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판결 비상’ K-반도체]⑥"외국 기업들, 韓 소부장 가격 떨어뜨리려 특허 소송…삼성·SK에도 악영향"
우리 기업 경쟁력까지 타격
韓 기술력 발전에 해외 견제
부품 공급망 불안정 등 가능성
법률대리인 등 정부 지원 필요
컨설팅·특허지도로 사전 예방
업계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을 겨냥한 해외 기업들의 ‘특허 공습’이 이어질 경우 ‘소부장의 가격 하락으로 인한 경쟁력 저하’를 가장 크게 우려했다. 해외 기업들의 특허 소송은 단순한 법적 분쟁을 넘어 우리 소부장의 가격 경쟁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들이 소송에서 승리하면 국내 소부장 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 전반적인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에도 심각한 타격이 예상된다. 특히 소부장을 공급받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들도 부품 공급망의 불안정성과 비용 증가로 인해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백종웅 인트로 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는 18일 아시아경제와의 통화에서 "해외 기업들이 (우리를 상대로) 분쟁을 제기하는 이유는 국내 기업들의 제품 단가를 낮추려는 의도가 있다"고 짚었다. 우리 기업들이 생산하는 제품의 가격을 제어함으로써 세계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겠단 고도의 전략을 해외 기업들이 쓰고 있다는 분석이다.
우리 소부장 업계는 과거 시장에 처음 진입했을 때 기술적 기반이 부족한 상태에서 해외 기업들의 장비를 참고하거나 모방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생각으로, 완전히 새로운 장비를 개발하기보다 기존의 시장 흐름을 따르는 전략을 취했다. 1980년대 후반 국내 기업들은 비교적 저렴한 인건비와 합리적인 소재 가격을 무기로 해외 기업들과 품질 경쟁을 벌였다. 고객사들은 품질이 비슷한 제품이라면 더 저렴한 우리 소부장을 선택하면서 국내 관련 산업은 성장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은 국내 소부장 기업들의 기술력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해외 기업들보다 우수하거나 비슷한 수준의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해외 기업들의 본격적인 견제를 불렀다. 이들은 자사의 제품 가격을 낮추기 어려워지자 특허 분쟁을 통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국내 소부장 기업들의 제품 가격을 자극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다.
일각에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기업들도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사태의 심각성을 직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허 소송에서 해외 기업이 이기면 대기업들로선 소부장에서 반도체의 단가를 절감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우리 대기업들은 대부분 생산 공정별 특성에 맞춰 해외와 우리 소부장을 골고루 받아서 쓰고 있다. 특히 품질이 좋고 가격이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외 기업들이 특허 소송에서 승소하는 사례가 늘어나면 상황은 달라진다. 해외 기업은 특허권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면서 높은 가격을 유지할 것이고 패소한 우리 기업들은 특허권 사용료 등으로 인해 제품 가격을 올려야 하는 상황이 된다. 저렴하게 소재나 부품, 장비 등을 공급받아서 반도체 완제품을 좋은 가격에 내놓고자 하는 대기업들로선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 소부장의 가격을 절감하지 못하고 내놓는 반도체 제품들은 세계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갖기 어려워지고 대기업들의 시장 점유율도 점차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이런 우려 때문에 반도체 업계와 법조계에선 국내 소부장 기업들이 특허 분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국가적으로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소송이 발생했을 때는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관련 기관과 정부 부처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법률대리인 선임 등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전 예방’이란 지적이 나온다. 일단 특허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기업들이 스스로 꼼꼼하게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엄정한 비엘티(BLT) 특허법률사무소 변리사는 "특허를 도용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강조하며 "제품을 초기에 개발하는 단계부터 ‘특허 전략 컨설팅’을 받고 곧바로 연구·개발(R&D)도 시작해야 한다. 단기 개발에만 치중하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인 준비도 병행해야 한다"고 했다. 또 "기존에 등록된 외국산 장비의 특허를 먼저 파악하고 전략적인 국산화를 이뤄야 한다"고 덧붙였다. 소부장 업체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특허 지도(맵)를 그려서 특허 현황을 분석하고 파악한다"며 "소부장 중소기업 중에는 비용과 분석 능력 문제로 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대다수인 만큼 이에 대한 지원도 필요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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