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세계관에 균열... 이런 영화는 같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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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수 기자]
▲ 영화 포스터 |
ⓒ 미디어나무㈜ |
나이를 먹으면 학년이 올라가고 착실하게 성장하는 세계. 과연 이것은 진실일까. 국가 주도의 공교육 시스템에서 운영의 효율을 위하여 사용하는 규칙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나는 어렴풋이 이러한 의문을 가져왔다. 왜냐하면 성인이면 누구나 느끼겠지만, 한 인간의 성숙은 학년의 진급 같은 개념과 별로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내 세계관에 균열을 내는 영화를 만났다. <괜찮아, 앨리스>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제목에서 유추했겠지만 앨리스는 고전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따온 이름이다. 평범한 소녀 앨리스가 토끼굴에 빠지면서 겪는 기묘한 이야기. 앨리스는 정해진 현실에서 벗어나 여러 가지 모험을 한 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영화 <괜찮아, 앨리스> 속 앨리스는 토끼굴이 아니라 '꿈틀리 인생학교'에 간다. 학교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니 '특목고'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는 중학교 졸업 후 1년 간 시간을 가지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는 곳이다. 앞만 보며 달리는 경주마 모드를 일시적으로 해제하고 나와 주변을 둘러보는 장소. 문자 그대로 인생학교인 것이다.
나는 <괜찮아, 앨리스>를 강릉의 '꿈틀리 인생학교' 격인 '날다 청소년마을학교' 영화상영회에서 보았다. 장소는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독립극장이라고는 하지만 107 개의 안락한 좌석과 듣기 좋은 음향 시스템을 갖춘 곳이다. 날다 학교와 전혀 관련 없는 나도 별도의 비용 없이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선착순 등록에 성공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 강릉청소년마을학교 날다에서 마련한 <괜찮아, 앨리스> 상영회 |
ⓒ 서배성 |
학교의 교육 과정은 자연의 시간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봄이면 넋 놓고 벚꽃을 바라볼 수 있고, 때 맞춰 모내기를 한다. 다른 지역 학교에서 친구들이 오면 모내기법을 알려준다. 꿈틀리 학교가 위치한 강화도에서는 선선한 바람이 분다. 영화 속 앨리스들은 우리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라는 진리를 매 순간 느끼려 한다.
풍경화를 멍하니 바라보며 이완하는 것처럼 영화를 보는 동안 내 호흡도 깊어졌다. 보통의 대한민국 십 대와 달리 탈 없는 미소를 짓는 학생을 보는 것만으로 좋았다. 행복한 사람이 있으면 그 곁의 사람도 행복을 느낀다. 행복한 십 대는 귀해 보였고, 나는 무척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쉬었다 가도,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다른 길로 가도 괜찮아"
영화에서는 괜찮다는 대화가 자주 오갔다. 지금 그대로도 괜찮다, 현실에서는 좀처럼 듣기 힘든 말이다. 영화의 어느 장면에서 공립 중학교에 재직 중인 한 선생님이 말했다. 한국의 아이들은 예비된 실패자들이라고. 소수의 승자만이 주목받는 세상에서 필연적으로 승자가 아닌 쪽으로 분류될 아이들이 감당해야 할 슬픔이 얼마나 큰지 헤아려야 한다는 걱정이 진심으로 다가왔다.
문득 우리 사회가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어째서 모든 아이들이 각 분야 최고가 되어야 하는 걸까. 사회활동을 하지 않고 은둔하는 청년이 50만 명을 넘어섰다. 극단적인 형태의 경쟁에 기반한 솎아내기식 삶은 비효율적인 것이 아닐까. 그냥 사람이 타고난 대로 자기 적성과 흥미껏 살아도 그럭저럭 먹고 살 만하다면 학교도 한결 느슨해질 것이다.
나는 얼마 전 다녀온 가을 산을 떠올렸다. 가을 산에는 욕심내는 존재가 없었다. 낙엽은 바람 부는 대로 떨어지고, 다람쥐는 자기 재주껏 도토리를 먹었다. 단풍 씨앗은 땅에 닿는 대로 싹을 틔우려 했다. 다들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살았다. 사람처럼 온갖 욕망을 덧씌워 남을 이기려 하거나, 더 가지려 하지 않았다.
나만 경쟁에 신물이 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영화 종료 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서도 진지한 문답이 오갔다.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가, 국가에서 예산을 지원받는 공립형 대안학교 모델은 어떻게 추구되어야 하는가, 서로를 믿을 수 있는 공동체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나. 나는 자주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중에서도 양지혜 감독님의 말씀이 좋았다.
▲ (왼쪽부터)김기수 날다학교 총괄교사, 양지혜 감독,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 강삼영 모두가 특별한 교육연구원장 |
ⓒ 서배성 |
내가 거쳐 왔던 청소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아직 바뀐 것이 별로 없다. <괜찮아, 앨리스>에도 나왔듯, 초등학교 시절이 끝나면 아이들은 정말로 분주해진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치르고, 봉사활동과 동아리활동을 챙기며 살아간다. 일과는 톱니바퀴처럼 조밀하게 돌아간다. 그런 와중에 개인이 알아서 적성과 흥미를 찾아야 한다. 힘들게 대학을 졸업해도 험난한 취업과 직장 생활이 기다리고 있다. 만만한 인생이 아니다.
인생의 과업은 끝이 없다. 그렇기에 매 순간 자기 자신을 챙기며 이완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현재에 머무르지 못하고, 끝없이 나중의 일만 대비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행복하기 힘들다. <괜찮아, 앨리스> 속 꿈틀리 인생학교는 현재에 머무르는 방법을 배우는 곳이었다. 지금 여기에서의 자신을 받아들이면서.
▲ 관객과의 대화에 앞서 지역 중학생들이 깜짝으로 선보인 노래와 기타 |
ⓒ 서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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