곳 새벽 도매시장은 농촌 지역의 농장원들이 텃밭에서 기른 옥수수, 조, 수수, 감자, 고구마와 같은 식량과 야채(배추, 무, 고추, 깨, 토마토, 오이 당근 등)를 가져와 공업품(의류)과 교환해 가기도 한다.
락랑구역의 토성시장은 동평양시외버스터미널이 있는 곳으로 시외버스가 사리원, 해주, 개성, 원산, 함흥 등으로 운행하여 각 지역의 특산물(농토산물과 수산물)을 유통한다. 대규모로 새벽 도매시장이 열릴 때는 2~3만명이 모이게 된다. 주변 지역의 농촌 농장원까지 새벽 도매시장에 참여하게 되어 장마당에서 장사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시장경제가 북한 전역에 활성화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도매상인들은 평성도매시장과 연계하여 값싸고 유행하는 가공품(의류)을 유통하고 있다.
평양의 시장은 다양한 경제 활동을 포용하며, 주민들은 이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평양에서는 외국인과의 교류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어서, 외부 세계의 영향을 직접 받는 경우가 많다. 이는 평양 시장이 다른 지역에 비해 더욱 다양한 상품과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배경이 된다.
4. 변화와 도전 : 시장화의 미래
평성시와 평양시의 새벽 도매시장은 북한 내에서 경제 활동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들 시장은 국가 통제 아래에서도 자생적으로 발전하며, 주민들의 생활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정부의 규제와 외부 제재 등 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본론에서 설명했듯이 평양시, 평성시에서는 새벽 4시부터 시장 주변을 중심으로 도소매가 시작되고 평성 및 평양시 주민들이 시장을 중심으로 시장경제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시장화는 평성 및 평양뿐만 아니라 북한 전 국민, 전 지역에서 비슷한 현상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시장경제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장경제는 자유를 전제조건으로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북한의 정보 통제와 억압은 북한 주민들의 불만을 불러일으켜 개혁개방으로 치닫게 할 것으로 보인다. 국가를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살아가는 북한 주민들의 마음속에는 이제는 시장 경제를 통해서 스스로 살아갈 테니 제발 통제만 하지 말고 자유를 달라고 외치고 있다.
앞으로 북한 시장화가 어떻게 진전될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현재 나타나고 있는 변화는 분명히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북한 주민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외부 세계와의 교류 확대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곽인옥 교수 inokkw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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