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기에 딱 좋은 이 도서관, 6년 넘게 찾았다

허관 2024. 11. 18.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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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내포신도시 충남도서관에서 탄생한 나의 소설들

[허관 기자]

6년 넘게 휴무일(월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충남도서관에 다녔다. 아마 도서관 휴무일이 없었다면 하루도 빠짐없이 다녔을 것이다. 6년이 넘는 동안 아침이면 어김없이 도서관 문 앞에서 개관하기만 기다리는 나를 보고, 도서관 직원들은 미쳤다고 여겼음이 확실하다.

내가 이리 확신할 수 있는 건, 지난 6년 2개월을 되돌아보면, 미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행위였다는 걸 나조차도 인정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말했다. 불광(不狂)이면 불급(不及)이라고. 나도 6년 2개월 동안 미쳤(狂)었고, 끝내는 미쳤(及)다.

올해 못지않게 6년 전(2018년) 그해 여름도 무더웠었다. 서울 기상관측 이래 최고 기온(39.6도)을 기록한 해이며,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는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전인 그해 봄에 아버지가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시골에 혼자 계실 엄마가 걱정되어 나는 곧바로 충남 서산으로 내려왔다. 마침 미루고 미루던 글을 쓰기로 작정하고, 모든 일을 그만둔 상태였던 나는 다른 형제보다 시간 내는 게 자유로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내가 엄마 곁으로 온 거였다.

엄마가 밭일 나가면 나는 인근 도서관에서 글을 썼다. 하지만 대도시의 넓은 도서관만 다니던 나는 시골 도서관이 모든 면에서 불편했다. 무엇보다도 글을 쓰려면 노트북은 필수인데,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는 책상이 많지 않았다. 그 책상조차 좁아 앞에 앉은 사람이 무소음 마우스와 키보드를 쓰는데도 마우스가 움직일 때마다 신경이 곤두섰고,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이 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렇게 온갖 것을 신경 쓰다 보니, 글이 잘 써질 리 없었다.

도서관이 좋아서 매일 찾았더니

살인적인 폭염과 좁은 도서관에서 알 수 없는 사람과 신경전을 벌이느라 지칠 대로 지쳐있던 나는 결심했다. 고향을 떠나기로 말이다. 대한민국 시골 어디에나 그렇듯이 내 고향도 모두 노인뿐이다. 탄생은 없고, 죽음만 있었다. 수시로 마을 어른들이 죽었다. 죽음에 익숙해진 엄마는 자식들의 우려와는 달리 밭에서 종일 바쁘게 일하느라, 아버지 걱정할 틈이 없었다.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마지막으로 차를 몰고 주변을 무작정 돌아다녔다. 세상은 빠르게 발전하고, 세월이 흘러 그때의 어린이들도 늙어가는데 산천은 그대로였다. 늙지 않는 산속으로 이어진 길을 달리다가 보았다. 촌구석과 어울리지 않는 우뚝한 아파트 단지를 말이다. 드넓은 들이었던 곳에 금방이라도 로봇 태권 V가 튀어나올 것 같이 납작한 거대한 건물이 자리 잡았고, 그 주변으로 아파트를 비롯한 건물이 오물쪼물 모여 있는 신도시였다.

말로만 듣던 내포신도시였고, 로봇 태권 V 기지 같은 건물은 충남도청이었다. 천천히 내포신도시를 둘러보다가, 공원 한가운데에 있는 건물에 내 시선이 머물렀다. 마치,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배를 향해 돌진하는 판옥선처럼 앞부분이 들려 시원스러운 건물이었다. 무슨 건물일까 궁금하여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다가 보았다. 판옥선의 앞부분처럼 들린 벽 위에 새겨진 '충청남도 도서관'이라는 새겨진 흐릿한 글자를 말이다.
▲ 충남도서관 전경 
ⓒ 허관
너무나 반가워 나는 곧바로 도서관 안으로 들어갔다. 가을 하늘처럼 드높은 천장, 그리고 벽마다 가득한 책, 아름다운 조명 등 대도시의 그 어느 도서관보다 모든 면에서 좋았다. 나는 도서관을 보자마자 느꼈다. 내 창작의 보금자리로 손색이 없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그 첫 느낌은 옳았다.
나는 그 이후로 6년 2개월 동안 도서관 직원보다 더 많은 시간을 그곳에 머물렀던 거였다. 속된 말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시골집에서 도서관까지 편도 24km를 오갔다. 내가 이렇게 착실하게 도서관에 다녔던 건 나의 의지가 강해서가 아니다. 아무리 의지가 강하다고 해도 싫으면 6개월도 버티기 힘들다. 도서관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도서관 4층에서 바라본 3층 전경. 저절로 글이 쓰여지는 공간
ⓒ 허관
 어린이 자료실, 일반 자료실 등이 있는 1층 전경
ⓒ 허관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고, 당연히 충남도서관에서 창작한 결과물은 알찼다. 2022년도에는 대한민국 콘텐츠대상 우수상을 수상했고, 2023년도에는 비룡소 청소년소설공모전(틴스토리킹) 본심에 올라 출판 계약을 맺었다(수상한 두 작품 모두 올해(2024년) 10월과 11월에 출판 했음). 이 외에도 두 편의 장편소설을 퇴고 중이다.

내가 미친 듯이 도서관을 오가는 6년 동안 주변 사람 여럿 죽었다. 아버지의 절친인 이웃 아저씨가 죽고, 개천 건너 할머니 두 분이 죽었다. 전 이장님 부인이 죽고,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시는 바람에 우리집 논을 경작하던 아저씨도 죽었다. 그리고 4년 전에 아버지도 죽었다.

그들이 죽어도 엄마는 밭일을 계속했고, 나는 계속 충남도서관에 다니며 죽은 사람보다 더 많은 인물을 만들어 냈다. 나의 작품 속 수많은 캐릭터의 고향은 모두 충남도서관이다. 충남도서관의 수많은 책을 자양분 삼아 자란 작품 속 캐릭터들은 건강했고, 작품 속 배경은 선명했으며, 작품의 이야기는 재밌었다. 충남도서관의 훌륭한 환경 덕분에 이런 멋진 결과를 얻어냈다.

창의성과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공간
 도서관 2층 카페에서 바라본 1층 전경. 개방감이 좋고, 조명도 멋지다. 저절로 영감이 나올 듯한 풍경
ⓒ 허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던 건 지식의 축적이었다. 현재의 도서관 형태는 문명과 함께 시작되었지만, 그 이전부터 누군가가 도서관 역할을 했다. 아프리카 어느 부족은 노인이 죽었을 때 '도서관이 불이 났다'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말이다.

모든 과거가 도서관에 있다. 지난 사람들의 삶도 도서관에 있다. 그리고, 미래의 모습이 도서관에 있다. 도서관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의미가 없다. 도서관만 가면 지금이 아닌 시대, 여기가 아닌 장소로 갈수 있다. 언제든지 조선 시대로 돌아갈 수 있으며 그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반면, 화성 탐험도 가능하고, 우주의 끝까지 경험할 수 있다.

실제로 세계 최초의 도서관인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은 과거가 현재의 근원임을 깨닫고 과거의 기록을 모두 모으려 했다. 지금은 사라져 기록을 모으려는 시도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모르지만 말이다.
 충남도서관은 2만 9817㎡대지에 5개층(지상 4층, 지하 1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충남도청사 및 호수공원 사이의 중심에 위치하여 공무원 및 충남도민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로 갖추어 도서관 이용에 친근감을 느낄 수 있도록 조성했다.
ⓒ 충남도서관
충남도서관은 2018년 4월에 개관했다. 그러니까 내가 모든 걸 정리하고 고향에 내려왔을 때 충남도서관이 문을 연 거였다. 충남의 지식과 정보의 중심 역할을 하며 꿈이 있는 문화공간, 무한한 창의성과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널찍한 공원(홍예공원)에 자리 잡아 주변 경관이 좋다. 오른쪽과 왼쪽에는 호수가 있고 뒤에는 용봉산이 병풍처럼 떡 버티고 있어 최적의 위치다. 당연히 아쉬운 점도 있다. 이는 충남도서관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도서관의 문제점인 듯했다. 내가 6년 이상 충남도서관을 다니면서 느낀 점을 이 분야 전문가가 정리한 글로 대신한다.

도서관은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사람(직원)과 책(강서), 그리고 시설이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람이다. .(중략).. 책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도서관을 독서실로 이용하는 것으로 충분..(중략)..또 사람들은 도서관에는 어떤 책이든 모아만 두면 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중략).. 도서관이라는 무한한 지식과 지혜의 저수지를 잘 이용하기 위해서는 도서관 안의 '사람'에 대해 좀 더 신경 쓸 필요가 있다. - 이용훈<도서관문화비평가, 메타사서>

뭔가에 미칠 수 있다는 건 인생의 크나큰 축복이다. 충남도서관은 나 같은 창작자가 미치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잠깐 이 세상을 살다가 떠난 그들처럼 나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하지만 내 작품 속 그들은 도서관 귀퉁이에서 계속 속닥거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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