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릴, 드릴, 드릴"…트럼프가 신설한 美 국가에너지위원회 역할은?
에너지부 장관엔 셰일가스 기업 대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5일(현지시간) 노스다코타 주지사인 더그 버검(Doug Burgum)을 차기 내무장관으로 내정하면서 동시에 그를 신설할 국가에너지위원회(National Energy Council) 위원장에 임명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하루 뒤에는 에너지부(DOE) 장관으로 크리스 라이트(Chris Wright ) 리버티에너지 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를 지명했다. 그러면서 크리스 라이트가 국가에너지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그 버검과 크리스 라이트는 모두 화석 연료 지지자들이다. 이에 따라 신설될 국가에너지위원회가 미국의 석유 시추 확대를 강하게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의 에너지정책의 방향성을 총괄하는 국가에너지위원회 위원장인 더그 버검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사실상 '에너지 차르'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국가에너지위원회의 정확한 역할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 없다. 다만 트럼프 당선자는 성명에서 국가에너지위원회에 대해 "모든 형태의 미국 에너지의 허가, 생산, 발전, 유통, 규제, 운송에 관련된 모든 부처로 구성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그 버검은 국가에너지위원회 위원장으로 국가안보위원회에도 참석하게 된다.
트럼프 당선인은 또한 "이 위원회는 불필요한 규제를 철폐하고 민간 부문의 투자를 강화하는 한편 불필요한 규제보다는 혁신에 집중함으로써 미국이 에너지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감독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가 언급한 '불필요한 규제'는 석유 채굴 확대를 가로막는 각종 인허가 절차 등으로 해석된다.
국가에너지위원회는 미국의 에너지 생산 확대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의 에너지 공급 증가는 국내 경제와 해외 동맹국에 이롭고 인공지능(AI)의 우월성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AI 데이터센터의 확대에 따라 급격히 증가하는 전기 수요에 맞춰 에너지 공급을 확대하는 데 주력할 것이란 얘기다.
美 '에너지 차르'는 "화석 연료 업계의 오랜 친구"에너지 공급은 트럼프 당선인이 후보 시절부터 강조했던 석유와 천연가스 시추를 확대를 통해 이뤄질 전망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한 인터뷰에서 "나는 국경을 닫고 싶고 뚫고, 뚫고 뚫고(drill, drill, drill)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내무장관으로 하여금 국가에너지위원회 위원장을 맡긴 것은 내무장관이 에너지와 광물 개발을 포함한 연방 정부의 토지를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그 버검은 과거 그레이트플레인소프트웨어(Great Plains Software)라는 기업을 창업해 운영하다 2001년 마이크로소프트(MS)에 11억 달러에 매각했다. 2016년 처음 노스다코타 주지사에 선출됐다. 더그 버검은 주지사 시절부터 친기업 성향의 정책을 펼쳤으며 석유 개발에 적극적이었다. 노스다코타 주는 텍사스, 뉴멕시코에 이어 미국에서 석유 생산 3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기 생산을 위해 화석연료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석유 업계는 더그 버검에 대해 환영 의사를 밝히고 있다. 국가해양산업협회의 에릭 밀리토 회장은 AP통신에 "미국 에너지 자원 및 공공 토지에 대한 그의 깊은 이해는 에너지 비용 문제를 해결하고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미국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와일더니스소사이어티의 데이비드 시브룩 회장은 그를 "화석 연료 업계의 오랜 친구"라고 불렀다.
미국 언론들은 더그 버검이 에너지 분야에 대한 광범위한 권한을 행사하는 '에너지 차르'의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에너지컨설팅그룹의 밥 맥널리는 폴리티코에 "트럼프가 에너지 차를 두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방금 차르가 임명되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인수위 관계자의 말을 빌려 신설되는 국가에너지위원회는 백악관에 '기후 차르'를 만들었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나 조 바이든 대통령에서 연감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목표는 그 반대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전 정부의 기후자문위원들은 지구 온난화를 늦추기 위해 석탄, 석유, 가스 사용을 줄이고 풍력, 태양광발전, 전기차 사용 확대를 가속화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에너지위원회는 그 반대로 움직일 것이라는 얘기다.
미국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당시에도 딕 체니 부통령을 중심으로 에너지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한 적이 있다. 에너지 TF 역시 화석연료 공급 확대가 주요 목표중 하나였다.
에너지부 장관 지정자는 "기후 위기란 없다"트럼프 당선인이 에너지부 수장으로 지명한 크리스 라이트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출신으로 프래킹(fracking) 기업인 리버티에너지의 대표이면서 기후 온난화 부정론자다. 수압파쇄법이라고 불리는 프래킹 공법은 고압의 액체로 지하 깊은 암반에 구멍을 뚫어 암반 속 셰일 오일이나 셰일 가스를 분리해내는 기술이다. 크리스 라이트는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업인 오클로(Oklo) 및 광산로열티 기업인 EMX로열티의 이사회 멤버이기도 하다.
트럼프 당선인은 그에 대해 "미국이 셰일 혁명을 시작하는 데 도움을 준 선구자중 한명"이라며 "규제를 철폐하고 혁신을 주도하는 핵심 리더가 될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미국 에너지 업계는 크리스 라이트가 셰일 가스 시추를 확대하는 한편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 건설 프로젝트를 승인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올해 1월 바이든 대통령은 LNG가 기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환경론자들의 우려를 받아들여 신규 LNG 수출 터미널 프로젝트 승인을 일시 중단한바 있다.
더그 버검에 이어 크리스 라이트를 에너지부 장관에 임명하면서 미국 내에서는 전기차와 그린수소 등 청정에너지에 대한 각종 보조금 및 인센티브가 취소되거나 축소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크리스 라이트는 지난해 링크드인에 "기후 위기란 없다"며 "기후변화와 관련해 위기와 닮은 것은 기후변화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한 퇴보적이고 기회를 억압하는 정책뿐"이라고 쓰기도 했다. 앞서 주요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인수위가 공화당과 함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상의 전기차 보조금 조항 폐지를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더그 버검과 크리스 라이트는 탄소포집저장(CCS) 기술에 대해서는 다소 다른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더그 버검은 노스다코타 주지사로 있으면서 2030년까지 주가 탄소중립을 달성하도록 촉구했으며 CCS를 주요 수단으로 삼았다. 노스타고타의 가장 큰 CCS 프로젝트에는 트럼프 당선인의 후원자중 한명인 석유 재벌 해럴드 햄(Harold Hamm)도 투자했다. 해럴드 햄은 트럼프 당선인에게 크리스 라이트를 추천한 인물로 알려졌다.
강희종 기자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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